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낀 초상화 2. <얼굴 밑 뜨거운 피>

2007.08.07 22:50

배희경 조회 수:41 추천:8

       안경 낀 초상화 2.  <얼굴 밑 뜨거운 피>                

   “그 부인을 문안하고 오겠소?”“네?”“준을 데리고 다녀와요.”  그 사람은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었다. 준은 우리의 아들이며, 여인은 앓고 있다고 했다. 미륵같이 태연히 서 있었지만, 까만테 안경 속 그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고, 후루루 떨리는 가슴을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아무도 건들일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 같은 것이었다. 엿볼 수도, 시기할 수도, 만류할 수도 없는 얼굴 밑에 흐르는 뜨거운 피의 역동이었다. 아무의 잘못도 아무의 부추김도 아닌 인간 본연의 격정의 분출.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의 말을 따랐다. 그는 병원 밖에서 준이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상시 말이 없는 사람이지만 반주만 시작되면 엄청 다변이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해서 상을 물릴 때야 끝났고, 그래서 밖에서 있었던 일을 꿰뚫어 알고 있었다면 내 과신이었을까. 그 여인에 대해서도 말을 했고, 나는 그녀를 상상할 수 있었다. 여인은 그와 시대적 정서가 같은 동년배였고, 사회에서 이름 있는 위치에 있는 여인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와 한세대 가까이 늦은 연하의 나는 불안한 눈으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은 내 추측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 여인은 아랫사람을 시켜 내 가정을 알아 오게 한 것이 분명했다. 집에 나타난 생선 장수를 보는 순간, 가장시킨 사람임을 알았다. 동내 생선장수로는 처음 보는 여자였고, 또 눈이 아주 예리하게 움직였다. 나는 펌프질하며 물을 깃던 손을 멈추고 여자와 마주 섰다. 여자는 키 큰 나를 꿰뚫듯 쳐다봤고, 나는 그것을 피해 태연히 엎드려 생선 바구니를 뒤적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가재미가 있군요. 주세요. 그리고 도루묵도 참 좋아해요. 그것두요.” 정말 그 사람은 생선을 좋아했다.
   그런 어느 날 아침이었다. 일어나 보니 그는 방에 없었다. 깨우기 전에는 자진 일어나 본 일이 없었던 사람이다. 결혼해서 칠 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어딘가 달라 있었다. 한참 후 마당에 들어선 그를  보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 같았다. 수염을 깎지 않아서만이 아니었다. 초췌하고도 수척해 진 얼굴은 열병 든 사람이다. “웬일이세요. 이렇게 일찍...”  “응, 눈이 뜨여서 산을 좀 돌고 왔소.”  나는 그가 그의 격정을 억제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슴 찢기게 그가 측은했다.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내 사랑의 반추였고, 그가 바로 나였다.

   그 일은 일 년도 안 되는 안에 일어났다 끝난 일이었지만, 우리 가정을 안간 힘으로 지켜준 그가 고마웠다. 분수 같이 끓어올랐던 피를 의지와 이성으로 감내 해 낸 그에게, 항상 보답하는 마음으로 그 후를 살았다.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구두소리가 유난히 크고 재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방에 들어서자 격분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귀한 남의 자식 둘 연탄가스로 죽여 놓고 이튿날에 미국 여행이라니, 그게 될 말인가? 그리고 보도관이 하는 일이 뭣가고? 못 가! ” 울분을 참지 못하고 막 터뜨렸다. 가스가 샌 것은 불가항력적인 일이라지만, 그래도 유족에게 근신의 표시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얘기까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삼십년 후, 한국에서 우리를 방문한 그 때의 과장에게서 일의 경로를 듣고 그의 안하무인의 사건처리에 입이 딱 벌어졌다. 자기 평정에 맞지 않으면 윗사람도 안중에 없는 독불이었고, 죽어도 아부를 못하는 침묵의 돌, 이 사회에서는 절대로 출세할 수 없는 외기러기였다. 그렇게 윗사람과는 꺼끄러웠지만, 아랫사람들은 그를 따랐다. 그는 항상 약한 자의 편이 되어, 자기도 약자가 되어 살았다. 가끔은 그것이 그의 자긍심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군자라 했고, 어떤 사람들은 구워도 삶아도 안 되는 옹고집쟁이로 알았다. 그런 사람인데 집에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가장이었다면,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반반 갈릴 것이다. 분을 터뜨리는 일은 드문 일이었지만 만약 그의 뜻을 거슬렀다면, 특히 그렇게 좋아했던 술에 손사래를 치며 만류로 도전했다면 어땠을지 군금하다. 손사래를 나태하지 않았어도 좀 더 오래 살았을 것을 하고 후회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에게 술은 밥보다도, 마누라보다도, 또 하나님보다도 더 좋았으니, 그런 기분 좋은 술을 마신 그의 피는 내 내 뜨거웠다. 흥분하면 말하는 목소리가 커서, 조용한 옆집 일본 할머니는 우리가 항상 다투고 사는 줄로만 알았다 했다.

