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이야기

2007.04.18 13:27

정해정 조회 수:53

    내가 어린 시절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그림 하나가 집에 있었다. 그 그림은 너무나 유치한 그림이었지만 아버지가 아끼시던 민화였다.

    소나무 위에 까치 세 마리가 앉아있고, 소나무 아래는 호랑이 한 마리가 누워있는, 색이 바래고 볼품없는 그림이다. 아버지는 그림을 설명하시면서 ‘소나무는 오래오래 변함없이 푸르게 사는 나무요, 그 위에 있는 까치는 기쁨이요, 아래 누워있는 호랑이는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짐승’이라 하셨다.

    그리고 옛날옛적에 호랑이는 곰과 함께 사람이 되고자 원했으나 곰보다 성격이 급해 지켜야할 것을 지키지 못해서 실패했다는 얘기도 해주셨다. 단군신화를 말하신 것 같다.
    우리 선조들은 호랑이는 사납고 무서운 야생동물이지만 두려움을 모르고, 용맹스러워 한편으로는 그 힘을 가까이 하고 싶고, 든든하게 의지하고 싶었던 욕망도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전례동화 중에 ‘호랑이와 곳감’은 지금까지도 마음속 깊이 훈훈하게 남아 있다.

    전해 내려오는 속담 중에 호랑이와 관계되는 값진 속담이 많다.
    용감하게 발벗고 나서야 성공한다는 뜻으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한다.’
    용감한 사람은 후퇴하지 않는다 라는 것으로 ‘호랑이는 절대로 뒷걸음 치치 않는다’
    사람이 살아 생전에 훌륭한 일을 하여 후세에 이름을 남기라는 뜻으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등등, 이 밖에도 수도 없이 많다.

    꿈에 호랑이를 타면 좋은 일이 생기고, 마당 한가운데 호랑이가 들어오거나 호랑이가 울면 큰 벼슬을 한다는 꿈 해몽도 있다. 또 호랑이의 힘을 너무나 믿었던지 악귀를 쫒는 힘이 있다고 해서 부적의 그림으로 이용하고, 전염병이 돌 때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붙이면 병마를 막는다고 믿었다. 특히 우리 선조들은 호랑이를 ‘효’와 ‘보은’의 동물로 묘사했다.

    조상의 성묘 길에 길을 잃고 헤매는 효자소년을 보고, 호랑이는 감동하여 덜렁 등에 업고 묘소까지 데려다주고 묘소에서 곡을 하는 효자를 곁에서 지켜주기도 했다한다.
    그리고 호랑이는 품격과 자존심을 지킬 줄 아는 짐승이었다고 한다.
    늙고 병든 노인네는 잡아먹지 않으며, 자신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은 어린아이나,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고 했다하니 사람보다 낳은 짐승이 아닐까.
    더 재미있는 얘기로는 호랑이의 도덕성이다. 산속에서 여인네가 호랑이를 만났을 때 치마를 들추고 속살을 내 보이면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눈을 감고 뒤로 돌아섰다는 애교 있는 기록도 있다.

    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얘기 한토막.
    오직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심지 깊은 암호랑이가 있었다. 어느 날 절에서 도를 닦고 있는 잘 생긴 총각을 만나 사랑을 불태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호랑이가 죽으면서 커다란 절로 변해 총각에게 준다. <호원사>라는 절이다.

    이 이야기는 사람과 호랑이와의 관계, 호랑이를 사람보다 윗격인 신격으로 믿은 것과, 호랑이의 보은과 열정이 들어있는 설화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는 명색에 인간으로서 호랑이처럼 보은과, 효를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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