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가 없다

2007.06.13 20:20

장태숙 조회 수:57

    비상구가 없다    
     - ‘배비장전’에서 -

                           장태숙

서슬 퍼런 동헌 앞마당
해어화 가시에 찢긴 물고기 한 분
벌거벗은 몸으로 기어가신다

한라산 휘돌다 온 제주 바닷바람
거짓사랑 놀음에 생니 뽑힌 구멍으로
온갖 소문 불어 넣고
후줄근한 맹세가 달아 난 마음이
눈 먼 허욕으로 걸어 간 구름궁전
배비장, 천 길 낭떠러지 떨어져
필사적으로 궤짝 속 숨어들다

사람은 길이 아니고 희망은 허방이다

면도날 위에 서있는 먹물 같은 시간
숨소리마저 가슴에 소름 돋았을
열 두 지옥 터진 맨살로 헤매었을
뼛속까지 까맣게 탄 치욕이 흘리는
신음소리가 아프다
괴롭히는 것이 즐겁다는 듯
박장대소 웃어대는 쑥덕공론 얼굴들이
비극적으로 슬픈

그때나 지금이나
무리를 이룬 말(言)들의 간교한 힘
그 힘이 쳐 논 그물에는 비상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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