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뭐 길래

2008.12.16 02:20

이영숙 조회 수:61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나의 목표는 분명하였다. 십년 후에는 엘에이타임즈를 한국 신문처럼 줄줄 읽을 것이라는 것. 그저 영어로 대화하는 것에 불편함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정도를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미국에 온지 십년이 지나고 이십년이 지난 사람들이 영어에 불편을 겪으며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부분에만큼은 꼭 성공하리라 결심했다. 그랬기에 처음 미국에 와서 열심히 영어공부에 임했다. 다행이 영어는 참 재미있었고, 내 적성에 딱 맞는 것이라는 생각을 할 만큼 좋았다. 신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학교공부보다는 영어공부에 더 주력하였다. 학교 시험기간에도 영어학원에 나갈 만큼 열정을 보였다. 그 때문에 학교성적이 좋지 못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처음 영어학원에 갔을 때, 상당히 어려웠다. 이렇게 시간만 보내면 과연 영어가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마음에 가득할 때는 낙심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남들이 말하기를 열심히 공부하며 시간만 보내면 언젠가는 이룬다고 했지만, 내가 바라보는 나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우선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말하는 것이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을. 뭔가를 알아야 배우고 말고 할 것이 아닌가. 가르치는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떠들어도 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지 조차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배운단 말인가. 낙심될 때도 있고, 그래서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말도 못하게 많았지만, 그러나 그냥 다녔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다니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다닌 데는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그랬다. 아이가 혹시라도‘아~ 힘들면 그렇게 포기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할까봐 두렵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밀고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일 년쯤 지났을까. 나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새로 들어와서 힘들어 하는 학생들에게 나를 가르치며 “저 사람은 처음에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하였지만 지금 저렇게 하는 것을 보세요. 열심히 하면 당신도 저 사람처럼 잘 할 수 있습니다.”라고 나를 본보기로 내 세울 만큼 나의 실력은 늘어났다. 보람이었고 기쁨이었다. 그래서 나의 처음 계획은 더욱 확고하게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삼년쯤 되었을 때, 학교에서 영어 에세이쓰기 대회가 있었다.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 내가 당당히 2등을 해서 엄청 기뻤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주위에서 나의 그러한 꿈을 우습게 여기고, 그저 물건 사러가서 돈이나 잘 지불하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아무리 그래도 나이 40살이 넘어서 미국에 와서 영어 배워 엘에이타임즈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그럴 때는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 ‘당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꼭 해낼 것입니다.’고 혹자서 다짐했다. 때로, 몸이 아파 쉬고 싶을 때에도 내가 이 일을 직업처럼 하리라 마음먹고 아픈 몸을 이끌고 영어 학교에 갔다. 아무리 바빠도, 누가 만나자고 해도 영어 학교를 빠지며 어디에도 가는 일이 없었다. 그러던 내가 신학교를 마치고 논문준비를 하느라 반년 이상을 공부를 쉬었다. 그러나 논문을 끝내고 나서는 다시 시작했고, 역시 전처럼 열심히 했다. 학교를 마치고 나니까 일자리를 찾아야 해서 일을 찾았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일을 갖고 난 다음부터 영어공부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그 사실이 가슴에 쓰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속에 영어를 계속해야 한다는 부담이 많았지만, 더 이상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내가 목표한 십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내 모습은 처음 내가 미국에 와서 십년을 넘게 산 사람들이 어떻게 영어가 저 정도밖에 되지 않을까 하고 안타깝게 바라보던 바로 그 모습이다. 엘에이타임즈는 놔두고라도 남들과 대화도 못한다. 미국인들이 주를 이루는 합창단에 어렵게 오디션 통과하여 들어갔는데 합창연습을 가서 그들과 대화 한마디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로 있다. 내가 입을 여는 시간은 노래만 열심히 부르는 시간이다.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건 절대로 내 모습이 아니다. 아무리 발부둥을 쳐도 어쩔 수 없이 나는 바로 이런 모습이다. 이제 이틀 후면 한국에 나간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내가 미국에서 십년 가까운 시간을 살고 왔으니 영어에 능통한 사람쯤으로 생각하겠지. 뭐라고 변명을 할까. 그들이 내 모습을 알면 얼마나 웃을까. 내 모습이 이게 뭔가.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12/15/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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