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재미 식해

2007.06.23 04:57

배희경 조회 수:48


          가재미 식해(食醢)                     미주문학  2004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뭣인가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가재미식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것은 삼백 육십 오 일 그것만 먹어도 질리지 않겠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가재미식해는 생선과 조밥을 발효시켜서 만든 밥반찬이다. 생선은 생선이지만 짠 젓갈이 아니며, 또 그렇다고 즉시 양념해서 먹는 홍어회 같은 것도 아니다.
   지금은 우리 고향 사람이 아니고도 가재미식해를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오십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내 처녀 때의 한 친구는 우리 집에 놀러오면 식해를 내놓을까봐 겁이 났단다. 처음 어머니께서 식해를 먹으라했을 때, 친구는 밥알이 뜬 물 식혜(食醯)인줄 알고 침을 삼켰다. 그랬는데 지적한 것은 고춧가루로 새빨간 그것도 낟알이 낀 생선이었다나. 겁이 덜컹 난 후론 놀러오기를 꺼려했다.

   가재미식해는 그 외에도 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초등학교 육학년 때다. 우리 학급은 육년 동안 담임 네 분이 바뀌었다. 먼저 세분 선생님과는 말썽도 잘 부린 여자아이들이었지만, 육학년을 맡으신 담임선생에게는 존경과 경의로 대했다. 그 존경심은 상상을 넘는 것이어서 지금 생각해도 말도 많던 아이들을 어떻게 길들였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사리와 질서를 확고히 심어주신 그분은 선생님이자 우리들의 아버님이었다.
   그런 선생님의 어머니께서 장사를 하신다고 했다. 그것도 시장 안에서 자재미식해와 젓갈을 파는 장사였다. 내 머리는 근엄하신 선생님과 젓갈 장사를 하신다는 그 어머니와 합쳐지지 않았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의 어머니라면 모시옷을 입으시고 안방에 엄전히 앉아계셔야 할 분이어야 했다. 시장에서 젓갈 장사라니 선생님과 맞지 않아서 고민했다.

   어느 때 부터였을까. 나는 선생님의 어머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학교공부가 끝나면 한 동내에 사는 친구 몇과 어울려 집으로 온다. 그런 어느 날 그들이 결석하고 혼자가 된 날이 있었다. 도둑처럼 두려운 걸음으로 집에 가는 길을 빗겨 시장에 들렸다. 선생님과 어머니와의 공통점을 찾고 싶어서였다.
   미리 들어 둔 인상의 노인이 보였다. 멀리서 살폈다. 풍채가 좋으시고 인자해 보였다. 그분은 수저로 식해 고기를 꼭 꼭 눌러놓으며, 밑에 잠긴 국물을 떠서 위에다 붓고 있었다. 그날의 탐색은 그것으로 끝났다.
   얼마 후에 또 들렀다. 발견한 것이 있었다. 그분은 다른 장사하는 사람과 달랐다. 말이 없으셨다.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사람들 수다에 끼지 않았고, 바쁘게 손만 놀리고 계셨다. 가까이서 노인을 보고 싶었다. 앞으로 다가 갔으나 갑자기 불안하기 시작했다. 혹시 이분께서 아들이 가르치는 학교의 교복 입은 학생을 보면 무안해 하시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사람들 짬에 끼어 달리듯 그 앞을 지나갔다.
    하루 또 기회를 보고 시장에 갔다. 젊을 주부가 가재미식해를 사고 있었다. 노인은 주부가 가져온 그릇을 받아 쥐었다. 진반찬을 사기위해 집에서 들고 온 그릇이다. 주부는 얼마만치 달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릇에 식해고기 두 마리를 담아 눌러놓고, 함지에서 삭은 조밥을 긁어 주부의 고기에 발라주었다. 그러다 아무래도 더 줘야 되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고기 한 마리를 밑에서 꺼내 허리토막을 쭉 찢었다. 그 반쪽을 그녀의 그릇에 또 담았다. 꽁꽁 눌은 후, 물수건에 손을 닦으며 그릇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 옛 노인답지 않게 고개를 숙여 반듯하게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선생님의 상을 보았다. 선생님과 어머님의 모습이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내 탐색 극은 이날로 막을 내렸다. 더 알 것이 없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이 많았다. 그 중의 하나다. 가난은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했다. 가난을 감추려는 학생들의 왜소하고 주눅이 든 마음에 힘을 주었다.      생각나는 것 중의 또 하나는 이런 일이었다. 선생님은 학교에서 공모하고 있는 포스터를 집에서 그려오라고 하셨다. 워낙 그림에 무재주인 나는 작은오빠께 사정해서 그림 한 장을 그려 받았다. 그것은 오빠 특기의 만화였다. 그 당시의 중국의 총통 장개석(蔣介石)의 얼굴이다. 우스꽝스럽게 코를 코주부같이 크게 그려놓고 표어까지 달았다. “장개석이여 어디를 가는가” 갈데가 없을테지 하는 반어의 포스터였다. 반 아이들도 멋있다고 웃었고, 나도 참 잘 된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그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포스터를 학생들께 올려 보인 선생님은 아주 무서운 눈으로 우리들을 쏘아봤다. 그리고 내 자랑스러웠던 그림은 낙선된 그림 쪽에 훌 던져졌다. 내 실망은 말 할 수도 없이 컸다.
   오랜 후에 깨달았다. 선생님은 일본과 적대관계에 있는 중국을 비하하는 것이 못 마땅하셨다. 또 철없는 우리들의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눈빛과 행동으로 똑똑히 보여주셨다. 어른들은 내 나라 사랑과, 나라 없는 슬픔을 이런데서 이렇게 은연중 표시하셨다. 내 가슴 한 구석에 짜릿한 아픔을 남긴 사건이다.  
   그렇게 곧은길만을 가르쳐 주신 분의 어머니! 아들이 사법학교를 나와서 선생님이 되었어도 아직 할 일이 남으셨던 모양이다. 연로해서 까지 시장터에서 사셨으니 그것을 지켜보는 아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가슴 아프게 우리네 어머니들을 생각하는 우리들 마음은 어느 누구도 다를 바가 없었다. 육십 여년 후, 낡은 동화책 책장을 넘기듯 한 장씩 넘기며 나는 그때를 그리고 있다.

