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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시편정해 시편 1편

2016.12.04 16:54

최선호 조회 수:347

 

 

                                                       시편 1편

 


 

하나님께서 인생을 내신 목적에 맞게 사는 길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의인과 악인의 삶과 종말을 대조하여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길임을 강조하고, 율법(토라)보다는 인간(복 있는 사람)에게 중심을 두었다. 익명의 지혜시로 알려져 오고 있는 1편은 시편 전체의 서시(序詩)로 시편사상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문학적 압축, 상징이 자연스러운 수사(修辭)로 완성을 이루었다.

 

주제: 복 있는 사람.
소재: 악인, 의인.
배경: 여호와의 율법과 인생, 의인과 악인의 운명.
수사: 은유(상징), 직유, 대조, 대구, 반복(강조, 운율적 효과), 결정
          (結晶: crystallization: 의물(擬物).
경향: 구도, 묵상, 교훈, 지혜, 영탄, 권계. 시편 전체의 서시(序詩),
          축복 서술형.
구성: 4단 또는 2 단. 기(1∼2절), 승(3절), 전(4∼5절), 결(6절). 또는
         전(1∼3절), 후(4∼6절).
작자: 미상.
핵심어: 형통.

 

기(起): 의인의 길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1절: 1∼2절은 한 개의 문장(one sentence)이다. 요약하면 "(복 있는)사람은 + (그)율법을 + (주야로)묵상하는 자"이다. 복 있는 사람을 악인과 대조하였다.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를 동의어(구)로 열거하였고, "(좇지)아니하며 (서지)아니하며 (앉지)아니하고"를 반복하여 강조와 운율적 효과를 더 하였다. "좇지 아니하며(불의에 동의하지 않으며) 서지 아니하며(불의와 동행하지 않으며) 앉지 아니하고(불의에 동참하지 아니하고)"는 (문자적으로) 복이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행함으로 받는 복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행하지 않음으로 받는 복을 강조하고 있다(2절 강조를 위해).


2절: "율법"을 반복, 강조하고, "∼하여"와 "∼하는"을 반복함으로써 "즐거워"와 "묵상"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둘째 행은 첫째 행의 내용을 반복한 동의대구(同義對句)이다. 하나님 말씀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인간형을 그리고 있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성부 성자 성령 안에서 완전 구현될 수 있다.

 

제롬(St. Jerome, 347∼420)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시편을 "성령의 머리말"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복(福) 있는"은 히브리어 "아쉐레이"의 번역으로 복수(複數)이며, "사람(하이쉬)"은 단수(單數)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에게 한 가지만이 아니라, 여러 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복 "받을" 또는 복 "받는" 사람이 아니라, 복 "있는" 사람이다. 마태복음(5:3∼11)에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로 말씀하고 있다. 시편(2:12)에도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복은 밖으로부터 내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지마는, 이미 내 안에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심령 속에 금광처럼 복이 가득 차 있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도우심과 우리 인간의 믿음으로 그 복을 내 속에서 꺼내 누리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무한 량의 복을 어디에 두시는가?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소유하시면서, 약속대로 사람에게 부어 주신다(렘38:20;잠10:22).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복이 있으므로, 그 복들은 이미 인간의 심령 속에 들어있다. 

 

시128: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시134:3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란 말씀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받는 복도 있지만, 이미 주어진 복이 우리 속에 들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 속에 있는 복을 말씀 가운데서 계속 유지하며 누려야 한다.

 

복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은 악인이 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길에 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노래하고 있다. 복 있는 사람의 즐거움은 하나님 말씀 안에 살아 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4) 했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5:2∼3)고 말씀하고 있다.

 

1∼3절에서 복 있는 사람을 노래로 교훈과 축복을 했다. 악인과 관계된 일에는 좇지 말고(Does not walk) 서지 말며(Does not stand) 함께 앉지 말라(Does not sit)고 경고하고 있다. 악인과의 동의, 동행, 동참을 엄금하고 있다. 문장으로 보아서는 서술문이지만 그 내용은 강력한 명령인 동시에 경고의 내용이 담겨 있다.

 

"악인"(히, 레샤임)은 '도덕적으로 단정하지 못하고 품성이 불안정하여 동요하는 거친 바다와 같은 자'를 가리킨다. 민첩한 자, 활동이 예민한 자, 혼란한 자, 혼란을 일으키는 자, 악에 대하여 꾀가 많고 기동성이 있는 자를 말한다.

 

"죄인"(히, 하타임)은 일생을 범죄하며 야비하게 드러나는 죄를 짓고 사는 자이다.

 

"오만한 자"(히, 레침)는 성실함, 거룩함, 진실된 것을 우습게 여기는 자를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악인과 대조된 의인의 길을 밝히 보여 주었다. 의인은 복 있는 사람으로서 그 행사(하는 일)가 다 형통하는 사람이다. 의인과 악인의 종말적 속성(屬性)을 대비하고 있는 이 시는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경외함만이 복된 길이라는 신본주의에 바탕을 둔 인생관을 보여 주고 있다.

 

"여호와의 율법"을 십계명이나 모세 오경(토라)에만 국한하여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 말씀'으로 알면 족하다.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내신 뜻에 합한 자이다.

