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쯔타워

2007.05.08 03:21

배희경 조회 수:42 추천:2

               와쯔타워                        “미주문학”2004년                

    “여기가 어디냐? 간다 하면 묘지만 데리고 가더니, 오늘은 또 무슨 거지 발싸개 같은 곳에 데려 왔네.” 내 미국 친구 하나가 자기 어머니가 한 말을 우습게 흉내 낸 말이다. 그녀는 투덜거리는 노모의 불평도 아랑곳없이 ‘와쯔타워’ 옆에 차를 붙였다. 그 탑은 어떤 청년이 삼십 년을 걸쳐 싸 올린 탑이다. 아주 색다른 것이니 꼭 한번 가 볼만하다 했다.  
   나는 그 말을 삼십 년 전에 들었고, 듣는 순간부터 가 보고 싶었던 곳이다. 그러나 1969년 “와쯔 폭동” 직후였다. 아주 무시무시한 곳이라며 겁을 주는 바람에 말도  못 냈다. 그러나 훨씬 후 4.29 LA폭동을 겪고는 그리 무서울게 없었다. 일이 생기려면 생기라는 배짱이 생겼다. 그날만은 정말 그랬다. 사 오 년 전이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나는 ‘와쯔타워’에 대해 난 신문 기사를 읽고 즉시 가 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틀간 만 갖는 특별 개관이었으며,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보게 될지 몰랐다. 그 곳은 몇 년 째 관람을 중지하고, 노스릿지 지진으로 파손 된 부분을 수리하느냐 마느냐로 논의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어떤 동기에선지 이번에 “와쯔타워 째즈 훼스티발 25회”를 개최한다며 이틀간의 일반 관람을 허용했다. (2000년 9월 30일)
   아무도 그런 것에 흥미 있어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멀다 싶은 거리지 만 혼자 찾아 떠났다. 한참을 달리니 아득히 그럴 상 싶은 것이 보였다. 낮은 주택지 속에 높고 낮은 탑이 한 틀이 되어, 구라파 중세기 때의 성 같이 초연히 서 있었다. 친구가 말 한대로 볼 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탑 가까이 갔다. 가까이 가서 본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먼데서 보던 것과는 딴 판이었다. 노모의 말대로 정말 거지발싸개로 되어 있었다. 거지도 결코 그런 것들은 주워 모으지 않는다.  깨진 유리와 사기조각, 짝이 없는 타일, 맥주병, 술병, 크고 작은 돌맹이와 조개껍질. 또 어마어마하게 들었을 철근은 어디서 구해 왔을까. 놀라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철근에 씨멘을 입히고, 모아온 수집품을 다닥다닥 붙였다. 그렇게 장식된 철근 탑이 99 피트까지 말아 올라갔고, 높고 낮은 탑이 하나도 아니고 일곱 개나 되었다.
   나는 어처구니없이 탑을 쳐다보기만 했다. 어쩌면 이런 것들을...  도저히 그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런 혼돈 속에서 탑 주위를 돌았다. 한 구비 돌며 탑을 훑어보고, 또 한 구비 돌며 탑을 올려다보았다. 뾰족한 꼭대기는 아찔하게 높아 아래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엄청난 작업이었다.
    내게 차차 그 깨진 장식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엄청난 정신이다. 자기와의 계속적인 투쟁!  혼자서 연구해서 일군 건축술과, 아름답게 보이려는 예술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누더기가 명주로 보이는 고고한 순간, 내 가슴속에 주르륵 뜨거운 물이 흘렀다.

   그 사람은 또 이런 말을 했다. “I had in mind to do something big and I did it." 그렇게도 큰일을 하고 싶었던가. 쇠사슬에 몸을 감고, 밤 낮 없이 공중에 매달려 살았으니 말이다. 올라가서는 노래를 불러 제겼다 하니 행복했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 천지 사람들은 땅에서 개미같이 기고 있는데 자기는 하늘 높이 있다. 몸은 아무리 고달파도 우쭐해지며 기분이 좋았겠지. 사람은 다 제 멋에 산다.
   탑은 또 든든하기도 했다. 1933년 롱비치 지진 때, 그는 탑 위에 있었다. 땅이 막 흔들리는데도 내려오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저 미친 인간’ 하면서 내려오라고 소리소리 질렀다. 그러나 내려오기는커녕 그는 공중에서 이렇게 여유있게 말했다 한다.  “이 탑은 절대 무너지지 않아요.” 자기가 한 일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과연 그의 말대로 탑은 끄떡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어느 날 홀연히 탑을 떠나버렸다. 마지막 일을 마무리 짓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그곳을 찾지 않았다. 이십 년이란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한다.
   왜 그랬을까. 그 삼십 년의 정열은 무엇이었으며, 또 그 이 십 년의 망각은 무엇인가. 사람의 생각은 남이 간단히 판단할 수가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알고 싶어 하고 또 추측한다.
   혼자서의 삼십 년은 너무나 길고 외로운 세월이었다. 그는 지쳤다. 인간 행위의 과정에는 한도가 있는 법.  그에게 한계가 왔다.  찾지 않은 이유는 또 무엇이었을까. 세월의 상실? 치매라도 걸렸단 말인가. 아니다.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 다만 과거에 연연하기 싫었을 뿐이다. 탑을 쌓는 동안 기뻤고 보람을 느낀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 이상을 더 바라지 않았다는 것은 학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에게 도도한 철학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놀라웠다.

   차를 몰고 나오며 나는 다시 탑을 돌아보았다. 노력과 인내와 기쁨의 정(晶)체!  와쯔타워!  훌 훌 미련 없이 털고 떠난 한 인간의 탈욕에서 고승의 열반을 보듯, 탑을 보는 내 마음은 숙연했다.
   세상에 내 삶에 욕기가 생겼을 때, 나는 가끔 고고히 하늘 높이 솟은 원방미인 왓쯔타워를 그린다.  그리면 내 마음이 가다듬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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