   그런 사연도 있는 가재미식해는 이래서도 내게 으뜸가는 음식이다. 가제미식해를 담는 일은 김치 담듯 아무나 담을 수 없다. 나는 이 나이가 되었어도 아직 어머니 식해 맛을 따르지 못한다. 그 절차는 많은 요령을 요하기 때문이다. 듣기는 간단한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다.  
   우선 생선이 신선해야 한다. 바다에서 막 건진 빳빳한 것이면 최고다. 생선은 주로 손바닥만한 작은 가재미로 담는 것이 원칙이지만 다른 생선으로도 가능하다. 생선을 깨끗이 손질한다. 소금을 짭짤하게 쳐서 만 하루를 둔다. 그 보다 더 오래 절이면 어머니 말씀이다. 식해가 되지 않고 젓갈이 된단다. 담가 놓은 좁쌀을 고실고실 지어서 식힌다. 조밥이 너무 질어도 낟알이 붙어 나쁘고 너무 되직해도 뻑뻑하다.
   그런 후 절인 가재미와 조밥을 고춧가루와 약간의 다진 마늘로 버무린다. 그리고 조밥이 발효해서 생선이 삭을 대 까지 날의 장단은 있지만 약 7-15일 정도 기다린다.  냉장고에 넣지 않고 밖에서 삭힌다. 김치도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간을 맞추는 일이다. 더욱이 가재미식해는 그렇다. 너무 싱거우면 생선살이 무르고, 또 너무 짜도 생선 맛이 달아난다.
   생선이 다 삭은 후 무를 굵게 채쳐서 넣는다. 그리고 또 삼 사일정도 익힌다. 생선과 무는 반반의 비율. 무는 양을 불려서 먹으려는 의도도 있지만, 생선 맛이 배인 무가 더 맛있다는 사람도 있다. 포옥 삭은 가재미고기는 별미 중의 별미다. 뼈까지 삭은 쫄깃한 개재미를 씹으면 뼈 속에서 울어 나오는 고소한 맛과, 생선과 배합된 좁쌀의 오묘함은 몇 번 먹어 본 사람이면 그 맛을 잊지 못한다. 한 여름 날 마루방에서 냉수마리로 가재미를 쪽 쪽 찢어 먹던 그때 그 시절을 그린다. 우리 함경도 사람만이 아는 토종음식중의 으뜸가는 풍미의 찬이다.

   훌륭한 아드님을 가지신 그분의 가재미식해는 못 먹어보았지만, 아마 틀림없이 우리 어머니 식해 맛만큼이나 맛있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부터 내 입 속에선 군침이 돌고 있다. 참된 스승은 오랜 후까지도 제자들에게 그 빛을 남겼다. 그분들이 옳게 살아온 본연의 자세가 어떤 입증으로였건 그것은 아름답고 귀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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