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케이트 밀레트의 <성의 정치학>을 읽고

2003.10.08 02:41

박경숙 조회 수:528 추천:12

성차별이 없는 세상을 향한 꿈

<그것이 알고 싶다>란 텔레비전 프로에서 또다시 매 맞는 아내의 참상이 다뤄졌다. 이 땅에는 왜 이다지 매 맞고 사는 아내가 많은 것일까. 여성 대졸자의 취업문이 형편없이 좁은 나라, 문중의 재산이 딸자식에게는 상속되지 않는 나라, 여성 성희롱과 성폭행에 대해 더없이 관대한 나라, 여성 국회의원과 장관의 수가 너무나 적은 나라, '용모 단정'이란 족쇄를 씌워 여성을 평가하는 나라, 속담사전에 "암탉 울어 날이 샐까?"가 버젓이 나오는 나라……. 나는 남녀 성징의 차이가 성차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 또한 남녀 고용의 평등이 이루어진 사회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라고 믿고 있다. 이런 사고를 갖게 된 것은 케이트 밀레트의 <성의 정치학> 덕분이다.
저자는 이 책으로 1970년에 콜롬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몬느 드 보봐르의 <제2의 성>, 베티 프리만의 <여성의 신비>와 더불어 여성학의 3대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이 책은 헨리 밀러의 <섹서스> 인용에서 시작된다.

밀레트가 D.H. 로렌스·헨리 밀러·노먼 메일러·장 주네 네 사람의 소설을 비판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로라 하는 유명작가의 소설을 보았더니 남성은 성행위를 통해 여성에게 권력을 행사하더라는 것이다. 소설은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문화인류학적으로도 성이란 것은 남성의 배설욕과 폭력과 연계되어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유사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가부장제 아래서 남녀관계는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은 물론이거니와 성행위에서조차도 지배-종속과 억압-예속으로 이루어져왔음을 저자는 논증하였다. 또한 '사랑받는 아내, 착한 아이들, 행복한 가정'이라는 허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이 희생양이 되어왔는지 저자는 따지고 비판하였다.
저자는 성의 혁명이 두 번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한번은 1840년 세네카 폴의 여성인권선언으로부터 시작된 여성참정권 운동이다. 80년 동안의 투쟁 끝에 여성에게 보통선거권이 부여되었고 이것이 첫 번째 성의 혁명이었다. 두 번째 성의 혁명은 피임약의 발명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저자는 나치 정권과 공산혁명에 성공한 소련이 여성을 부추겨 그 힘을 이용했다고 보고 1930-60년대를 오히려 반혁명의 시기로 간주하였다. '남근 숭배'적인 프로이드의 논리도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된다.
미네소타 주립대학을 전체 차석으로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으로 유학을 가 수석으로 졸업한 밀레트는 정신병원 신세를 1년 반 동안 진다. 지상의 그 모든 지배권력에 도전한 밀레트의 용기가 소설 쓰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1974년,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소설 <플라잉>을 읽은 밀레트의 부모는 딸이 양성애자임을 알고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킨다. 저자는 여성학의 태두가 되었지만 부모를 설득하지 못한 탓이었다. 퇴원 후 밀레트는 소설가·영화제작자·여성운동가·조각가로 살아갔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6
전체:
105,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