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눈
2007.08.19 10:28
시인의 눈 미주문학 2005년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이 산을 오르내렸다. 가까운 사람들과 또는 그렇지 않는 사람들과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런 이 산엔 조그만 사연이 있다. 아직도 눈이 남아있는 어느 이른 봄날, 우리 가족은 중병에서 일어난 큰아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곳에 놀러왔다. 그리고 아들이 나은 기념으로 산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좋은 구실이었다. 남편은 산에 접어들자 소나무가 좋아서 획 돌아버렸다. 그날로 움막이라면 좋을 이 집을 계약했고, 초심만고 끝에 집값도 갚았다. 삼십년 전 일이다. 주위에서는 아파트에 살면서 산장을 먼저 산 우리를 보고 푼수가 없다고 답답해들 했다.
내 남편은 유별나게 자연을 좋아한 사람이다. 그가 이북에 두고 나온 부모와 산천이 그리워 몸부림 칠 때면 우리는 위로할 말을 잃었다. 더욱이 소나무를 좋아해서 “내 고향 뒷산은 소나무로 울창했었다. 그런 소나무 사이를 내 뜰같이 누비고 다녔지. 저런 물에서 점벙거렸고, 저런 뫼 발에서 뒹굴었어. 어느 이른 봄엔 아버지와 같이 마을 둘레에 미루나무 종묘를 심었고, 십 년 못 돼 나무는 안팎을 팔랑거리며 온 동내에 은빛을 뿌려 주었지.” 그의 아버지와의 추억은 이렇게 이어갔고, 그가 세월을 잃고 과거에 잠길 때면 우리도 같이 그 곳을 배회했다. 알지 못하는 곳이지만 하도 들어서 본 듯 선 했다.
그런 남편이 암 선고를 받았다. 그날 그는 산의 소나무가 보고 싶다고 했다. 때 아닌 진눈개비가 내려 도저히 떠날 수 없는 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떠날 차비를 했다. 주검을 나르는 개미들의 침묵. 나는 묵묵히 먹을 음식을 챙겼고, 아이들은 말없이 들락거리며 차를 점검했다.
달리고 달려 산길로 접어들었다. 바람은 더 거세지고 억수로 쏟아지는 비는 미친 듯이 차창을 때렸다. 한 치의 앞도 볼 수가 없었다. 쏟아져 내린 하늘은 암흑 속에서 벼랑이 되고, 그 속에 내 던져진 우리 가족의 생사는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 남편이 나직이 말했다. “서두를 것 없다. 천천히...” 차 속의 여섯 숨결은 실의와 슬픔과 긴장 속에서 질식할 직전이었다.
죽음 속 행진의 길은 이제 먼 악몽으로 남고 길은 조용하기만 하다. 나는 오늘 날듯이 친구 시인과 함께 이곳에 올라왔다. 오랜만에 오는 길이라 새로웠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주말마다 올라왔지만, 그가 세상을 뜬 후론 세월도 흐르고 세대도 바뀌어 그들의 영역이 되었다. 또 나도 시들해져서 이제 연에 한두 번 올라오면 그만이었다.
친구도 산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속에 시가 있었다. 보고 느끼면서 다른 차원의 시 세계를 더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인은 수필가 같이 이유를 찾는 것도 아니요, 소설가 같이 얘기 거리를 더듬는 것도 아니었다. 직감에서 오는 영혼을 고백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 남편도 시인이 아니었을까. 솔잎에 스치는 바람소리에 귀를 대고 고향산천의 숨결을 듣던 그의 깊은 눈! 정좌하고 소나무에 덮인 눈을 보며 추운 땅의 아버지 입김이 그리워 몸을 떨던 그 사람! 풀무로 불을 지피지 않았어도 그리운 영상들은 항상 그의 눈 속에 달랑거리고 있었다.
글로 말을 남겨야만 시인일까. 종이장위에 글 한자 떨구지 못한 시인도 시인이다. 그런 시인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글의 세계는 엄연히 글 쓰는 이들의 영역이라지만, 그 영역 외의 사람도 마음속에서 시를 쓰고 있다. 나는 꼭 내 남편을 시인이라 불러주고 싶다. 그것은 응고된 아픔의 삶이 그를 시인이 되고도 남게 한 때문이다.
친구와 나는 산길을 달렸다. 우리는 똑 같이 산 절벽에 핀 보라색 꽃을 보았다. 바람을 맞으며 오돌오돌 떨고 있다. 달리는 차 속에서 그 꽃이 퍼뜩 우리 눈에 들어왔다 사라졌을 때 그녀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목숨을 걸고 피어있군.” 시인만이 아는 시의 세계, 나는 한자 그대로 무언절구였다.
우리는 또 산 비탈길을 달렸다. 푸른 소나무 산과는 대조적으로, 한 계곡에는 검스런 풀이 숭숭 나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은 항상 까칠하게 말라있어서 시선을 돌리고 싶은 곳이다. 오늘도 그 곳을 지나고 있었다. 우리 둘은 재잘대며 같이 그 곳을 보았다. 다음 순간이다. 깔깔대고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그래도 웃고 있다. 한참 혼자 웃고 난 후 시인은 이렇게 물었다. “털 없는 여인의 음부 같잖아요?” 내 웃음보도 폭발했고 둘은 계곡이 떠나가라 웃어 제겼다.
지금까지 이렇다고 붙이지 못한 명칭을 달아주었다. 왜 그리 보기 싫었을까 한데 대한 꼭 맞는 직감적 표현이다. 이제부터 그렇게 알고 그 곳을 지나면 그리 싫어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이것도 시인의 눈일까. 눈은 눈이지만 시인의 음목(淫目)일까.
남보다 더 느끼고 더 아파하고 더 고민하며 살았을 시인들!
내 남편의 비석에는 죽도록 그리워도 갈 수 없었던 곳 “고향 방축”이라 새겼다. 그들 무릎을 베고 그 새의 아픔을 푸라고 해서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동안일까. 그곳에 있으면 또 이 쪽 정든 사람들이 다시 그리워 질 터이니-.
내 머릿속 어디엔가 느낌으로만 남아 있었던 바이론의 시 <시용의수인>이 생각난다. 온 영화를 누리며 산 삶에서 하루아침에 갇힌 몸이 된 수인 “나”의 탄식조의 시다. 가족 일곱에서 하나가 될 때 까지 쇠사슬에 묶여 산 삶은 신도 외면했던 아픔의 날들이었다.
셈을 잊은 지도 오랜 어느 하루 “나“는 홀연히 풀려났다. 그러나 그에겐 여전히 슬픔이 있다. 그 음침한 지하에서 바깥세상만 그리며 산 세월들이것만 이제 자유의 몸이 되어도 한숨짓는다. 거미와 쥐들을 벗 삼아 산 그곳이 내 집 같이 그리워서-. 아! 내겐 아직도 슬픔이 있어...”
파도가 쓸고 간 젖은 모래 위에 새 발자국을 옮기는 신선한 촉감으로 나는 그녀의 시 세계를 드려다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시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인의 눈을 가진 사람만이 시를 알고 시를 쓴다. 내 남편은 무언의 시를 가슴에 담았고, 이 친구는 유언의 시를 종이에 옮기고, 또 그날은 내가 절대로 시인이 될 수 없다고 자각한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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