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낀 초상화 1. <나를 지우고 간 얼굴>
2007.07.13 01:00
안경 낀 초상화 1. <나를 지우고 간 얼굴>
초상화! 그 사람의 초상화를 그릴 기발한 생각을 하다니. 몇 번은 그의 일대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보았지만 초상화 생각은 못 해 보았다. 그 초상화는 점으로 이루어 진 밴 고호같은 초상화가 아니라 점 하나 하나를 글로 나타내려는 문자 초상화다. 물감으로 얼굴을 채색할 수만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내게는 그런 재주가 없다. 마음속 영상으로 그를 그린다.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는 고호같이 주홍색으로 마무리 질 것이다.
오래 오래 전 일이다.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바삐 살다가 칠월에 들어서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뒷들을 내다보았다. 이게 무슨 변인가. 유월이면 철철 드리워 향을 뿜던 야향목(夜香木)가지가 쏭당 잘리고 동그란 기구선이 돼 있다. 세상 뜬 사람이 그렇게도 좋아했던 나무다. 저녁 뒷설거지로 바쁜 나를 불으며 꽃내를 맡으라던 꽃가지다. 무참히 깎여 동그란 분재로 변해 있으니 내가 꽃내를 못 맡았다고 생각해 온 것이 착각이 아니었다.
그가 나를 부르던 배려가 천금 가는 사랑의 고백으로 들렸던 그 때. 그래서 다른 아무 말도 더 바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사연이 담긴 나무는 밤의 요부였다. 잎새에 남은 빛을 별이 몽땅 걷어가기 전에는 향을 뿌리지 않았다. 초저녁도 훨씬 지나고 정녕 어두워져서야 자태를 들어내는 그것은 정말 엄청난 정열이며 기쁨이었다. “물조리로 향수를 뿌려놓았군” 중얼거리며 감격하던 그와의 날들을 기구선(汽球船)이 모두 걷어 담고 떠날 차비를 하고 있다니... 정원사가 사돈만 아니었더라도, 또 한때 그 사람의 좌절의 시기가 없었더라도 나는 그를 당장 해고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것도 오래 전 일이다. 이곳 미국에 와서 서툴게 정원 일을 시작한 그는 어느 노부인 집을 맡게 되었다. 치렁치렁 땅에 드리운 풀잎이 지저분하다고 생각되어 단발하듯 가지런히 잘라버렸다. 깨끗이 다듬고 기분이 좋았다. 그랬는데 그날 저녁이었다. 노부인 헌데서 전화가 왔다. 너는 당장 해고다. 운치도 모르느냐. 내가 그다지도 즐겼던 넝쿨을 잘라 버리다니. 전화통이 들썩했다. 미국에 와서 어떤 환경이나 적응해 보려던 용기가 꺾이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정원사는 나무가 크지도 작지도 않게 애를 쓰며 꾸준히 단발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다만 내 아들이 알아서 그 나무의 향기를 되찾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야향목이 필 때면, 아이들게 아버지 꽃이 피었다고 알려 왔던 그 향기는 추억의 향이었고, 그에게는 또 다른 내음이 있었다. 약 사십 년도 전 한국에서의 일이다. 그의 막내동생이 아침 일찍 우리 집에 왔다. 형이 뒷방에 고칠 것이 있으니 와서 도와달라고 한 모양이다. 아침밥을 짓는 동안 그들은 일을 하고 있었다. 상을 보기 위해 마루방에 올라서니 시동생이 뒷방에서 벌렁 뛰어 나왔다. 어휴! 하며 코를 문지른다. “어쩐 일이세요?” 내가 묻는다. 시동생은 얼굴에 가득 웃음을 띠고 “형수님 어떻게 저 형님과 사십니까?” 한다. 나도 웃으며 “왜요?”했다. “와우! 저렇게 형님 입에서 냄새가 나니 말예요.” “술 마시고 난 아침 남자들은 다 그런 것 아네요?“ ”남자들이 다 그렇다니요. 형수님은 냄새를 모르시네.“ 또 익살이다. 나는 한술 더 뜨며 ”본래 자기 구린내는 모른다잖아요.“ ”아! 이래서 부부구만...“ 능청스런 감탄조다.
그 형이 세상을 떴다. 가고 십년 되던 해에 그의 추모집을 내면서, 아이들은 하나 남은 핏줄인 동생을 이곳 미국에 초대했다. 그는 형의 일기장을 정리하면서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물었다. 옛날 평창동의 뒷방 일이 생각나는가 고.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랑 같이 그렇게도 웃어댔던 일을 기억 못하다니 씁쓸했다. 오랜만에 실컷 웃어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각기 보는 관점이 다르다. 그래서 똑 같이 겪어도 기억에 남는 것은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시동생은 형의 단정하고 근엄했던 인간성이 초점이었고, 나는 그가 술 많이 하고 가끔은 짜증스러웠던 일상사가 초점이었던 모양이다.
