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옥 시인作/ 약속
2004.11.21 06:10
약 속
강 남 옥
며칠째 분뇨 수거차를 기다렸다. 드디어 왔다.
" 왜 이리 늦게 오셨어요? 약속을 어기시다니."
" 똥 퍼먹고 사는 놈이 약속은 무슨 약속이야,
책상 앞에 앉은 놈이 약속을 해도 했겠지.
똥 퍼는 놈 똥만 퍼면 되지, 약속은 왜 해?"
분뇨 수거차가 뒤뚱거리며 멀어져 갔다. 참 시원하다.
하긴 약속하고 똥 누러 가 본 적도 없고, 변소가
약속된 날짜에 그득해지는 것도 아니다.
1989년 열은사 발행 강남옥 시집 " 살과 피"에서
이 시에서 화자(話者)는 분뇨 순거 인부와 시인과의 이야기 속에서
약속을 두고 나오는 과정 들이다 시인은 사무업무를 보는 직원에게
분뇨 수거를 전화로 약속했고 분뇨 수거 인부는 책상 머리에 앉아
현장 현실을 모르고 일방적으로 한 약속에 대한 부정, 그리고 분뇨
수거 인부가 직시하는 말 한마디에서 가슴 뭉클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실무자 위주의 약속이 아니라 일방적 통보의 정서가 갖는
불신의 벽은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과정을 시인은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생리 현상은
어떤 약속으로 이루어 지지 않음을 통해 약속이라는 말을 되묻고 있
다 인생의 행복이란 약속된 것이 아니고 배설물 처럼 오장 육보에
간직한 것이 아니다 내 마음 속에 깃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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