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감각을 내 손에 (칼럼)
2007.05.16 02:46
문명의 감각을 내 손에
< 차속에서의 휴대폰 전화통화
찬성과 반대 지상토론 “중앙일보” 2000년>
딸이 생일 선물로 준 쎌률라폰을 들고, 나도 드디어 문명의 문턱에 발을 드려놓은 느낌이었다. 남들이 길을 가면서 또 차안에서 전화하는 모습들을 보면 퍽 신기했다. 방 벽에 붙은 묵직한 전화의 수화기를 들고, 옆의 놋쇠 고리를 돌리며 “모시 모시(여보세요)”로 교환수를 부르던 시절이 그리 먼 일 같지 않은데 이제는 길에서도 전화를 거는 세상이 되었다. 폐품 같은 날들이 되어버렸지만, 내게는 골동품 같은 감상이다. 변기 위에서도, 안벽에 매달려서도 전화를 거는 곡예 하는 세대가 왔으니 신기하지 않은가.
늙은 주름이 잡혀버린 내 머리로는 전화 줄 없이 전화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은 아니다. 선이 없는 머리로 산다. 둘째 손자가 다섯 살 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할머니! 할머니가 헤븐에 가면, 헤븐이 있나 없나 전화 해 줘요” “이 사람아, 헤븐에는 전화 같은 것 없어” 하자 "할머니 어떻게 알아? 있는지 없는지, 없으면 Like a Spiritual Talking"하며 웃는다. 어린것은 벌써 선에서 벗어난 세계를 갖고 있다. 쎌률라폰 같은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울까. 놋쇠고리의 전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이나 신기한 것이지 하며 씁쓸히 웃었다.
옛적에는 사람들이 말을 타고, 또는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릴레이식으로 멀리까지 말을 전했다. 누가 그것을 불편하다고 느꼈을까. 사람들은 그 시대에 그 나름대로 묵묵히 또 기꺼이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새로운 냄새를 맡으면 아 그때는 정말 불편했었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의 간사함이다.
오래 전 일이다. 길에서 차가 이상했다. 겨우 남의 주차장에 차를 몰아넣고, 공중전화를 찾은 후 동전을 뒤졌다. 두어 개 잡혔다. 한 번치 통화료다. 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이 안 되고, 기계는 이잉 소리를 내며 동전을 삼켜버렸다. 낡은 차를 모는 신세타령을 하며, 남의 가게에서 구걸하다싶이 동전을 바꿨다. 당연한 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젠 그런 안타까운 일을 면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기뻐하고 있는 중, 문제가 생겼다. 사용을 제한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로 긴 거리를 가면서 전화로 무료를 풀고, 래디오를 들으며 퀴즈 진행자의 퀴즈에 답한다. 또 사업에 바쁜 사람들은 시간상 절약으로 차 속에서 일을 처리한다. 다 필요에 의해 쓰는 전화지만, 생각이 차도에 있지 않고 딴 곳에 있으면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긴급 상황일 때 만 쓰자는 차 속에서의 사용제한안이 나왔다. 타당한 제안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의견을 이렇게 전달하고 싶다.
딸이 사 준 전화에 요금까지 내 주겠다는 부담감에서 나는 지금 최소한의 전화를 하고 있다. 더욱이 차에 걸려오는 전화는 받을 엄두도 못 낸다. 나 같은 사람들뿐이라면 아무 문제도 없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고 문명의 이로운 기계를 제한하자는 소극적인 의견은 싫다.
차안에서 하는 위험도를 계몽해 보자. 긴급 이외의 전화를 삼가자는 개개인의 양식에 호소하자. 좋은 음악, 좋은 말씀 들으며 차 속에서나마 여유 있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좋겠다. 누가 목숨 건 잡담을 하고, 누가 목숨 건 사업을 하겠는가.
