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령들이여 천도하소서!

2007.05.07 16:37

신영철 조회 수:44 추천:1

▒ CEREMONY|EVEREST 30TH 특파원보고 ▒ 영령들이여 천도하소서! ▒세첸사원 합동 천도재 ▒ 글 |신영철 편집위원 사진 | 이한구 사진작가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이미 죽음도 따라 붙는다. 누구나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또 그걸 모르는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어떻게 사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 역시 중요하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속담이 있다. 그 말대로 사람들이 삶을 끝낸 방법은 헤아릴 수없이 많고, 그 이유도 다양하다. 그런 끝맺음 중 히말라야를 오르다 조난사한 주검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왜 그들은 하얀 무생물의 세계에서 죽음을 맞이했을까. 몇 명 되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가 아니다. 히말라야에서 사망한 한국 산악인들은 셀 수도 없이 많다. 문제는 그것이 지금도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히말라야에서 숱하게 숨져간 사람들은 죽으려 등반을 했을까? 아니다. 다만 그 죽음이 언제나 곁에 있다는 각성을 했을 뿐이다. 그런 죽음의 유혹 속에서 행해지는 등반 심리를 세세하게 설명할 수 없다. 알피니즘으로 뭉뚱그려 설명하기에도 벅찬 일이다. 또한 그 오름짓을 무념무상(無念無想)의 행위로 승화시키기에도 어딘지 모자란다. 분명한 것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등반가들은 아무것도 없는 정상을 오르려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죽음은 단순하다. 너무 단순해서 억울하다. 너무 단순한, 그래서 더욱 억울한 죽음 2007년 4월 1일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는 히말라야에서 유명을 달리한 등반대원들을 위한 합동 천도재가 열렸다. 네팔이 자랑하는 거대한 스투파 보우다나트 곁 티베트 불교사원인 세첸(Shechen)승원에서의 일이다. 세첸사원은 황금빛 기와를 올린 큰 사찰이다. 주지는 몇 번 환생한 림보체로서 절 집에 함께 있는 승가학교 교장이기도 했다. 티베트 난민들이 모여 사는 거대한 이 구역은 세첸승원 외에도 많은 사원이 있으나 ‘황금사원’이라 불리는 세첸사원이 제일 유명한 곳이다. 오후 3시경, 천도재가 시작됐다. 봄 시즌 한국 히말라야 등반대원들과 이인정 회장 등 대한산악연맹 관계자, 그리고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과 현지 교민 등 100여명의 한국인이 법당에 들어섰다. 머리가 희끗거리는 초로의 ‘77에베레스트’ 팀과 그들과 함께했던 세르파들도 참석했다. 허영호, 엄홍길, 실버원정대 등 먼저 캬라반에 나선 산악인을 빼고 이렇게 많은 대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합동 천도재를 지낸 것은 물론 처음이다. 중앙에는 거대한 관세음보살과 협시보살 세분이 앉아 있었고 그 앞엔 살아 있는 관세음보살이라 불리는 달라이라마 사진이 모셔져 있었다. 법당 안과 밖의 현란한 단청은 한국 사찰과 매우 흡사했다. 넓은 법당에는 붉은 가사를 입은 스님 사십 여명이 앉아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웅장한 법당이 거의 사람들로 들어 차 있다. 누군가 이 천도재 행사는 이인정 회장이 자비를 들여 기획한 행사라고 귀띔을 해준다. 천도의식은 망자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보내고자하는 일이다. 천도재의 천(薦)은 천거, 혹은 옮김을 뜻하는 말이다. 히말라야 차가운 곳에서 떠돌고 있을지도 모르는 영가를 좋은 곳으로 안내한다는 것이다. 도(度)는 죽은 영혼이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나는 윤회의 길을 뜻하며 그 방법을 가르쳐 주는 법도를 말한다. 재(齋)는 집을 의미하지만 천도의식행위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천도재를 지내는 사람들은 복을 짓는 것이며 영가보다 더 큰, 칠분의 육을 돌려받는 의례라는 설명이다. 