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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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시평>

이창윤 시집 <내일은 목련이 지는 날 아닙니까>를 읽고

 

                                                                                                                                                 

 

 

 일찍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문학을 지망하는 청년에게>란 편지글에서 “시는 나타난 그대로의 문자를 읽고 이해해야지, 일체의 설명을 필요로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는 독자들의 이해의 세계를 최대한으로 존경스럽게 언급한 말일 것이다. 이 말은 필자를 적지 않은 무계로 누르고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창윤 시인은 1940년 대구에서 태어났고, 1964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1966년 <현대문학> 시부문 추천 완료로 등단했다. 첫 시집 <잎새들의 해안>을 출간하고 1967년 미국으로 건너왔으며, 산부인과 전문의 Maternal Fetal Medicine 특수 전문의 의학 수련, 그 후 의학 연구와 환자 치료에 열중하던 30년 동안은 거의 시를 쓰지 못했다.

 헨리포드 병원 산과와 Head of Maternal Fetal Medicine, 헐리 메디갈 센터의 Director, Maternal Fetal Medicine의 임무를 완수하고 2000년 말 임상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미시간 주립대학 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한 바가 있다. 시집으로는 <잎새들의 해안>, <강물은 멀리서 흘러도>, <다시 쓰는 봄 편지>가 있고. 가산문학상, 해외문학상, 미주시인상, 재미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내일은 목련이 지는 날 아닙니까>는 이창윤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며, 그의 삶의 철학이 ‘슬픔의 미학’으로 승회된 시집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상은 아창윤 시집 <내일은 목련이 지는 날 아닙니까>의 표지 안쪽에 이창윤 시인의 사진과 함께 실려 있는 글이다. 이 글을 여기 옮겨 놓은 뜻은, 이창윤 시인의 역정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덧붙이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창윤 시인은 시인이면서 의사이다. 또한 의사이면서 시인이다. 의사는 인간을 치유하는 과학자이다. 그러나 시는 과학과는 다르다. 과학은 인간의 두뇌에서 다루어지지만 시는 두뇌보다는 가슴에서 데워낸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과학은 이성과 지성의 산물이고, 시는 감성과 정서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혹 지성적인 주지시는 두뇌에서 나온다할지라도 두뇌에서 정서를 끌어내기는 용이한 일이 아니다. 정서의 영토는 가슴이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이어령 교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두뇌에서 가슴, 가슴에서 두뇌까지의 거리’라 했다. 이것은 이어령 교수만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든지 그런 생각을 가질 것이다. 지성에서 감성으로 오는 거리와 감성에서 지성으로 가는 거리는 자로 재어지지 않을 만큼 먼 거리이다.

 이창윤 시인은 의사이자 시인이기 때문에 이토록 먼 거리를 어찌어찌 견디며 오고 가곤 했는지, 이창윤 시인의 시의 역정에 가슴을 기울여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창윤 시인은 종종 ‘자신은 시 같은 것을 쓰고 있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시인이 아니면서 시인처럼 살고 있다’는 말로 들리기 쉽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진실 속에는 진정한 참말이 들어 있다. 이 세상에 시이면 시이지, 시 같은 시는 존재하지 않고. 시인이면 시인이지 시인 같은 시인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시 같은 것을 쓰고 있다는 이창윤 시인의 말 속에는 가장 진실한 시를 쓰고 있다는 말의 속성이 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 말했다. 아무짝에도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에

시를 쓴다고

쓸모 있는 것들만 쓸모 있게 거래되는 세상에

엉뚱한 짓으로 위로 받는 삶이

이 시대에도 하나 둘 남아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시를 쓰는 일은

언제 어디선가 기슭에, 누군가의 마음 기슭에

흘러가 닿을 것이라고 믿고

던지는 Bottle Letter 같은 것이라고

(얼마나 많은 바틀래터가 수취인을 찾지 못하고

모래 속에 파묻혀 버렸는가)

우리들은 바틀래터를 삶의 바다에 던지는 자들

또한 받아서 읽어보는 수취인이 아닌가

이런 부질없는 일을 반복하는 자들이

심심찮게 남아있는 한

시는 쓰여질 것이다 그리고

시는 읽혀질 것이다

                                                            <서시> 전문

 

 이처럼 시는 이창윤 시인에게 Bottle Letter에게 불과하다. 그러나 이창윤 시인은 Bottle Letter 같은 시일지라도 결코 손에서 놓지 못한다. 시가 쓰여지고 읽혀지기 때문일 것이다. `

 한때 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스승으로 불리웠던 틱낫한 스님의 <Anger>란 책에서 인용한 “채소를 가꾸지 않았으면 나는 시를 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라는 구절 앞에 한 동 안 서 있어 본다

 