이것은 내 손에 겨우 들어온 문명의 감각을 잃기 싫어서가 아니다. 취중 운전 같은 신체상의 문제가 아니고, 개개인의 판단과 재량의 문제다. 그 안에 들어와서 법이 구속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적 아쉬움이 담긴 의견이 아닌 것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차속에서의 휴대폰 전화통화
찬성과 반대 지상토론 “중앙일보” 2000년>
딸이 생일 선물로 준 쎌률라폰을 들고, 나도 드디어 문명의 문턱에 발을 드려놓은 느낌이었다. 남들이 길을 가면서 또 차안에서 전화하는 모습들을 보면 퍽 신기했다. 방 벽에 붙은 묵직한 전화의 수화기를 들고, 옆의 놋쇠 고리를 돌리며 “모시 모시(여보세요)”로 교환수를 부르던 시절이 그리 먼 일 같지 않은데 이제는 길에서도 전화를 거는 세상이 되었다. 폐품 같은 날들이 되어버렸지만, 내게는 골동품 같은 감상이다. 변기 위에서도, 안벽에 매달려서도 전화를 거는 곡예 하는 세대가 왔으니 신기하지 않은가.
늙은 주름이 잡혀버린 내 머리로는 전화 줄 없이 전화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은 아니다. 선이 없는 머리로 산다. 둘째 손자가 다섯 살 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할머니! 할머니가 헤븐에 가면, 헤븐이 있나 없나 전화 해 줘요” “이 사람아, 헤븐에는 전화 같은 것 없어” 하자 "할머니 어떻게 알아? 있는지 없는지, 없으면 Like a Spiritual Talking"하며 웃는다. 어린것은 벌써 선에서 벗어난 세계를 갖고 있다. 쎌률라폰 같은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울까. 놋쇠고리의 전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이나 신기한 것이지 하며 씁쓸히 웃었다.
옛적에는 사람들이 말을 타고, 또는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릴레이식으로 멀리까지 말을 전했다. 누가 그것을 불편하다고 느꼈을까. 사람들은 그 시대에 그 나름대로 묵묵히 또 기꺼이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새로운 냄새를 맡으면 아 그때는 정말 불편했었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의 간사함이다.
오래 전 일이다. 길에서 차가 이상했다. 겨우 남의 주차장에 차를 몰아넣고, 공중전화를 찾은 후 동전을 뒤졌다. 두어 개 잡혔다. 한 번치 통화료다. 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이 안 되고, 기계는 이잉 소리를 내며 동전을 삼켜버렸다. 낡은 차를 모는 신세타령을 하며, 남의 가게에서 구걸하다싶이 동전을 바꿨다. 당연한 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젠 그런 안타까운 일을 면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기뻐하고 있는 중, 문제가 생겼다. 사용을 제한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로 긴 거리를 가면서 전화로 무료를 풀고, 래디오를 들으며 퀴즈 진행자의 퀴즈에 답한다. 또 사업에 바쁜 사람들은 시간상 절약으로 차 속에서 일을 처리한다. 다 필요에 의해 쓰는 전화지만, 생각이 차도에 있지 않고 딴 곳에 있으면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긴급 상황일 때 만 쓰자는 차 속에서의 사용제한안이 나왔다. 타당한 제안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의견을 이렇게 전달하고 싶다.
딸이 사 준 전화에 요금까지 내 주겠다는 부담감에서 나는 지금 최소한의 전화를 하고 있다. 더욱이 차에 걸려오는 전화는 받을 엄두도 못 낸다. 나 같은 사람들뿐이라면 아무 문제도 없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고 문명의 이로운 기계를 제한하자는 소극적인 의견은 싫다.
차안에서 하는 위험도를 계몽해 보자. 긴급 이외의 전화를 삼가자는 개개인의 양식에 호소하자. 좋은 음악, 좋은 말씀 들으며 차 속에서나마 여유 있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좋겠다. 누가 목숨 건 잡담을 하고, 누가 목숨 건 사업을 하겠는가.
이것은 내 손에 겨우 들어온 문명의 감각을 잃기 싫어서가 아니다. 취중 운전 같은 신체상의 문제가 아니고, 개개인의 판단과 재량의 문제다. 그 안에 들어와서 법이 구속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적 아쉬움이 담긴 의견이 아닌 것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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