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아닌 화가가 되었을 때
2007.05.21 12:49
화가 아닌 화가가 될 때 “미주문학” 2001
사막 길을 한없이 달린다. 내가 화가라면 꼭 한번 그려보고 싶은 광경이다. 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겠다. 왜 화가가 되지 못했을까. 화가가 되었더라면 이 아름다운 광경을 색채로 나마도 표현했을 것을 하고 생각한다. 눈으로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
도화지의 한가운데에 선을 그었다. 산기슭이다. 그 위에 느슨한 산마루가 새끼 치듯 이어졌고, 오후 세시의 산 그림자를 드리운다. 산머리 위의 파란하늘은 서서히 색깔을 더하며 산마루와 맞닿고 있다. 하늘에 펼쳐진 구름에는 가신 어머니의 손길이 미쳤는가, 가시밭 손길로 얇디얇게 피시던 바로 그 솜이 떠 있다. 묻어나는 어머니 손에서 떨어져 높게 하얗게 하늘하늘 떠 있다.
붓이 아래로 내려온다. 연 분홍과 보라색 야생화가 한창이다. 그것을 아래 화면에 가득 심는다. 그 사이 사이로 주홍색 “오카틸로” 사막 꽃이 가시 대 끝에 피어 있다. 천신만고 끝에 가시 길 지나 핀 꽃이다. 장하다. 드디어 아래 화면에 도달했다. 길이 나온다. 길섶에 개나리꽃과 같은 싸리 꽃이 노랗게 눈부시다. 이 늦봄의 자연을 내 마음속 화폭에 그려 넣으며 나는 옛적 일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시절, 내 그림이 교실 뒷벽에 붙은 일이 있었다. 육 년 동안 단 한번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기는커녕 어찌나 부끄러웠던지 새 그림으로 바뀔 때까지 그 쪽을 처다 보지 못 했다.
사생(寫生)시간에 그린 그림이다. 밖에서 자연을 보고 자연을 그리라는 시간이다. 그러나 나는 있는 그대로를 보고 그린다는 개념부터 너무 어려웠다. 자연이 내 눈에는 움직여 보였고, 그 움직이는 것을 포착한다는 것은 날아가는 새를 잡는 느낌과 같았다. 그래서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집 한 채를 길게 반듯하게 그렸다. ‘ㄷ’ 자 집은 물론 힘들었을 것이다. 평면 일자로 된 집이었다. 그 집 양쪽에는 지붕보다 높은 나무를 심었고 풍성하게 초록으로 칠했다. 마당은 땅 색이었지만 너무 무심심한 것 같아서 흰 울타리를 낮게 쳤다. 그래도 그것으로 그림을 끝내기는 너무 단조로웠던 모양이다, 집채 앞에 끝에서 끝으로 디딤돌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 디딤돌 위에 내가 그릴 수 있는 한의 신발이란 신발은 다 얹어 놓았다. 코고무신, 높은 장화, 짚신, 게다짝 등 등, 운동화도 그렸을까? 아마 그것은 어려워서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내 이 그림은 사생화가 아닌 머릿속에서 그린 사심(寫心)화였다. 사생화 시간에 그린 사심화가 교실 벽에 붙었으니 부끄럽지 않았겠는가. 나는 그런 그림을 붙인 우리 선생님은 좀 짐작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일은 육십 년이 지난 지금 까지 역역히 기억하고 있는 일중의 또 하나다.
그러나 이번 내가 본 경치는 절대 사심화가 아니다. 내 머리 속에 확실하게 그려 넣은 사생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것을 화판에 옮길 수 없는 등신의 비애를 안고, 나는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만이라도 간직하고 싶었다. Visitor Center에 들렸다. 어찌 된 일일까. 어느 사진도 우리가 막 보고 온 광경과 같은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특히 미네랄, 아이온, 마그네슘 등이 섞여 오묘한 광채를 발했던 이름대로의 PAINTED DESERT의 돌산이다. 어떤 예술가의 재간으로도 사람이 만든 기계의 눈으로는 잡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없었다.
그런 휘한한 광경이 장장 몇 십 마일이나 이어졌다. 우리의 감탄사는 나중에 탄식으로 바뀌었다. 다시 올 수 없이 먼 길이였다. 하도 멀어서 자연을 좋아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안타까움이 내 한숨을 더 길게 했다.
사막을 지나 “지구, 기의 중심”이라고 일컫는 세도나에 들렸다. 분모가 클수록 분자는 작아지는 법, 우리의 욕심은 너무 컸다. 기대만 못했다. 그러나 그 아침 되돌아서는 차간에서, 숨죽이게 눈에 박힌 한 광경으로, 남들이 말하는 세도나는 역시 세도나였다. 아침 햇살을 받은 달이 반대편 산 위에 떠있다. 우주 태고의 색깔 벌건 돌산 위에, 허물 벗은 새살로 달이 희멀겋게 떠있다. 태고의 강렬한 얼에 시달려 문창호지 같이 얇아진 달이다. 힘없이 떠 있는 달은 나 자신이었다. 매달려 기대고 싶다. 생각한다. 이제 나는 이 세상에서 볼 것을 다 보지 않았을까. 우주의 신비와 허무를 동시에 본 내 마음은 허허히 비어 갔다.