뒷들에 나와 앉은 시동생은 우리가 모르는 형에 관한 얘기를 연연히 이어갔다. 그를 보는 듯 했다. 그때다. 캄캄한 밤하늘을 제치고 야향목 꽃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그가 와서 유연히 끼어들었다. 향내가 그고 그가 향내였다. 어리둥절하며 나는 시동생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초상화는 이렇게 향내로 일부가 완성되었다.
그는 나와 결혼 할 때부터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단 한 번도 안경알을 갈아 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시력이 나빠지나 새나, 유행이 오나 가나 그는 한 평생 한 틀의 안경으로 살다 갔다. 지금같이 화장실에 하나, 침실에는 두 세 개의 풍족함의 세상과는 슬프도록 대조되는 세대다. 세계대전 외에 온갖 전쟁을 겪은 우리는 안경 한 벌 맞추면 평생 쓰는 줄로만 안 때에 살았다.
그는 말대로 촌놈의 단벌 신사였다. 무어든지 하나로 고집했다. 한가지 생각, 한가지 일, 한가지 목표, 자기가 그렇다고 생각한 일이면 그것으로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아픈 것도 그랬다. “당신 한쪽 볼이 왜 그리 부었어요?” 부어오른 볼이 이상해서 지적하면 “응 치담인데 거의 터질 때가 됐어, 괜찮아.” 한다. 낫게 돼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무지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그는 돈이 드는 것도, 병원에 가야하는 번거로움도 싫어서 곪아 터질 때 까지 참는 것이다.
만사가 그런 식이었다. “솜 좀 가져 와요.” 갖다 놓는다. 그는 솜을 성냥개비에 말아 귀 속에 쑤욱 집어넣는다. 빙빙 돌리고 빼 낸 솜에는 개천의 오물 같은 검붉은 진물이 묻어 나온다. 곪아서 터졌단다. 나는 기절초풍, 당신은 바보야 바보야 하며 거의 운다. 코를 맞대고 사는 남편의 엄청난 고통도 눈치 채지 못한 내가 싫었고, 또 혼자 참고 사는 그가 야속했다. 형님 두 분이 의사인들 무슨 소용일까. 의사 집안에서 베운 것이란 죽도록 참아야 된다는, 그러면 저절로 낫는다는 이치를 배운 것일까. 나는 그를 위로하기 보담 화를 더 냈다.
그의 유품 속에는 그의 낡은 안경이 전리품 같이 간직되어 있다. 험한 전쟁을 겼었고, 험한 생을 걸어온 세월은 그가 항상 말한 “여기가 천국이지” 한 그의 말과는 정 반대의 아픈 일생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면 그는 거짓말을 하며 살았단 말인가. 잘 보이지도 않았을 안경을 그래도 안경이라 쓰고 다녔고, 죽도록 아프면서 참았던 모든 고통, 나는 왜 그 고통을 그렇게도 몰랐을까. 항상 남편을 죽도록 사랑했다고 넙적넙적 고백하면서, 또 그를 내 온 힘을 다해 섬겼다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니. 남편이 아주 행복했노라고 한 말이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 같이 생각되듯, 아마 나도 그런 것은 아니었을지 내 자신에게 지금 묻고 있다.
그가 세상을 뜬 오랜 후 나는 백내장 수술을 했다. 눈 하나로 살아 본 것은 세상에 나서 하루였다. 그러나 한 눈으로 본 세상이 두 눈의 세상보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 더 잘 보였다. 안경 한 틀로 세상을 산 그의 모든 일이 다시 생각났다.
그는 속이 아프다고 처음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그것은 많은 세월을 지나 보낸 후의 실토였다. 음식을 잘 씹지 못해 이 탓인 줄 알았다. 치과에 갔다. 이빨의 거의가 벌레 먹어 있었다. 벌린 입 속을 드려다 보았다. 잘잘한 이 들이 니코친으로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T.V에서 보아온 제 삼국인의 참상이 무색했다. 갈고 닦고 빼고 입 속은 그럭저럭 정리 되었다. 그러나 아픈 것은 이빨 탓이 아니었다. 위암 삼기였다. 수술을 받고 이년 후에 세상을 떴다.
그 사람은 몸 하나 하나를 지우며 이 세상을 살았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과연 옳은 생각이었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자기 위에 가족이 있은 것이다. 마지막 마무리를 이렇게 아픔의 주홍색으로 채색하면서 일단 그의 초상화에서 붓을 뗀다.
