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에 쌓이는 구인광고
2007.07.24 07:37
오랫만에 화창히 갠 초 여름날, 킨더가든에 다니는 막내 아들이 걸프랜드(?) 캐서린이랑 열심히 물장난을 하면서 내 차를 닦고 잇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앞집에 살고 있는 대학생 앤드루가 지나가다가 느닷없이 아무 일이라도 좋으니 시킬 일이 없느냐고 물어왔다.
걸프랜드와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컨서트에 가기로 했지만 티켓값이 너무 비싸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 직장에 나간지 얼마 안됐는데 그새 그만 두었냐고 깜짝 놀라 물으니 그 곳에서 버는 돈으로 차 유지비와 생활비에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집에 할 만한 일을 찾아 보겠다며 말해 주는 순간 웃음이 났다. 지난 봄 방학때 그집 식구가 멕시코로 여행을 갔는데 앤드루는 다음달 낼 차 페이먼트가 없어 못따라 간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여자친구만 데리고 휴가를 떠나시고 앤드루만 혼자 남아 열심히 일을 해야 했다. 그 중엔 새벽에 우리 식구를 공항에 데려다 주는 일도 포함됐다.
웬만하면 한번 눈감아주고 아들을 휴가여행에 데려갔을 법도 한데 앤드루의 부모님은 그게 아니다. 아들 혼자 남아서 일 하는 걸 당연히 생각하는 것이었다
미국인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어려서부터 스스로 책임지는 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니 요즈음 들어 우편함에 일거리를 찾는 학생들의 광고가 부쩍 많이 들어 있다.
자신은 우등생이며 어려서부터 개와 고양이, 말을 잘 키워 베이비시팅이나 펫시팅을 잘 할 수 있다며 말과 함께사진을 찍어 보낸 중학생, 베이비시터 클래스도 수료했다며 예쁜 명함을 만들어 보낸 12살짜리 소녀, 가드닝이나 페인팅 등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남학생의 광고 전단지를 보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돈에 대해 가르쳐주는 시기는 언제가 적당할까?
대체적으로 돈에 대해 알게되는 6-7세에 용돈을 주면서 시작하면 좋다고 한다.
나눠 쓰는 돈, 저금하는 돈, 쓰는 돈 등을 셋으로 분류해 쓰게 하는데 나눠 쓰는 돈으로 기부금이나 선물을 사게 하고 일정한 금액은 꼭 저금을 하도록 하며 마지막으로 쓰는 돈은 부모가 간섭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자기돈으로 물건을 사면서 실수도 하고 후회도 하면서 돈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또 사고 싶은 물건을 기다렸다가 사게 되는 법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다음 언제나 장난감 하나를 들고 나와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집 막내에게 적용해 보았다.
그날도 장난감 코너로 가사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골랐는데 10달러가 채 안됐다. 마침 막내의 총재산이 11달러여서 그 돈으로 사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집에 와서는 이렇게 재미없고 시시한 장난감을 사느냐고 돈을 다 없앴다며 금세 후회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신기하게 그 다음부터는 마켓에 가도 뭘 사달라고 조르지 않고 장난감도 만지작 거리다 놓고 나왔다.
이 이야기를 친한 유대인 친구에게 들려 주었다. 그 친구도 10살이 된 딸에게 매주 화장실 청소를 하는 값으로 10달러를 주면서 알아서 쓰게 했더니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미리 가격을 알아 놓았다가 세일을 하면 산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스스로 예산을 세우고 이에 맞춰 돈 쓰는 습관을 길러 주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
이번 여름방학땐 아이들에게 집안일 하나씩 맡겨 일을 하게 하고 또 스스로 용돈을 관리하게 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미주중알일보 '이 아침에'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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