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짜리 헤이리의 장례식

2007.09.24 15:48

고현혜(타냐) 조회 수:14 추천:3




장난기많고 건드리기만해도 까르르 잘 웃던 세살박이 헤이리를 영영 볼 수 없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혼자 떠나는 길 심심하지 말라고 꽃그림 그려 있는 하얀 관속에 평소 갖고 놀던 장난감책을 가득 넣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도 어린 아이가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서 채 발길이 돌려지지 않았는데 딸을 보내야 하는 부모 심정이 오죽할까.

아이의 관을 붙잡고 같이 따라 들어 갈듯한 헤이리 엄마를 보며 우리도 함께 울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위로의 말이 있겠나.

거의 모든 사고가 눈깜짝 할 사이에 일어나듯 헤이리도 정말 잠깐 사이에 풀사고를 당했다. 그 날은 백 투 스쿨 데이였다. 첫날이라 학교를 일찍 마치고 오후에 헤이리 엄마는 헤이리를 베이비 시터에게 맡기고 두 아들을 축구연습을 위해 데리고 갔다고 한다.

지금도 정확한 경유를 모르지만 베이비시터 아주머니가 딴 집안일을 보는 동안 어린 헤이리가 뒤뜰 수영장 게이트를 열고 들어갔다가 풀에 빠진 것이다.

앰블런스가 도착했을때는 이미 늦었다. 헤이리 부모는 중국인 1.5세인데 아빠는 소아과 의사이고 엄마는 랩에서 밤에 일을 한다. 헤이리를 낳고는 중국인 아주머니가 오셔서 함께 살면서 집안일을 하시면서 아이들을 돌보아 주었다.

아이들이 왔다갔다하면서 보는 아주머니는 한결같이 선한 웃음을 지으시며 반갑게 인사를 하신 분이었는데 그 분이 앞으로 지고 가셔야 할 죄책감 또한 안타깝기만 하다.

헤이리 죽음 소식이 우리 동네 이메일로 전달되자 마자 알고 지내던 한동네 사람으로 부터 조심스럽게 전화가 왔다. 헤이리네를 도와 주고 싶은데 그 가족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나설 수가 없어서 걱정 했는데 내가 그 집과 알고 지내니 중간에서 도와 달라는 것이다.

전화가 또 울린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4학년 학부모이다. 성금을 모아 그 가족이 원하는 봉사 단체에 헤이리 이름으로 도네이션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떤 단체가 좋을 지 알아 줄 수 있느냐고 했다.

처음엔 괜찮다며 이유없이 도움을 받지 않는 우리들의 습관처럼 사양하던 헤이리네는 이웃의 사랑을 학부모들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동네에선 캘린더를 만들어 돌아가면서 그 집 앞에 음식을 놓기로 했고 학교에서 학부모들은 돈을 걷어 헤이리 부모가 원하는 교육단체에 헤이리 이름으로 도네이션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학교에선 이 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혼동이 되는 아이들은 카운셀링을 해주겠다는 공문을 띄었다. 헤이리네를 가면 꽃 속에 파묻혀 환희 웃는 헤이리 사진을 어루만지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위로에 조금 위로 받는 헤이리 엄마를 보면서 나는 정말 이런 것이 커뮤니티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내가 잘 모르는 가족이라도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의 슬픔을 함께 하고 싶어하는 마음. 안타까운 마음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의 도움을 주며 먼저 손을 내미는 그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아이들을 학교에서 조퇴시켜 슬퍼하는 친구와 함께 하라고 장례식에 데리고 온 엄마들. 그 가족을 모르지만 같은 커뮤니티에 사는 사람의 슬픔을 함께 나누기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건이 누구의 잘못이라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헤이리는 이 세상에 없다. 헤이리가 왜 그렇게 빨리 가야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세살의 헤이리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의 삶을 잠시 멈춰서서 묻게 해준다.

누가 진정 우리의 이웃인가? 나는 정말 내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가?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9월 24일 20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