 

"즐거워하여"는 히브리어 "헤페츠"로써 "달라붙음"이란 뜻이 있다. 말씀에 밀착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묵상(默想)하는"(히, 하가)은 기독교의 귀한 속성의 하나로 말없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며 살피는 자신의 마음가짐이다. 이런 심경(心境) 깊은 속에 말씀을 새기는 자세이다. 그러므로 무한한 기쁨으로 사랑스러운 말씀을 음미하는 상태이다.

 

승(承): 행사 형통(축복 서술형)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3절: '심령은 안 보이는 자연, 자연은 보이는 심령'이고 보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는 복된 영적 세계를 자연을 통하여 시각적으로 바꾸어 보여주는 이미지의 선명한 수사적 표현이다.

 

시냇가는 나무에게 얼마나 좋은 환경인가! 목마르지 않게 시원한 물을 계속 마실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다. 이 표현은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의 보조관념(補助觀念)이다. 이 보조관념 속에는 의인의 모습이 원관념(原觀念)으로 자리하고 있다. 모든 비유가 거의 그렇지만, 이 부분이야말로 주제(메시지)를 바로 전하기 위해 사용된 비유이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가장 좋은 위치에 놓여 마르지 않는 잎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갈5:22∼23) 심령적 상황의 표현이다(렘17:8). 즉 의의 열매, 성령의 열매, 영과 육이 평강을 누림을 암시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복 있는 사람",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이다. "시냇가"를 "율법", "심은"을 "묵상"에 비유하였다. 따라서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는 직유(直喩)의 수사(修辭)이다. '사람'을 "나무"에 비유한 수법은 결정법(結晶法: crystallization) 또는 의물법(擬物法)의 수사(修辭)이다.

 

이런 표현과 연관된 부분을 창49:22에서도 볼 수 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이 말씀은 요셉의 두 대표자로서 훗날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누릴 영·육간의 축복을 상징한다.

 

전(轉): 악인 저주

 

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4절: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는 영탄적 강조이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는 직유법의 표현이다. "악인"을 "(바람에 나는)겨"에 비유했으므로, "바람에 나는 겨"는 과실을 맺는 나무(의인)와 대조되어, 형편없는 존재에 비유되고 있다. 더구나 추수 때에 바람에 날리는 겨는 알곡이 아닌 쭉정이보다 훨씬 못한, 무가치한 존재가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악인에게는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으심을 알 수 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는 불안정한 인간을 비유(直喩)했다. 인간을 "겨"에 비유한 이런 표현법은 결정법(結晶法: crystallization)에 해당된다. 또는 의물법(擬物法)의 수사로써 의인법이나 활유법과는 반대되는 표현기법이다. 인간을 동식물의 행위에 비유, 또는 비정화(非情化) 시키든가 생물을 무생물화 시켜 표현하는 기법이다. 무가치한 인간, 보잘것없는 인간을 표현한 말이겠지만, 악한 자를 겨만도 못한 존재로 보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로 영탄적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의인과 악인은 최후의 심판으로 분리되고 하나님 앞에서 의(義)와 악(惡)이 뚜렷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 인생들의 심령의 하늘에는 "의로운"(tsadiq) 빛과 "악한"(rasha) 먹구름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바로 서기 위한 핵심적 촉매는 "여호와의 율법"이다

 

악인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자로서 이단자의 모형이다. 불안정하고 행동이 경망스럽고 실패를 거듭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치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는 비참한 존재이다.   

 

의인을 묘사하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ets)의 은유가 둘째 소절에 나오는 "바람에 날리는 겨(쭉정이)"의 은유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한편, 강한 대조를 이룬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히브리어로 겨(mots)와 나무('ets) 사이의 음성학적 평형을 이루고 있는 점이다. 이 둘은 운율적으로는 아름다운 유사를 이루지만, 그 본질은 너무나 다르다. 의인은 나무처럼 뿌리가 있어 든든하게 서서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지만, 악인은 쭉정이처럼 아무런 뿌리가 없어 바람(역사의 심판과 종말적 심판)에 날려 가 버리고 말 것이다. "겨"와 같은 존재(인간)는 영성이 없으므로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

 

5절: "악인(죄인)"이 "의인"과 대조되었다. '악인'과 '의인'을 가르는 기준은 "심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 이루어진다. "못하며", "못하리로다"는 강한 부정의 반복, 강조이다.


결(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결과

 

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6절: 후반부는 전반부와 날카로운 대조를 보이고 있으므로, 대조대구법의 강조표현이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전반부는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축복이며, 후반부는 저주받은 악인의 길로써 사탄의 지배로 지옥에 떨어진다. "의인"과 "악인"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의인의 축복과 악인의 심판을 확신하는 이스라엘 유럽사상의 궁극을 나타내었다. 

 

만일 여기서 동의대구법을 쓰고자 했다면, 두 번째 연을 "여호와께서 선인을 악인에게서 보호하시리로다"라고 썼을 것이다. 종합대구법을 사용하고자 했다면, "또한 그 원수로 모두 망하게 하시리로다"라고 썼을 것이다.

 

의(義)와 악(惡)의 갈림길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통하여 의인의 회중에 들어 하나님께 인정받고자 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소망이 인생의 시정(詩情)으로 승화(昇華)되어 나타나 있다. 결국 유한한 인생의 부족함을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의뢰하였으니, 이보다 더 든든하고 마음 놓이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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