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남을 알까

2007.04.30 13:38

배희경 조회 수:47 추천:1



      어찌 남을 알까                   “글마루” 게재 2001        
  
     그녀의 동공 깊은 곳에 암울한 눈물이 고여 있었다. 흐르지 않아도 울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힘껏 그녀를 껴안았다. 순간만이라도 움직이지 않고 편안하기를 바라면서.  여윈 그녀의 등뼈에서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읽었다. 상처 입은 사슴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까지 됐어요. 전에는 손 만 떨었었는데...”  내 팔에서 풀려난 그녀의 상체는 다시 비잉 비잉 돌기 시작했다. 일초도 멎는 일없이 돌았다. 나는 가슴이 찢겨 더 바라볼 수가 없어 눈길을 돌렸다.
     내가 들어서 알고 있는 그녀의 마음은 갑사(甲紗)라 했다. 잔잔한 부드러움이 드러나 비쳤고, 나이 켜를 얹은 그녀의 얼굴이지만 미소를 지을 때는 소녀 같았다. 얼굴에 티 하나 없다. 퍽 아름다운 여인이다.
   나는 애처로운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살았다는 세월을 더듬어 보았다. 하늘에 기도 말을 달고 산 많은 날들과, 땅에 밭 가꾸듯 시름을 묻었다던 날들을 세었다. 홀시어머니와 우직한 남편 그리고 딸 형제를 파죽이 되어 업고 지낸 날들이었다.
                          
     몇 해 전에 있은 일이다. 일 년이 모자란 백세를 사신 그녀의 시모님의 장례식이었다. 추도식을 집도하신 목사님의 말씀이다. 목사님은 종종 돌아가신 분의 심방을 가셨다. 그랬는데 갈 때마다 거기에는 노인의 자부가 있었다. 처음에는 우연의 맞닿음이려니 생각했으나 그것이 아님을 차차 알게 되었고, 아침저녁으로 들리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어느 날 목사님은 그녀에게 물었다. 햄버거샵을 하며 많이 바쁘실텐데 이렇게 자주 들릴 수 있는가 고. 그녀는 말했다. “모시지도 못하는데 찾아라도 뵈어야지요” 하며, 갖고 온 식사를 자식에게 먹이듯 시어머니께 떠먹이고 있었다.
   그날 장례식에서 목사님은 돌아가신 분의 자부가 되는 그녀에게 효부상을 안겼다. 장례식장에 열녀문이 서는 순간이었다. 한낱 평범한 사람들의 일이지만,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에서 맺어진 귀한 사랑이 하늘에 우뚝 서서 그 곳을 축하장으로 만들었다. 나는 넘치는 격정에 자꾸  눈물을 닦았다.

    그런 그녀가 지금 이렇게 폐인이 되어있다니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나도 이런데 본인은 이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나의 회의는 연민으로 변해 갔다. “우리 같이 살아요. 이 집은 나의 아들집이고, 선이어머니 딸집도 돼잖아요. 같이 살면 어때요. 제가 돌 봐 드릴게요.” 하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녀가 어찌 남들이 말하는 사돈일까.  그녀는 몸부림치며 아파하는 나래가 찢긴 새다.  인간 원죄의 죽음의 고통에서 버둥거리고 있다.
   나는 또 옛 사람들의 “사돈과 뒷간은 멀리” 라고 한 말을 생각 해 본다. 한 집안 안에 두 가정에서 온 남녀가 서로의 위치를 다진다. 양 가정이 대립할 수도 있다. 이 에서 사돈 간은 멀리 라는 망언이 나왔지만 사실은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서로 같이 늙어 가는 그녀를 보며 나도 언젠가는 하며, 훗날의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가 몇 해 전부터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이상한 병인 줄은 몰랐다. 시 초 마다 전신이 움직이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이것은 다만 약의 부작용이란다. 약이 병도 죽이고 사람도 죽이는 현상이다. 그 약은 분량을 조절하기가 힘들어서 양이 지나치면 몸이 더 심하게 움직이고, 양이 부족하면 상상을 넘는 고통이 따른다 했다. 전신에 쥐가 일어나며 온 신경이 마비가 되는 병이란다.

   우리는 지금 삼 주일 째 그녀와 살고 있다. 남편이 떠난 텅 빈집에 있기보다는 나았는지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기뻤다. 나는 그녀를 보살피며 그녀의 눈 속 깊숙이 담겨있는 심정을 알고 싶었다. 일생을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고, 또 그렇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그녀였는데 왜 이렇게 형벌 같은 병을 앓아야 하는지. 사람은 다 앓아서 죽어가지만 그래도 이렇게 일초마다를 꺾어 살아야 하는 목숨은 너무도 가혹했다. 나는 그녀가 그녀의 일생을 바라보고 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선이어머니는 종교를 갖고 계시니 많이 도움이 되시지요?”하고 물었다. 그녀는 조금의 망서림도 없이 대답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요 뭐. 이렇게라도 살아있으니... 새 약이 나오면 낫겠지요”  또 한번 십 년 전의 장례식 때와 같은 감동으로 내 삶을 흔들어 놓았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그런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놀라운 여인-.  하늘에 계신 분을 생각하게 만드는 자력(磁力)을 내게 안겨 주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감동은 어느 목회자의 소리보다도 절실하게 와 닿았다.  
   사람은 남을 다 알지 못한다. 그녀의 눈은 결코 울고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후에야 알았다.


( 이 글을 읽은 어느 한 분이 내게 물었다. 교회에서의 일이 정말로 있은 일인가고. 한국도 아니고 미국이란 땅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누가 쉽게 믿을 수 있었겠는가. 의문도 가질 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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