집으로 도라 오며 생각한다. 내가 남들이 일컫는 화가였더라면 그 아름다움을 얼마만큼 그려 넣었을까. 또 일컫는 문인이었다면 얼마만큼이나... . 할 수가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신이 하신 일은 신만이 재현한다. 그래서 또 생각한다. 화판에 그려 무엇하며, 원고지에 써서 무엇할까. 보고 느끼고 기뻐하는 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내 뿌듯한 가슴은 아름답고도 신비스런 자연을 창조하신 신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막 길을 한없이 달린다. 내가 화가라면 꼭 한번 그려보고 싶은 광경이다. 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겠다. 왜 화가가 되지 못했을까. 화가가 되었더라면 이 아름다운 광경을 색채로 나마도 표현했을 것을 하고 생각한다. 눈으로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
도화지의 한가운데에 선을 그었다. 산기슭이다. 그 위에 느슨한 산마루가 새끼 치듯 이어졌고, 오후 세시의 산 그림자를 드리운다. 산머리 위의 파란하늘은 서서히 색깔을 더하며 산마루와 맞닿고 있다. 하늘에 펼쳐진 구름에는 가신 어머니의 손길이 미쳤는가, 가시밭 손길로 얇디얇게 피시던 바로 그 솜이 떠 있다. 묻어나는 어머니 손에서 떨어져 높게 하얗게 하늘하늘 떠 있다.
붓이 아래로 내려온다. 연 분홍과 보라색 야생화가 한창이다. 그것을 아래 화면에 가득 심는다. 그 사이 사이로 주홍색 “오카틸로” 사막 꽃이 가시 대 끝에 피어 있다. 천신만고 끝에 가시 길 지나 핀 꽃이다. 장하다. 드디어 아래 화면에 도달했다. 길이 나온다. 길섶에 개나리꽃과 같은 싸리 꽃이 노랗게 눈부시다. 이 늦봄의 자연을 내 마음속 화폭에 그려 넣으며 나는 옛적 일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시절, 내 그림이 교실 뒷벽에 붙은 일이 있었다. 육 년 동안 단 한번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기는커녕 어찌나 부끄러웠던지 새 그림으로 바뀔 때까지 그 쪽을 처다 보지 못 했다.
사생(寫生)시간에 그린 그림이다. 밖에서 자연을 보고 자연을 그리라는 시간이다. 그러나 나는 있는 그대로를 보고 그린다는 개념부터 너무 어려웠다. 자연이 내 눈에는 움직여 보였고, 그 움직이는 것을 포착한다는 것은 날아가는 새를 잡는 느낌과 같았다. 그래서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집 한 채를 길게 반듯하게 그렸다. ‘ㄷ’ 자 집은 물론 힘들었을 것이다. 평면 일자로 된 집이었다. 그 집 양쪽에는 지붕보다 높은 나무를 심었고 풍성하게 초록으로 칠했다. 마당은 땅 색이었지만 너무 무심심한 것 같아서 흰 울타리를 낮게 쳤다. 그래도 그것으로 그림을 끝내기는 너무 단조로웠던 모양이다, 집채 앞에 끝에서 끝으로 디딤돌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 디딤돌 위에 내가 그릴 수 있는 한의 신발이란 신발은 다 얹어 놓았다. 코고무신, 높은 장화, 짚신, 게다짝 등 등, 운동화도 그렸을까? 아마 그것은 어려워서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내 이 그림은 사생화가 아닌 머릿속에서 그린 사심(寫心)화였다. 사생화 시간에 그린 사심화가 교실 벽에 붙었으니 부끄럽지 않았겠는가. 나는 그런 그림을 붙인 우리 선생님은 좀 짐작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일은 육십 년이 지난 지금 까지 역역히 기억하고 있는 일중의 또 하나다.
그러나 이번 내가 본 경치는 절대 사심화가 아니다. 내 머리 속에 확실하게 그려 넣은 사생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것을 화판에 옮길 수 없는 등신의 비애를 안고, 나는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만이라도 간직하고 싶었다. Visitor Center에 들렸다. 어찌 된 일일까. 어느 사진도 우리가 막 보고 온 광경과 같은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특히 미네랄, 아이온, 마그네슘 등이 섞여 오묘한 광채를 발했던 이름대로의 PAINTED DESERT의 돌산이다. 어떤 예술가의 재간으로도 사람이 만든 기계의 눈으로는 잡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없었다.
그런 휘한한 광경이 장장 몇 십 마일이나 이어졌다. 우리의 감탄사는 나중에 탄식으로 바뀌었다. 다시 올 수 없이 먼 길이였다. 하도 멀어서 자연을 좋아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안타까움이 내 한숨을 더 길게 했다.
사막을 지나 “지구, 기의 중심”이라고 일컫는 세도나에 들렸다. 분모가 클수록 분자는 작아지는 법, 우리의 욕심은 너무 컸다. 기대만 못했다. 그러나 그 아침 되돌아서는 차간에서, 숨죽이게 눈에 박힌 한 광경으로, 남들이 말하는 세도나는 역시 세도나였다. 아침 햇살을 받은 달이 반대편 산 위에 떠있다. 우주 태고의 색깔 벌건 돌산 위에, 허물 벗은 새살로 달이 희멀겋게 떠있다. 태고의 강렬한 얼에 시달려 문창호지 같이 얇아진 달이다. 힘없이 떠 있는 달은 나 자신이었다. 매달려 기대고 싶다. 생각한다. 이제 나는 이 세상에서 볼 것을 다 보지 않았을까. 우주의 신비와 허무를 동시에 본 내 마음은 허허히 비어 갔다.
집으로 도라 오며 생각한다. 내가 남들이 일컫는 화가였더라면 그 아름다움을 얼마만큼 그려 넣었을까. 또 일컫는 문인이었다면 얼마만큼이나... . 할 수가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신이 하신 일은 신만이 재현한다. 그래서 또 생각한다. 화판에 그려 무엇하며, 원고지에 써서 무엇할까. 보고 느끼고 기뻐하는 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내 뿌듯한 가슴은 아름답고도 신비스런 자연을 창조하신 신을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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