2007.05.18 12:37

배희경 조회 수:47

            왜              “문학세계”   2003

   왜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다 울었는지 모른다. 나는 차를 몰고 한참을 갈 때 까지 울먹였다. 그녀가 너무 안 되어서다. 내가 막 현관문을 나서려는 때다. 그녀는 내게 흰 봉투를 쥐어주었다. 받아달라고 아주 간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그것이 돈이라는 것을 한 눈으로 알 수 있었다. “내게 왜 이러세요?”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왜 그러고 싶어요. 이러지 마세요.”하는 순간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는 꿀꺽 가슴의 물을 삼키며 그녀의 눈 속을 드려다 보고 있다. 그녀가 왜 우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아침부터 나갈 준비를 하면서 그녀를 생각했다. 자기보다도 나이를 더 먹은 내가 훨훨 나다니는 것을 보면, 그럴 수 없는 자기가 얼마나 슬퍼질까. 집에 갇힌 자신을 탄식할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마음을 꿰뚫어나 본 듯 그녀는 내게 돈을 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그녀가 내게 돈을 준 심리를 캐본다. 돈에 그리 궁색치 않는 나를 아는 그녀가 왜 내게 돈을 주었을까. 이집에 있는 동안 자기가 부담되지 않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다. 이집이 내 아들집이면서 그녀의 딸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왜? 나는 또 생각한다. 부자유스런 사람이 자유롭게 사는 그 자유에 상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자유가, 또 그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 사랑스러워졌다.
   차를 몰고 천지 사방 다녔던 그녀였다. 그랬던 자기다 일찍 운전대를 놓고 이렇게 집에 갇히리라고 꿈에라도 생각했겠는가. 이제 남에게서 과거의 자기를 본다. 그랬던 자기가 무한히 사랑스럽고 그립다. 그런 자기, 자기가 아니고 남이라도 좋다.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표시하려고 생각한 것이 돈이며 돈으로 마음을 달랜다.
   또 이런 분석을 해본다. 사람은 아플수록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흐린 날에 햇볕이 반짝하듯 그녀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인가 하고 싶었다. 돈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솟았다. 그 욕구를 풀어본다.
   아픈 사람은 또 예민하고 다감하다. 남에게서 받는 친절을 성한 사람보다 갑절 느낀다. 내 조그만 호의가 그녀에게 크게 받아졌을 런지 모른다. 그것을 보답하고 싶다. 보답할 방도를 생각한다. 그래서 돈을 생각했다. 돈이 나를 기쁘게 하리라 믿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내가 돈을 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그럼 받겠어요.” 그녀의 눈에 큰 일을 치른 안도감이 보였다. “저 곧 돌아올게요.”  바삐 현관문을 나오고 있었다.
   성격상 나는 남의 돈을 넓적 받을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이 못된다. 그러나 그 날만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녀를 위해서, 그녀를 만족하게 하기 위해서 그 돈은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아픈 사람만이 아는 죽음의 공포와 그 삶의 농도를 나는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씀이 가련하고 나를 슬프게 했다. 어느새 나도 그녀같이 곧 사라질 새털구름이 돼 있었다.
   봉투를 쥐고 한 발은 그녀가 서 있는 문안에 또 한 발은 문 밖에 서서 나도 언제라도 문 안쪽 사람이 된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녀의 허물어져 내리는 가슴과 맺히는 눈물은 그녀만의 눈물이 아니었다. 사람이 다 흘리는 눈물이었다. 덧없는 인간사에 사람이 다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러면서 문뜩 어떤 어머니의 젊은 아들의 말이 떠올랐다. 어머니 품에 안겨 마지막 숨을 걷으며 했다는 말이다. 형용할 수도 없는 암의 고통 속에서 마지막에 어머니께 한 한 마디는 “It's so simple" 이었다. 우리가 그렇게도 무서워하는 죽음이 ”It's so simple"로 끝난다는 고백이다. 나는 그의 죽음에 대한 부르짖음이  신앙같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삶을 가꾸며 열심히 사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왜”를 뇌이면서 살았는가. 그러나 “이렇게 쉬운 걸”하고 말할 수 있는 날을 알 때, 거기에는 왜라는 의문사도 없고 복종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제 더 울지 않아도 될 때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