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落心)거리는 많아도 낙심(落心)은 말자.

2003.09.13 03:22

박경숙 조회 수:285 추천:6

정몽헌 회장의 투신 자살. 8월 4일 아침에 나는 이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 때 나는 한국 방문중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그 뿐 아니라 정 회장이 투신한 계동 현대 사옥은 내가 머물던 가회동 집에서 바라보면 직선으로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소식을 전해 듣고 창문 밖으로 현대 사옥을 내다보았다. 그 날 따라 현대 사옥은 비안개에 가려 희미하게 보였다. 마치 주인을 잃고 넋을 잃고 서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정 회장이 아내에게 쓴 유서를 읽을 땐 정말 마음으로 울었다. 한 아내의 남편, 세 아이의 아버지. 어쩌면 정 회장의 죽음은 한 아내와 세 아이를 둔 나의 죽음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시렸다. 그 후로 밖을 나설 때마다 현대 사옥을 지나쳤는데 지나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몇 일 후엔 10층도 더 되는 높이로 근조(謹弔) 현수막이 처연하게 걸려 있었다.

정 회장의 자살 후에 자살의 이유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답을 했다. TV 보도 프로그램, 신문 사설, 네티즌 등 각계 각층에서 이 사건에 대한 견해들을 내 놓았다. “정치인들이 정 회장을 죽였다. 현대의 자금 압박을 못 견뎌 그는 죽었다. 배신감에 그는 죽었다.”등등의 견해들이 나왔다. 그러나 누구도 확실한 대답을 주지 못했다. 재벌 2세로 정 회장은 꿈이 있었다.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아 더 튼튼한 민족적 기업을 이루고 싶었을 것이다. 대북 사업은 기업하는 사람으로서 민족을 위해 일한다는 큰 자부심을 주기에 충분했으리라. 그는 이런 꿈이 있었고 그 꿈들을 사랑했으리라. 그런데 그가 사랑했던 그 꿈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져갈 때 그는 낙심한 것이다. 꿈을 잃었다. 그것은 사랑을 잃은 것이었다. 그는 낙심했다. 그리고 그 낙심(落心)이라는 무서운 질병은 그의 몸을 땅에 떨어뜨리고(낙체, 落體) 말았던 것이리라.

살다보면 싸움거리가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럴 때마다 싸우는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은 코가 성하지 않겠고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을 것이다. 이혼거리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이혼거리가 있다고 이혼했다면 백년해로할 부부가 어디 있겠는가? 살인거리가 있다고 살인을 했다면 이 세상에 살인자 아닐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자살거리가 있다고 자살했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사람은 싸움거리가 있어도 싸움을 피한다. 이혼거리가 많지만 참고 산다. 살인거리가 있어도 눈을 지긋이 감고 심호흡 크게 하여 살인을 피한다. 자살거리가 있어 자살할 맘이 생길 때 가족을 생각하며 돌이킨다. 낙심도 마찬가지이다. 낙심거리가 있다. 아니 낙심거리가 많다. 그렇다고 늘 낙심해서는 안 된다. 낙심거리는 많지만 낙심은 말아야 한다. 자칫 낙심(落心)은 낙체(落體)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처럼.

우리의 삶은 낙심거리의 전쟁터이다. 병, 사업실패, 실연(失戀), 배신, 이별, 사별. 낙심거리의 전쟁터에서 낙심이라는 불화살이 날아온다. 초가지붕 같은 우리 마음을 향하여 낙심의 불화살이 날아온다. 제대로 박히면 초가지붕 같은 우리 마음은 삽시간에 재로 변하고 만다. 정 회장이 아마도 이런 낙심의 불화살을 맞았으리라. 우리도 언제 이런 불화살을 맞을지 모른다. 낙심거리는 많아도 낙심은 말자. 정 회장이 낙심을 모르는 하나님을 조금만 일찍 만났더라면. 여러분도 낙심의 불화살을 피하려거든 낙심을 모르는 그리고 낙심의 불화살을 막아주는 그 분을 미리 만나 두면 영원히 후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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