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만감

2007.10.09 11:32

배희경 조회 수:6 추천:2

             아사만감                     1999년

   이사란 현재 보담 나은 데로 가던, 또 그렇지 않을 경우든 크고 작은 흥분이 따르기 마련이다.  내게도 약간의 흥분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감회로 아들가족의 이사를 멀거니 보고만 있었다.  전화국번이 같은 데로 이사하는데 이틀을 걸려서 간단다. 사람들이 와서 하루는 짐을 싸고 하루는 짐을 옮긴다고 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쉽게 이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옛날에 겪은 힘들었던 날들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9년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를 갔다. 차 뒤에 트레일러를 달고 하루 종일 이삿짐을 날랐다. 이층에서 또 다른 이층으로 가는 이사였다. 진이 빠지고 허리가 부러지듯 아팠다. 그런 중에도 내 머리 속은 계속 시게의 초침이 돌고 있었다.  그것은 정한 시간 내에 트레일러와 기타 장비를 돌려주지 않으면 35불을 더 내야 하는 강박관념이다.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퍽 힘들었던 한 때였다.

    빈손으로 이민을 온 우리를 위해 막내 동생은 그라지 쎄일에서 첫 살림을 마련 해 주었다. 얼마 후 처음 이사했을 때는 그것을 다 싣고 갔다. 구질 그러한 짐이었다. 다행히도 아홉 해가 지나고 나니, 이뿐 게란 통이며 (한국은 짚으로 엮었을 때) 튼튼한 쨈 병 등을 버릴 줄 알 때가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였다.  롤러고스트 같은 이사였다.

   그리고 지금 이십 년 후다.  많이도 달라졌다. 쉽게도 이사를 한다. 그런데 나는 왜 그 힘들었던 그 때가 이다지도 그리울까. 뼈가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삶에 열중했던 그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내 생의 알참이 그립다. 내가 어찌 새 세대의 도약의 과정을 기뻐하지 않을까 만 내 마음의 허전함은 지울 길이 없었다.  

그러면서 둘째 올케의 옛 일화가 떠올랐다. 올케는 셋방에서 셋방으로 옮겨 다녔다. 십년 동안 여덟 번을 이사 했다고 한다. 오랜 후에 친정 어머니께 알렸더니 대경실색하시며  "세상에 그런 일도 있다냐, 그런 일도 ..." 하시며 슬퍼하셨단다.  이백년이나 된 구옥에서 대대로 살아 내려온 분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사돈은 복이 많은 분이다. 온 추억이 담긴 집에서 지금까지 살고 계시니 부럽다 고.
   그러다 곧 마음을 돌린다. 누군가가 말했듯, 인간은 이 땅에서 영원한 이사를 간다. 다시 되풀이 안 하는 이사를 간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부럽고 그리운가, 종국은 이렇게 살다가 가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영원히 가고 돌아오지 않는, 그런 곳에 이사를 간다. 그리워도 말고 부러워도 말자.

   트레일러로 낑낑거리며 짐을 날랐던 막내아들이 이제 이렇게 당당히 이사 가게끔 되었는데 이 허탈은 어미의 질투일까. 아닐것이다. 자식은 바로 내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풍요란 내 관심사 밖의 일이여서였을까. 아니면 또 나의 감상 무드의 발동?  아니면 늙어가는 서글픔의 허탈일까. 어쨌건 그 이사는 내게 만감을 안겨준 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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