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법이네
2007.04.30 13:56
법은 법이네 “미주문학” 2003년 봄호
나는 오늘로 두 번 째 법정에 섰다. 반생을 남아 산 한국에서 서 보지 못한 법정에 이 나라에 와서 두 번이나 서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범죄자 신세가 된 셈이다.
첫 번 출두는 약 삼십 년 전 일이다. 영업차 주차 구역에 주차해서 위반 딱지를 받은 탓이었다. 아침 인사와 저녁 인사밖에 자신 있게 할 수 없었던 영어 실력으로 법정에 섰으니 그 무모에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나에게 미국의 전부를 가르쳐 주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닌 중국 친구가 말해 주었기 때문에 있은 일이다. “너는 그 가게에 앉아 있으면 벌금 물 돈이 생기니? 법정에 가서 몰라서 그랬다고 말하면 벌금 탄감 해 줄거야.” 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녀의 말이라면 양잿물도 마실 때였다. 나는 조련사(調鍊師)의 말(馬)이 되어 그녀가 하라는 대로 재판소에 찾아갔다.
판사가 있는 방에 불리어 들어갔다. 판사는 내 짧은 영어가 길어지기 전에 처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몇 마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빠른 글씨로 $2 라 적고 다음 순번을 불렀다. 나는 아주 기뻤다. “역시 내 쭝국 친구 최고야” 하며 그녀를 대모같이 든든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은 대모의 지시가 아니고 내 단독 행위였다. 그 때 일도 생각이 났지만 이젠 나도 잔꾀가 많이 늘었다. 내가 일하는 가게의 배달원이 이러저러 하라는 말도 참고 삼으면서, 나는 내가 받은 딱지에 대한 이의 신청을 했다.
법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교통위반 죄로 와 있었다. 판결 받고 나가는 사람 들어오는 사람 시간 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정해진 시간 보다 일찍 가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았다. 딱지를 뗀 순경이 나타나지 않으면 피고는 무조건 벌금이 사면된다. 맞 대결하기 위해 나온 경찰관은 그 때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 내 경관도 나타나 주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 때다. 젊은 경찰관이 걸어 들어왔다. 내게 딱지를 뗀 순경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한 달 여 전에 잠깐 본 얼굴이라 긴가 민가 하다. 오십 퍼센트 정도 그 순경이 확실한 것 같다고 생각되었을 때, 나는 집에 돌아가 버릴까 도 생각했다. 그러나 남아지 오십 퍼센트의 가능성에 내 욕심이 기울었다. 저 순경이 아니면 벌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요행이다. 나는 한 가닥 희망으로 방청석에 눌러 않았다.
얼마 지난 후 내 이름을 불렀다. 내가 걸어 나가자 법정 옆 의자에 않아 있던 그 순경도 내려와 내 옆에 섰다. 아! 그가 맞았구나. 절대절명이다. 이제 어떻게 대처하지 하는 순간이다. 앞에서 문서를 정리하던 여자서기가 불쑥 일어나더니 오른 손을 들고 내게 선서를 요구했다. 영화에서만 봐 왔던 절차다. 거짓 증언을 하지 않겠다는 선서임을 알았다.
그때야 나는 내 앞에서 그런 절차를 밟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나는 벌써 살아졌을 것이다. 갑자기 큰 죄인이 되어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재판관이 법조문을 읽기 시작했다. 대강 알아듣기에 거짓 증언을 하면 이러이러한 벌을 받는다는 글인 것 같았다. 재판관이 알아들었는가 하고 물었다. 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제 알아들어도 그만, 못 알아들어도 그만 아닌가. 올 데까지 다 왔는데 어떡하겠는가.
재판관이 내게 할 말이 있으면 말하라 했다. 나는 말을 시작했다. “나는 내 위반 티켓으로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법의 관용을 빌어 왔다.” 했다. 재판관도 옆의 경관도 약간 술렁거렸다. 으레히 내게서 스톱했읍니다 라는 말이 튀어나올 줄 안 모양이다. 다음 이유를 말하는 데서는 말이 더듬었다. “약속 시간은 다가왔는데 집을 찾지 못해서 한 시간 반을 헤맸다.” 재판관이 물었다. “그래 그 스톱 싸인에서 스톱했는가.” “메이 비, 메이 비 낫. 그러나 거기엔 차라곤 거의 없었고, 나는 교통에 아무 방해도 끼치지 않았다. 다만 나의 이유있는 호소로 용서를 바랄 뿐이다.”라고 또 덧붙였다.
재판관이 빙긋이 웃으며 내게 판결을 내렸다. “용무에 바쁜 경관이 왜 여기에 와 있겠는가. 당신이 법을 어겨서이다. 벌금!” 했다. 법은 역시 법이었다. 용서가 없었다. 돌려 받을 줄 알았던 나의 벌금 백 사 불은 고스란히 나라 금고에 들어가고 말았다. 나는 그 때까지도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너 일 잘했어” 라고 경찰관에게 말했다. 그리고 담담히 법정에서 걸어 나왔다. 내 경관이 앞서 가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나 한 사람을 위해 나온 것이 좀 미안했다. “하이 오피서!”하고 말을 걸었다. “법은 법이네” 하며 나는 웃었다. 경관도 나를 보고 한 마디 했다. 스톱 싸인에서는 꼭 스톱하고 어쩌고 저쩌고 말이다.
차에 들어와 앉았다. 그 때부터 내 무릎이 후루루 떨리기 시작했다. 이때까지의 긴장이 풀리면서 나 자신 내 미련한 행동에 놀란 모양이다.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단 말이 바로 이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만일 내가 백 사불을 돌려받으려고 이판사판으로 나왔다면 나는 위증죄로 징역을 살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떨려왔다. 그리고 좀 진정된 후에 나는 혼자 헐헐이 멋적게 웃었다.
법은 법이었다. 이래서 내 법정출두는 두 번으로 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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