초상화! 그 사람의 초상화를 그릴 기발한 생각을 하다니. 몇 번은 그의 일대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보았지만 초상화 생각은 못 해 보았다. 그 초상화는 점으로 이루어 진 밴 고호같은 초상화가 아니라 점 하나 하나를 글로 나타내려는 문자 초상화다. 물감으로 얼굴을 채색할 수만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내게는 그런 재주가 없다. 마음속 영상으로 그를 그린다.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는 고호같이 주홍색으로 마무리 질 것이다.
오래 오래 전 일이다.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바삐 살다가 칠월에 들어서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뒷들을 내다보았다. 이게 무슨 변인가. 유월이면 철철 드리워 향을 뿜던 야향목(夜香木)가지가 쏭당 잘리고 동그란 기구선이 돼 있다. 세상 뜬 사람이 그렇게도 좋아했던 나무다. 저녁 뒷설거지로 바쁜 나를 불으며 꽃내를 맡으라던 꽃가지다. 무참히 깎여 동그란 분재로 변해 있으니 내가 꽃내를 못 맡았다고 생각해 온 것이 착각이 아니었다.
그가 나를 부르던 배려가 천금 가는 사랑의 고백으로 들렸던 그 때. 그래서 다른 아무 말도 더 바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사연이 담긴 나무는 밤의 요부였다. 잎새에 남은 빛을 별이 몽땅 걷어가기 전에는 향을 뿌리지 않았다. 초저녁도 훨씬 지나고 정녕 어두워져서야 자태를 들어내는 그것은 정말 엄청난 정열이며 기쁨이었다. “물조리로 향수를 뿌려놓았군” 중얼거리며 감격하던 그와의 날들을 기구선(汽球船)이 모두 걷어 담고 떠날 차비를 하고 있다니... 정원사가 사돈만 아니었더라도, 또 한때 그 사람의 좌절의 시기가 없었더라도 나는 그를 당장 해고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것도 오래 전 일이다. 이곳 미국에 와서 서툴게 정원 일을 시작한 그는 어느 노부인 집을 맡게 되었다. 치렁치렁 땅에 드리운 풀잎이 지저분하다고 생각되어 단발하듯 가지런히 잘라버렸다. 깨끗이 다듬고 기분이 좋았다. 그랬는데 그날 저녁이었다. 노부인 헌데서 전화가 왔다. 너는 당장 해고다. 운치도 모르느냐. 내가 그다지도 즐겼던 넝쿨을 잘라 버리다니. 전화통이 들썩했다. 미국에 와서 어떤 환경이나 적응해 보려던 용기가 꺾이는 순간이었다. 우리의 정원사는 나무가 크지도 작지도 않게 애를 쓰며 꾸준히 단발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다만 내 아들이 알아서 그 나무의 향기를 되찾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야향목이 필 때면, 아이들게 아버지 꽃이 피었다고 알려 왔던 그 향기는 추억의 향이었고, 그에게는 또 다른 내음이 있었다. 약 사십 년도 전 한국에서의 일이다. 그의 막내동생이 아침 일찍 우리 집에 왔다. 형이 뒷방에 고칠 것이 있으니 와서 도와달라고 한 모양이다. 아침밥을 짓는 동안 그들은 일을 하고 있었다. 상을 보기 위해 마루방에 올라서니 시동생이 뒷방에서 벌렁 뛰어 나왔다. 어휴! 하며 코를 문지른다. “어쩐 일이세요?” 내가 묻는다. 시동생은 얼굴에 가득 웃음을 띠고 “형수님 어떻게 저 형님과 사십니까?” 한다. 나도 웃으며 “왜요?”했다. “와우! 저렇게 형님 입에서 냄새가 나니 말예요.” “술 마시고 난 아침 남자들은 다 그런 것 아네요?“ ”남자들이 다 그렇다니요. 형수님은 냄새를 모르시네.“ 또 익살이다. 나는 한술 더 뜨며 ”본래 자기 구린내는 모른다잖아요.“ ”아! 이래서 부부구만...“ 능청스런 감탄조다.
그 형이 세상을 떴다. 가고 십년 되던 해에 그의 추모집을 내면서, 아이들은 하나 남은 핏줄인 동생을 이곳 미국에 초대했다. 그는 형의 일기장을 정리하면서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물었다. 옛날 평창동의 뒷방 일이 생각나는가 고.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랑 같이 그렇게도 웃어댔던 일을 기억 못하다니 씁쓸했다. 오랜만에 실컷 웃어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각기 보는 관점이 다르다. 그래서 똑 같이 겪어도 기억에 남는 것은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시동생은 형의 단정하고 근엄했던 인간성이 초점이었고, 나는 그가 술 많이 하고 가끔은 짜증스러웠던 일상사가 초점이었던 모양이다.
