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강물에 沈香을…

2002.12.29 03:12

박경숙 조회 수:228 추천:4

[아침 논단] 시간의 강물에 沈香을… ..... 文貞姬

한 삼백년 전쯤인가, 천년 전쯤에 누군가 오늘 우리를 위해 강물 속에 묻어 두었다는 침향(沈香)을 생각한다. 침향은 참나무 같은 생목(生木)을 내가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 훗날의 누군가를 위해 묻어 둔 것으로 햇볕에 잘 말려 피우면 그 그윽함이 법열(法悅)을 느낄 정도라고 한다.

옛사람의 마음과 미래가 빚어내는 그야말로 혼교(魂交)의 향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류와 육수가 합수(合水)하는 곳에서 가끔 발견된다는 침향 한쪽을 얻어다가 오늘밤엔 홀로 그것을 피워보고 싶다. 가령 지난 6월에 만난 눈부신 감격은 혹시 천년 전쯤 누군가 묻어둔 침향의 향기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금년에도 옛사람처럼 미래를 위해 침향을 묻는 그런 여유와 존중의 시간을 살지 못하고 다만 속도를 살았던 것같다. 시간을 아끼려고 허둥거렸고, “시간은 돈이다”라고 외치며 건조하고 삭막하게 뛰어다녔다. 경쟁과 유효기간과 승패의 시간이 아니라 진정한 시간을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손목마다 벽마다 널려있는 시간, 지하철역마다 휴대폰마다 범람하는 시계들에 둘러싸여 가혹하고 강압적인 속도에 길들여져 살았을 뿐이다. 이런 직선의 삶보다는 느림의 삶을 생각해 보기도 했고, 비인간적인 제도의 시간이 아닌 게으름의 여유를 예찬해 보기도 했지만 시계의 권력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시계라는 기계의 시간을 사느라 자연과 생명의 시간을 살지 못한 채 오늘날 세계는 하나로 통일된 캘린더 속에서 모두가 표준화된 시간을 살고 있다. 빠른 인터넷과 즉석음식의 범람, 자동차의 짜릿한 속도를 질서와 문명이라고 신봉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시간은 영국이 해상권을 제패한 후 그리니치 자오선을 0도로 정한 것이 시초로서 이것이 세계 표준시이다. 이 표준시의 제정은 그들이 세계의 시간을 제패한 중대한 계기이며, 고도한 서구 제국주의의 시간 이데올로기로서 모든 자연의 시간을 식민지화했다.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은 똑같은 시계의 시민이 되어 표준시간이 아닌 자연과 야성의 시간들을 느리고 게으르고 미개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농경사회가 아닌 우리 현실에서 옛날처럼 박꽃 피고, 닭 우는 시간이나 음력을 사용하며 겨울 농한기를 한유하게 보낼 수는 없는 일이지만, 진정한 나의 시간, 자유로운 시간의식을 회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바뀌게 될 헌 달력과 새 달력 사이에서 이 숫자들의 시작과 끝이, 이 속도의 빠르고 느림이 본질적으로 나의 존재나 나의 생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깊이 깨닫는다. 시간은 지금 여기에서 찰랑거리고 그 한가운데 오직 내가 살아있을 뿐이다.

어느 핸가, 바로 오늘처럼 한 해가 바뀌는 날쯤의 저녁이었다.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이방의 단역배우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서른 몇 살쯤 되었던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죠?”달력의 마지막 숫자를 보며 이런 말을 내뱉는 나에게 그녀는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아니에요. 모든 시간은 새것이에요!”순간 세상의 눈송이가 모두 내게로 오는 착각을 했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처녀림 같은 시간이 눈부시게 펼쳐졌다. 내가 무엇을 했다고 하늘은 이렇듯 새로운 시간을 매순간 주시는 것일까.

내일만 지나면 축복처럼 우리는 또 새 달력을 갖게 되리라. 다시 풍성한 시간 부자가 되리라. 인생은 과연 짧은 것인가? 인생은 뜻깊은 일을 하며 제대로 살기에 짧을 뿐 대강 살기에는 외롭고 지루한 것이기도 하다. 침향은 커녕 당장의 이익에 바빠서 마구 오염시킨 산천(山川)과 상처입고 훼손된 초목(草木)만 미래에 남겨 드릴 것 같아 문득 가슴이 뻐근해진다.

어느 신화에는 시간을‘악마의 맷돌’이라고 했는데, 그래도 나는 시간을 ‘희망의 맷돌’이라고 부르고 싶다. 저 깊은 강물 속에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 오늘 내가 묻을 한 자루 침향은 무엇인가.
- 조선일보[200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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