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갖고 싶은 것-사랑, 그 황홀한 유혹

2009.06.07 13:08

지희선 조회 수:1132 추천:99

지금 가장 갖고 싶은 것-사랑, 그 황홀한 유혹


   어제는 금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햇빛이 쨍쨍하다. 철망 담을 따라 피어있는 색색의 장미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길가 올리브 가로수는 그 푸르름으로 더욱 의연해 보인다. 가끔은 잊은 저를 기억해 달라는 듯 “꼬끼오!“ 하고 장닭이 외쳐대고 덩달아 베이스 화음을 넣듯 어미 염소가 ”메에헤!“하고 울음 운다. 처마 끝 구리풍경도 질세라 댕그랑 그리며 바람의 부름에 화답한다. 저마다 가진 아름다움으로 유월을 노래하느라 바쁘다.      
   눈은 시원하고 귀가 맑아지니 마음마저 평화로워진다. 이런 한갓진 오후, 컴퓨터 앞에 앉아 내 소유욕을 들추어본다는 건 좀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가장 갖고 싶은 것’을 생각해야할 때이다.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을 과제라는 이름으로 옆구리를 쿡 찔러대니 골똘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시간, 장소, 경제적인 구애 없이 쓰시기 바랍니다.’하고 살뜰히 안내해 주고 있지 않는가. 어쨌거나, 이 기회를 통해 내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욕망을 한번 끄집어내 보라는 선처시겠지.    
   돈? 얼핏 떠오르는 생각이다.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서도 돈은 필요하다. 나이 들어 ‘품위 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물론, 자식들 얼굴 한 번 더 보는 방편으로서도 돈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그래서 복권도 여러 번 사 봤다. 떼거리로 붙어 있는 새끼 돼지 꿈을 꾸고도 숫자마다 행운을 빗겨가자 그마저 그만두었다. 어차피,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을 가지지 못할 바에야 돈에 대한 간절한 소망은 접어두기로 한다.
   책? 서탐이 좀 심하기는 하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서점에만 가면 이것저것 뒤적여 보며 부지런히 계산기 옆에 갖다 둔다. 올려놓은 책은 무리를 해서라도 꼭 사고 만다. 절판되었거나 오래되어 구하기 힘든 책은 두고두고 마음에 쟁여둔다. 그러다가, 천우신조로 얻게 되면 어떤 큰 선물보다도 반기고 귀히 여긴다. 이렇게 얻은 박문하의 ‘잃어버린 동화’는 조그만 문고판인데도 다이야몬드 반지보다 더 아끼고 있다. ‘책 역시 내 죽으면 다 두고 갈 것’이란 생각에 이르면 그 욕심도 슬며시 풀이 죽는다.
   차? 아, 맞다. 일전에 내 꿈이 ‘3베드룸에 뒤뜰 넓은 집’과 ‘드림 카’였지. 그런데 ‘3베드룸이 아니라 4베드룸에 2.5에이크’집을 사고 나니, ‘드림 카’꿈은 쏙 들어가 버렸다. 사실, 집과 차는 별 건데 ‘그 때’ 사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문제는, 은퇴해 버린 남편과 무능력한 내 처지로 볼 때 ‘물 건너 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는 사실. '나중에 크게 성공할 놈‘이라는 조카에게 부지런히 용돈을 주며 ’보험‘을 들어놨으니 거기나 기대해 봐야겠다. 할부로는 싫고, 전액을 ’cash'주고 사 달라는 야무진 부탁과 함께. 물론, ‘드림 카’는 사줄 수 있을 때 최신형으로 고르기로 한다. 그런데 그때 늙은 내 나이로 그렇게 멋진 차를 탈 수 있으려나?
   먼 훗날의 차 타령을 한참 했더니, ‘지금 가장 갖고 싶은 것’이라는 주제에 많이 빗나가 버렸다. 진짜 왜 이렇게도 갖고 싶은 게 없나? 결국은 ‘물질’이란 게 별 거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일찍 터득했다 보다. 나이가 준 지혜로움인지, 아니면 데카르트의 제3철학인 ‘체념의 미덕’을 익혀버린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 ‘비물질적인 것’으로 갖고 싶은 건 무얼까?
   사랑? 그래, 나는 아직도 ‘사랑’을 꿈꾼다. 짝사랑이 아니라, 함께 사랑하는 ‘로맨스.’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하며, 설레임 속에 만나고 아쉬움 속에 헤어지는 간절한 사랑. 그런 사랑을 꿈꾼다. 내 사랑은 언제나 ‘버스 지나간 뒤 손들기’였다. 뿌연 흙먼지 속에 흔들리던 영상을 잡고 왜 그리도 오래 가슴앓이를 했는지. ‘곁에 있어도 네가 그립다’란 말을 전할 수만 있다면 내 심장의 피를 찍어서라도 신호를 보내겠다. 푸른 등비늘처럼 세포 하나하나가 일어설 정도로 사무치는 사랑이라면 누군들 마다하리. 그러나, 시간의 강물을 되돌릴 수 있는 수로는 어디에? 아,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그리도 가벼이 가 버린 봄날의 사랑이여.    
    한줄기 바람이 불고, 처마 끝 풍경이 “아서라.”하며 법문을 한다. 자기도 수초처럼 흔들리면서 나를 다독이는 소리. 속으론 저도 아픈 게지. 그러니까 때로는 침묵으로 면벽 수행을 하는 거겠지. 아, 서글프다. 살아생전에는 뭐니뭐니해도 ‘건강’이요, ‘마음의 평화’라고 답해야 하다니. 내 언제 달관한 노파가 되고 싶다 했기에 노인정에서나 할 법한 얘기로 끝을 내야 하나. 하지만, 어쩌랴. 내 진솔한 감정은 ‘희망 사항’으로 끝날 수밖에.
    그런데, 숫공작은 왜 저리도 아악대며 장닭은 오늘따라 왜 저리도 목을 꺾나. 저들도 사랑의 계절, 유월을 아나 보다. 어디선가 개구리 울음 소리도 들릴 법하다.  (0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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