법당 한쪽에는 이미 한국에서 공수해 온 제물이 차려져 있었다. 30년만에 지낸 합동 위령제, 그들의 넋을 기리다 조용히 법당에 들어 선 추모객들은 독송을 하는 스님들 뒷자리 카펫과 벽을 따라 가장자리에 앉았다. 라마스님들의 불경 소리는 단조로웠지만 사람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에 충분히 경건했다. 어느새 법당 안은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끊일 듯 끊이지 않던 염불 소리가 멎었다. 라마승들이 앞에 놓인 악기를 손에 들었다. 틀에 매단 커다란 북이 울리고 태평소처럼 생긴 ‘갈링’이란 피리도 불었다. 그리고 티베트 불교의 상징처럼 낮 익은 긴 나팔을 우웅- 하고 분다. 저음이었다. 염불소리 중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옴마니반메훔’뿐이었으나 공연히 마음이 평온해 진다. 시간이 갈수록 라마스님의 독경 소리는 더 낮아졌다. 산정을 떠돌고 있는 넋들을 아래로 불러 내리려는 듯, 스님들 염불 소리에서 영가를 어루만지는 숨결이 느껴졌다. 라마스님들의 리드미컬한 독송에 맞추어 ‘옴마니반메훔’을 연호하는 대원들도 보인다. 라마스님의 인도에 따라 한명씩 일어서 법당 양쪽에 있는 버터 등불을 켜기 시작했다. 불을 붙이는 이인정 회장, 박영석 대장, 그리고 故 고상돈 대원의 미망인 이희수 여사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참여한 사람이 많다보니 그 많은 버터 등불이 모두 켜졌다. 어둑한 법당에서 영롱한 빛을 내며 불 밝힌 등불이 무엇인가 초월적으로 보인다. 히말라야에서 산화한 영혼들이 이 제사에 감응하여 내려온 것처럼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이희수 여사가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라고 나지막이 말한다. 의식은 길었다. 중간에 라마스님들이 간식을 제공받는 모습은 생경했으나 불교식 천도재의 본질은 한국과 같을 것이다. 간간이 참배를 온 티베트인들이, 장엄한 제례와 주변의 많은 한국 사람들을 보고 놀라는 표정이다. 보도진의 카메라 셔터 소리와 다큐멘터리 영화 팀의 카메라가 바쁘게 돌아갔다. 염불을 하다 나팔을 불고 다시 염불을 반복하는 제례 중간에 이인정 회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한지에 써 온 추도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법당은 알 수 없는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가장 높은 정신으로 히말라야를 오르다 산화한 등반가들이여, 여러분이 오르려 했던 고결한 히말라야는 지금도 눈부시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길 수없는 약속처럼, 매번 검게 탄 얼굴로 우리 곁에 돌아와, 씩- 웃던 그 미소는 어디로 갔습니까? 손때 묻은 배낭과 한 동의 자일, 억센 손에 불끈 쥔 피켈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대들은 히말라야 바람 되어 흔적조차 없지만, 그러나 그대들은 잊혀 진 게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추구했던 꿈과 이상(理想)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경배했던 알피니즘을 가슴 속에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먼 길을 나서 당신들을 만나러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에 모인 것입니다. 히말라야를 정상을 향한, 우리 공통의 목표는 참으로 선한 것이었습니다. 아득한 정상에 이르기 위하여 우리 산악인들은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 속에 신뢰와 우정을 쌓아왔습니다. 그런 의리 속에 동지를 위하여 자신을 양보하고 희생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줄 하나에 서로의 생명을 하나로 묶은 힘겨웠던 등반은, 그 우정의 힘으로 우리를 산정으로 전진시킨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산악인만 할 수 있었던, 무상(無償)의 행위였습니다. 보이십니까? 지금도 저- 펄럭이는 룽다 넘어, 그대들 닮은 등반가들은 당신을 좇아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오르려던 정상을 향하여 성스러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고결한 모습으로 빛나는 히말라야를 오르는 당신의 후배 모습이 보이십니까. 