뒷들에 나와 앉은 시동생은 우리가 모르는 형에 관한 얘기를 연연히 이어갔다. 그를 보는 듯 했다. 그때다. 캄캄한 밤하늘을 제치고 야향목 꽃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그가 와서 유연히 끼어들었다. 향내가 그고 그가 향내였다. 어리둥절하며 나는 시동생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초상화는 이렇게 향내로 일부가 완성되었다.
그는 나와 결혼 할 때부터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단 한 번도 안경알을 갈아 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시력이 나빠지나 새나, 유행이 오나 가나 그는 한 평생 한 틀의 안경으로 살다 갔다. 지금같이 화장실에 하나, 침실에는 두 세 개의 풍족함의 세상과는 슬프도록 대조되는 세대다. 세계대전 외에 온갖 전쟁을 겪은 우리는 안경 한 벌 맞추면 평생 쓰는 줄로만 안 때에 살았다.
그는 말대로 촌놈의 단벌 신사였다. 무어든지 하나로 고집했다. 한가지 생각, 한가지 일, 한가지 목표, 자기가 그렇다고 생각한 일이면 그것으로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아픈 것도 그랬다. “당신 한쪽 볼이 왜 그리 부었어요?” 부어오른 볼이 이상해서 지적하면 “응 치담인데 거의 터질 때가 됐어, 괜찮아.” 한다. 낫게 돼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무지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그는 돈이 드는 것도, 병원에 가야하는 번거로움도 싫어서 곪아 터질 때 까지 참는 것이다.
만사가 그런 식이었다. “솜 좀 가져 와요.” 갖다 놓는다. 그는 솜을 성냥개비에 말아 귀 속에 쑤욱 집어넣는다. 빙빙 돌리고 빼 낸 솜에는 개천의 오물 같은 검붉은 진물이 묻어 나온다. 곪아서 터졌단다. 나는 기절초풍, 당신은 바보야 바보야 하며 거의 운다. 코를 맞대고 사는 남편의 엄청난 고통도 눈치 채지 못한 내가 싫었고, 또 혼자 참고 사는 그가 야속했다. 형님 두 분이 의사인들 무슨 소용일까. 의사 집안에서 베운 것이란 죽도록 참아야 된다는, 그러면 저절로 낫는다는 이치를 배운 것일까. 나는 그를 위로하기 보담 화를 더 냈다.
그의 유품 속에는 그의 낡은 안경이 전리품 같이 간직되어 있다. 험한 전쟁을 겼었고, 험한 생을 걸어온 세월은 그가 항상 말한 “여기가 천국이지” 한 그의 말과는 정 반대의 아픈 일생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면 그는 거짓말을 하며 살았단 말인가. 잘 보이지도 않았을 안경을 그래도 안경이라 쓰고 다녔고, 죽도록 아프면서 참았던 모든 고통, 나는 왜 그 고통을 그렇게도 몰랐을까. 항상 남편을 죽도록 사랑했다고 넙적넙적 고백하면서, 또 그를 내 온 힘을 다해 섬겼다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니. 남편이 아주 행복했노라고 한 말이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 같이 생각되듯, 아마 나도 그런 것은 아니었을지 내 자신에게 지금 묻고 있다.
그가 세상을 뜬 오랜 후 나는 백내장 수술을 했다. 눈 하나로 살아 본 것은 세상에 나서 하루였다. 그러나 한 눈으로 본 세상이 두 눈의 세상보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 더 잘 보였다. 안경 한 틀로 세상을 산 그의 모든 일이 다시 생각났다.
그는 속이 아프다고 처음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그것은 많은 세월을 지나 보낸 후의 실토였다. 음식을 잘 씹지 못해 이 탓인 줄 알았다. 치과에 갔다. 이빨의 거의가 벌레 먹어 있었다. 벌린 입 속을 드려다 보았다. 잘잘한 이 들이 니코친으로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T.V에서 보아온 제 삼국인의 참상이 무색했다. 갈고 닦고 빼고 입 속은 그럭저럭 정리 되었다. 그러나 아픈 것은 이빨 탓이 아니었다. 위암 삼기였다. 수술을 받고 이년 후에 세상을 떴다.
그 사람은 몸 하나 하나를 지우며 이 세상을 살았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과연 옳은 생각이었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자기 위에 가족이 있은 것이다. 마지막 마무리를 이렇게 아픔의 주홍색으로 채색하면서 일단 그의 초상화에서 붓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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