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1/마종기

2008.06.26 02:39

박경숙 조회 수:274 추천:29

물빛 1/마종기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
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생전에 맺혀있던 여한도 씻어내고,외로웠
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 개씩 씻어내다 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 깨끗한 물이 될 수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주
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주세요.나는 허황스런 몸짓을 털
어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
다. 당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
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째 가진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까. 부디
당신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시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
에서 당신이 될 것 입니다.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연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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