그러므로 당신들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났더라도, 당신들의 숭고한 뜻은 이렇게 살아 계승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지켜 나가야 할 의무는, 살아 있는 우리가 간직해야 할 이상인 것입니다. 당신들을 좇아, 고귀한 생명을 바친 세르파 영가(靈駕)에게 이 추도사를 바칩니다. 또한 한국에서 하얀 산을 꿈꾸다 훈련 중 산화한 영령(靈靈)에게도, 나아가 히말라야에서 화엄의 꽃이 된 전 세계 산악인 혼백(魂魄)에게도 이 추도사를 바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산을 오르다 그대로 산이 되어 버린 등반가들이여! 좀 더 일찍 찾아오지 못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을 맞아 한국에서 여러 산악 동지들이 함께 이곳으로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여러분이 이 추구하고 경배했던 알피니즘은 이렇게 우리 심장 속에 맥박치고 있다는 걸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히말라야는 여러분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에 숭고합니다. 여러분의 올곧은 정신은 전 세계 산악인 동지들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고, 영원히 기억 될 것입니다. 세세연연 뒤를 이을 알피니스트 동지들 역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히말라야를 관장하는 신(神)이시여. 한량없는 자비와 지혜의 힘으로 이들에게 새로운 생을 얻게 하소서. 히말라야를 오르거나,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동지들을 보호하소서. 히말라야 상봉에 높은 정신으로 떠돌고 있을 영가(靈駕)를 천도(薦度)하소서. 옴마니반메훔 _추도사 전문 긴 추도사를 읽는 동안 이 회장은 목이 멘 듯 했다. 법당 역시 알 수 없는 정적에 쌓여 있다. 추도사 속엔 이 회장과 많은 인연들이 있을 터였다. 아니 이 천도재에 참여한 모든 원정대원들 역시 그러한 인연에서 자유롭지 못할 터였다. 이 의식이 끝나고 당장 에베레스트로 떠날 남서벽 원정대를 이끌 박영석 대장, 초모랑마 팀을 이끌 김재수 대장 역시 동료와 후배를 산에서 잃은 아픈 경험이 있다. ‘77에베레스트’ 대원들과, 한국도로공사 박상수 대장 역시 종횡으로 엮어진 한국산악계에서, 히말라야에 머물고 있는 동료가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추모객 모두 남의 일이 아니다. 히말리스트들은 누구나 이 천도재에 참여하고 제례를 지내야 할 이유가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만에 지낸 합동 천도재는 혹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소식을 듣고 찾아 온 트레킹 팀도 있었고 관광객들도 있었으나 역시 경건한 표정들이다. 라마스님들의 옴- 하는 독경 소리에 스스로 마음이 평온해지며, 좋은 일에 동참했다는 홀가분한 감정이 든 건 추모객 모두였을 것이다. 한국원정대, 세첸사원에서 무운 빌 것 네팔에서 처음 거행된 이 합동 천도재가 갖는 의미는 각별한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유명을 달리한 한국 대원들 뿐 아니라 그들을 돕다 죽어 간 세르파, 더 나아가 세계 산악인의 혼백을 달랜 천도재이기에 그렇다. 이 소식은 이미 「카트만두 포스트」등 현지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천도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말도 들렸다. 간단한 추도 문구를 한글, 네팔어, 영어로 새긴 스투파(추모비석)를 사원에 건립하는 과정이 이미 진행 중이라고 한다. 히말라야 원정대들은 출발에 앞서 티베트 사원을 방문하는 관례가 있다. 대원들이 불교 신자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고용한 세르파들이 독실한 티베트 불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원정대 구성원 모두는 티베트 사원의 고승에게 무운을 비는 축복을 받는다. 그렇다면 한국 최초로 합동 위령제가 거행되고 선후배 영령이 모셔진 세첸사원은 원정대 혹은 그 가족의 참배 장소로 이용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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