   술과 낭만은 따라다닌다. 그는 자연을 좋아했다. 아주 참 좋아했다. 그래서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틈만 나면 놀러 다녔다. 그가 세상을 뜬 후, 내게 가장 위안이 된 말이 있었다면 “준이네 식구들은 많이도 놀러 다녔지요.” 라는 말이었다. 그 사람과 같이 즐긴 시간이 많았다는 말은 그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이 되는 일 같아서 위로가 되었다.
   “게 잡으러 갑시다.” 가족과 친척 총 동원의 게잡이다. 게장에 알맞는 조그마한 게여서 모두 흥분했다. 삼삼오오 흩어져 작업에 들어갔고 돌짬에서 게가 잡힐 때 마다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졌다. 그 속에 돌연 기이한 낚시꾼이 생겨났다. 제 몸을 던져 도전한 사람이다. “이것 좀 봐라!” 하는 큰 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본 순간 모두 자기 눈을 의심했다. 손가락을 문 게 한마리가 열 다리를 쫙 벌리고 그의 팔 높이에 매달려 있었다. 가위에 물릴까 온 신경을 쏟고 있는 그들 앞에서 손가락을 먹이로 게를 잡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 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몇 마리의 게는 그렇게 해서 잡아 올린 게라고 했을 때, 나는 게를 손질하며 쓴 웃음과 함께 그를 힘껏 째려봤다. 그런 일들도 그의 뜨거운 피의 작동이었을까. 그렇다 하기엔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오랜 후, 그에겐 또 다른 용기가 필요했다.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고 난 마지막이다. 아무나 뛰어들 수 없는 험한 일에 몸을 던졌다. 나이가 까마득히 아랜 그의 후배는 “형님 하시는 일인데 난들 못하겠소.” 하고 따라나섰지만 하루 만에 기권했다. 그 후배의 눈에는 온 종일 수도꼭지만 보였고, Valley의 120도의 때 볕은 바로 연옥인 것을 그날로 안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거기서 발을 뺄 수 없었다. 방학 때면 아버지를 도와 정원 일로 나선 아이들도 코피를 줄줄 쏟았던 일을, 그는 몇 해 째 계속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직장으로 가는 길에는 간밤에 세게 분 바람으로 팜 추리가 곳곳에 떨어졌다. 그것을 보는 내 마음도 찢겨나간 가지다. 아프다. 깡마른 몸은 오늘 더 고달프겠지. 이제 그를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늘 저녁은 꼭 그 일을 그만둬 달라도 만류해야지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더 잘 안다. 우리를 바라보는 자식들에게 어떤 실망도 안길 수 없었다. 우주같이 확실히 돌고 있는 가정이라는 성역은 이렇게 부모들을 버텨나게 하지만, 그 사람의 체력은 이제 한계를 넘어섰다. 마지못해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은 암 진단을 받고 나서였으니, 그의 강단은 다만 의지로 뭉친 피였다.

   이역 땅, 그것도 내가 선택한 땅에 와서 아무리 힘들어도 누구를 원망할 수 있었겠는가. 형벌같이 내린 고통을 받았다. 그런 중에도 기쁘게 살려고 했고, 기쁘게 살았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기뻤을까. 뼈골이 빠지는 일을 하면서 과연 얼마나 행복했을까. 몸이 지체 해 내지 못했다는 것은 바로 불행을 말 한 것은 아닐지 지금도 의문이다.  
   꼭 그렇게 살았어야만 했을까. 또 그런 환경이 다시 왔다면 다시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거부감도 생긴다. 그런 길은 정녕코 밟고 싶지 않다. 남은 사람들의 밑거름이 된 그의 인생이 너무 처절했기에 다시는 밟고 싶지 않는 길이었다.  

   초상화에 수정의 붓을 가한다. 고통으로 얼룩진 그림자를 그의 얼굴 속에서 지우고 싶다. 그러나 아무리 수정을 해도 아픔은 그대로 있다. 영원히 안고 떠난 슬픔이다. 무슨 재주로 지울 수 있겠는가.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시도했다. 항상 뜨거웠던 그의 정열의 물감을 그 위에 부었다. 넘치게 부었다. 살아난다. 그가 되살아나고 있다. 이른 봄, 새 나무 잎새들이 비벼대며 연두색 소리를 내고 있는 하늘 아래서 처음 만났던 사람, 두드러지게 표 났던 까만테 안경의 청년이 신기류 같이 되살아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