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일까?

2007.09.24 11:04

성민희 조회 수:9 추천:1

무엇일까?


     이번 주 들어 장례식을 두 군데나 다녀왔다. 64살 간암 환자와 92살의 노인

이셨다. 간암으로 가신 분은 떠나시기엔 아직 이른 나이라 장례식장이 많이 무거울 줄

알았는데, 딸이 결혼하여 손주의 재롱까지 보고 가셨다는 것으로 문상객들이 위로를

받았고, 노인 분 또한 자손이 많은 호상이었다.

       간암 환자분을 돌아가시기 며칠 전 목사님을 모시고 방문했었다. “우린 하늘

나라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울먹이며 아내가 말했다. 본인도 소망을 접고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셨노라고. 찬송가를 불러 드리니 앙상해진 손마디와 둥글게 휜

등허리에서 찬바람이 힘없이 일렁이고 있었다. 문병 다녀온 사흘 뒤 부인의 기도를

받던 중 편안히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감은 눈자위 아래로 눈물 조차도 흘리기

힘겨운지 축축해지던 그 분의 얼굴과 겨우57살에 홀로 남겨진 아내의 젖은 뺨이

한꺼번에 내 가슴을 밀고 들어와 장례식장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나는 손수건을 적셔야

했다. 식장은 화환들로 화려했다. 치렁치렁 늘어진 휘장에는 큰 금박의 글자들이

소란스럽기까지 한데. ㅇㅇ대 동창회, ㅇㅇ고교 동창회, ㅇㅇ여대 동창회 등, 화환들이

마구 우쭐대고 있었다. 고인의 약력 난에는 학교가 주인이 되어 앉아 있었고,

설교하시는 분이나, 조사를 읽는 분이나 한결같이 화려한 학벌을 들먹이고 있었다. 그

분이 세상을 살고 가신 모습은 모두 일류 학교들에 묻혀서 아무것도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도 모두 학교 이름들에 덮여 있었다.

학교 이름보다 더 소중한 무엇이 있을텐데. 끝내 그것을 보지못한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92살의 노인은 1년 가량 양로 병원 신세를 지다가 떠나셨다. 움직이지도 못하

고 의식만 계신 상태라 자손들이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짬을 내어 들리면, 목에

뚫린 구멍으로 죽을 넣어드리는 모습을 봐야 했고, 애처로운 눈동자에서 옛날의 쩌렁

쩌렁 울리던 목소리를 떠올리며 맘이 아팠다고도 했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해방’이

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고 하니 그 굴레가 얼마나 답답했었나 짐작이 되었다. 장례

식장은 많은 자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촐했다. 고인의 약력 난에는 지난 삶이 얼

마나 신앙적이었는지를 말해주느라 애쓰는 글들이 눈을 붙잡았고, 일제시대에 어떻게

항거했으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시간들을 희생하셨는지, 해방 후에도 기독교

역사에 찍은 발자국이 얼마나 큰지. 조사도 설교도 기도도 하나같이 신앙이란 단어를

열심히 풀어 보이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 분의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삶 앞에서 숙연해

지며, 참 사람의 길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다.

     한 주에 두 장례식을 보며. 나 또한 얼마나 지난 후가 될지 알 수 없는 나의

장례식장을 그려보았다. ‘지금 당신의 인생은 이미 오래 전에 당신이 선택한 인생’이라

는, 스펜서 존슨의 글이 문득 떠오른다.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많은 선택들. 그들

이 오만하게 버티고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잘 했다는 칭찬의 눈빛 같기도 하고 게

으름과 안일을 질타하는 눈빛 같기도 하다. 사람을 사랑하는 선택을 하였는지, 허물을

덮어주는 선택을 하였는지, 내가 가진 것 세어보기 바빠 나누기에 인색하였는지, 현실과

맞장구 치느라 혹 누굴 슬프게 하지나 않았는지. 순간순간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따라 선택의 모양도 달라졌을 터이니, 지나간 인생 여정에 붙잡아 앉히던 수많은 결정

들이 우수수 일어나 내 앞에 정렬을 한다.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후회 같은 것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장례식장에 앉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자손들은, 친구들은, 이웃들

은 다 소진한 내 삶 속에서 무엇을 꺼집어내어 깃발로 흔들까? 학벌일까? 재산일까?

신앙일까? 사랑일까? 아니면 내가 전혀 상상도 못한 그 어떤 단어일까?  갑자기 마음

이 바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