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에 대한 회상

2003.01.19 04:20

박경숙 조회 수:195 추천:1

< 40년 전의 친구가 보낸 첫번째 편지 >


안녕하세요

우연히, 그것도 내자신이 무엇을 하고있는지조차 망서려지는 지리한 오후,
40여년전으로 돌아갔다는 자신의 모습이 새삼 놀랍기만 합니다.

어느소설을 찾는 도중(웹사이트에서) 당신의 가냘픈 흔적이 있기에 아주 우연히 40년 친구를 다시 접하게 된 동기랍니다.

아마 당신이 40여년 친구가 확실하다는 가정하에 내 자신을 알립니다.

금산초등학교를 다녔던 박희동 입니다.
당신과 2-3 학년 같은 반이었고 내 기억으론 3학년때 당신이 서울로 전학간것으로 기억이 생생하게 납니다.
본인도 이곳 싱가폴에서 20 여년 살다보니 고향에 대한 소식, 친구 녀석들 소식이 전무합니다만
10여년전 당신이 잠깐 고향의 학교에 근무했었다는 소식을 친구들로부터 들었지요.
소병상, 김재동, 전영기 등등 역시 친한 친구들이었지만 세월이 우리를 멀리 멀리 떨어지게하는군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3학년 때 수업시간입니다.
나뭇꾼과 선녀에대한 교과서에서
선생님 (김ㅇㅇ) 이 아내있는 사람 손들으라고 할 때 몇몇 친구들이 손을, 나 역시 자신있게 손을 들고 난 후 당신이 나만 보면 놀렸던 생각이 납니다,
당신이 서울로 전학간다고할 때 물론 아쉬움과 함께 놀려대는 고달픔을 잊을 수가 있었어요,

이제 박경숙 소설가의 이미지가 어울리겠고 중년의 모습이겠지요.

무쪼록 반가움을 전합니다.


< 40년 전의 친구가 보낸 두 번째 편지 >

기억을 되살리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났죠?
그러나 다행히 가냘프지만 40여년전의 고향 친구 냄새를,
반갑다는 공감대를 찾을 수 있다는데 우리는 만족해야 겠죠.

이제 우리의 존재를 확인 해야 할 동심의 세계로 넘어가 봅시다.

일학년 때 기억이라곤 진악산 아래 신금천인가? 어릴 적 기억으론 무척 걸었던 소풍에서 최대영 이라는 친구가 소나무가지에 눈 언저리를 다쳐 선생님이 업고 뛰어 내려가던 기억뿐.

2학년 때 매주 월요일 아침 조회 때 동해물가~ 를 지휘하셨던 박재관 우리 담임 선생님은 목이 유난히 짧아서인지 항상 움추린 모습이었죠. 언젠가 노천명시인의 ‘사슴’이란 시를 접했을 때 목이 짧은 선생님의 열성적이셨던 지휘, 그리고 애국가를 크게 부르라며 소리쳤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3학년 담임선생님, 어제부터 맴돌다 맴돌다 스치는 기억…. 김재언 선생님이 아닐까요?
칠판 맨 위 꼭대기까지 빽빽하게 백묵글씨를 썼던 키가 무척 크셨던 선생님 그리고 무서웠던 기억.
오래된 교실이라 청소 당번 할 때마다 키다리 선생님한테 창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해야 헀던 시절. 그리고 끼리끼리 편을 갈라가면서 놀아야 헀던 그때.

당신과 학교 화장실에 연애한다는 낙서가 쓰여있어 그 시절 한바탕 스캔들을 일으켰던 병상이 하곤 이웃집에 살았죠.- 그 낙서는 반장인 병상이와 부반장인 당신을 시기하던 아이들의 장난이었습니다.
병상이하곤 줄창 놀고나서 공부한답시고 또 만나고…. 큰 책상 뿐인 병상이네 집에서 다리가 짧은 우리는 항상 엎쳐서 공부해야하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고.
어느날 병상이 누나를 놀려 준다고 문틀 위에 물통을 올려놓다 들켜 출입정지 먹었던 기억…

한참 후 누나는 공주 어디에선가 교직에 계시다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
그리고 병상이네 서울로 이사 가는 날, 긴 골목에서 울다가 동네 아줌마들한테 크면 만날 수 있다는 막연한 한 마디를 듣고 소매 깃으로 눈물을 닦던 시절….
40여년 전 약속과 기대가 아직도 이루어지질 못하는 아쉬운 시간들이군요.

그리고 당신에 대한 기억은 반 60명 중의 가장 예쁜 아이, 그리고 수줍음을 많이 탔던 나에게는 나무꾼과 선녀 사건 이후 당신이 무섭고 두렵고, 언젠가 반전의 기회가 오기를 항상 엿보고 기다렸던 나…..

당신 아버님의 성함을 아직까지 기억할수 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당신의 아버님과 우리아버님의 성함이 마지막 자만 틀리다는 우연. 그로 인해 당신과 당신 아버님을 동시에 내 뇌리에 오래오래 기억해 두었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아버님이 국회의원이 되셨을 때 후보자벽보가 붙었던 중도리 담벼락 구석에 이름 석자가 지워질질 않고 오랫동안 남아있었던 기억.
그리고 우리아버지가 공무원이였던 관계로 당신의 아버님과 친분이 있었다는 것.
당신은 서울 어디에선가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이라는 것.
또 당신네 집이 내 친한 친구 옆집이라 놀러 갈 적마다 당신의 소설 속에 남아있는 당신네 뜰을 볼 수 있었다는 기억..
이곳에서 친구 아버님께 연하장을 부칠 때마다 당연히 우체부 아저씨가 당신네 집 앞을 거쳐 친구집 대문 우체통에 그 연하장을 넣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

우리가 서로 다른 타국 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본능이죠.
싱가폴에는 83년도에 회사관계로 왔다가 이곳에 정착했어요. 저는 이곳에서 I.T 회사를 운영하고 있죠. 그리고 고향에는 현재 아무도 안 살아서 가볼 기회가 적군요.

제가 경숙씨 글(홈페이지에 있는)을 어제 오늘 전부 읽어 보았는데 약간 어두운 글이 많아서요 이제부터 밝은 글을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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