치큰 와이어로 잘 보호된 채소밭에 탑소일을 넣고 흙을 고루어 주면 아내는 씨를 뿌리는 것이다. 이른 봄날이 초여름으로 이어지는 동안, 나는 가끔 시를 쓰면서 거짓말로 참말 만드는 법을 연습하는 동안, 채소들은 좀 더 싱싱한 말로, 푸성귀들은 참말로 거짓말처럼 자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다 거짓말을 좀 더 보태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가끔 아내 몰래 비료를 물에 타서 뿌리는 것이다

 

“진짜 올가닉입니다” 아내가 친지와 이웃들에게 그녀의 즐거움을 조금씩 나누어 줄 때 시를 쓰는 일에도 거짓말을 좀 더 보태어서 저런 것이 될 수 있다면, 부러워해 보는 것이다 의예과 시절,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할 때 만났던 여학생, 지금은 우리 집 채소밭 주인, 나는 여기서 인용한 구절을 “시를 쓰지 않았으면 나는 채소를 가꿀 수가 없었을 것입니 다”로 바꾸어 놓고 그 앞에 한동안 서있어 본다.

                                                                                                                                       <시 쓰기 그리고 채소 가꾸기> 전문

 

 이 시의 구조는 봉투구조이다.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에 채소를 가꾸는 일과 시를 쓰는 일이 연관된 시행이 반복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마치 편지봉투처럼 머리 부분과 꼬리 부분이 반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이창윤 시인이 시를 접하는 일면을 이해하게 된다. ‘비료를 물에 타서 뿌리는 것’은 거짓을 참말로 만드는 비법임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의 양괄식 구성에서 강조되고 있는 ‘그 앞에 한 동안 서 있어 본다’의 ‘한 동안’은 이창윤 시인의 시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시간이다. 이렇듯 이창윤 시인은 시를 떠나지 못하는 시인 중의 시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두 가지 슬픈 상처를

가슴에 묻어두고 산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들판은, 지난 해에도

들국화의 씨앗을 골고루 흩어두고

가을이 오기를 기다렸던가

너무나 잘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당신은 가을 들판의 계획에 쉽게 말려든다

그러나 들국화로 시를 쓴다는 것은

너무나 낡은 슬픔이 아닌가

흰 것과 보라색 사이에는, 가느다란 목덜미와

가늘게 울먹이던 어깨가 보이지 않았느냐고

들판이, 겁먹고 있는 당신의 등을 떠밀 것이다

 

돌아서던 모습이 더욱 서러워 보이던

나의 누이여, 너의 싸늘한 재를 뿌린 강 언덕에

지천으로 핀 들국화 꺾어

강물에 띄워 보내고 왔다

다시 물어보고 싶구나, 우리가 무엇이 되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나리

 

젖은 눈으로 바라보는 한 순간을 만나게 해놓고

들판이 속내를 털어 놓을 것이다

꽃 피우고 씨앗 익히는 일이야

머뭇거리다 지나가는 세월에 맡겨둘 일이지만

나도 서러운 색깔로 물들 때가 있거든

그런 색깔로 그리운 날도 있어

울기 좋은 곳이 따로 있으면 나에게도 알려달라고

                                                                           <들국화가 들판을 물들이면> 전문

 이 시를 읽으면서 이창윤 시인의 가슴 속의 일면이라도 살펴보게 된다. 분명히 시인의 가슴임을 감지할 수 있다. 들국화가 있는 들판을 의인화하고 있다. 그런 들판과 들국화를 향해 시인의 정적 세계를 넉넉히 방출시키고, ‘나도 서러운 색깔로 물들 때가 있거든/그런 색깔로 그리운 날도 있어/울기 좋은 곳이 따로 있으면 나에게도 알려달라고’는 그 가슴이야 말로 예사롭지가 않다. 시인은 시작 대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생김새의 모양과 심지어 그 지니고 있는 색깔까지를 놓치지 않고 있다. 첫 연은 억양법으로 그 의미를 은은히 변모시키고 있음을 본다. 따라서 이 시 전체에서 들국화가 아울려져 시적 정서를 풍기고 있다.

 

한 평생이란 말이 느낌을 주기 시작하더니

안개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한 그루 나무로 내 시야에 들어오더니

내 마음의 허전한 뒤뜰에 자리잡고

휘어진 가지를 슬픔 쪽으로 뻗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를 내 안으로

불러들여야 하겠다

내 마음의 안방에 가장 부드러운 자리를

그에게 내어주고

그를 편안하게 하련다

 

그리하여 어느 날

그가 내 등을 두드릴 것이다

잘 가거라, 친구여

돌아보지도 않고 먼 길을 가야 하는

내 마음의 등이 따스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내가 한 평생이란 말을

이 땅에 남겨두고 가기 때문일 것이다

<한 평생이란 말> 전문

 이 시에는 ‘한 평생이란 말’과 ‘내’가 병존한다. 나는 주인이요, 한 평생은 객이다. 첫 연부터 끝까지 주와 객의 점층을 이루고 있다. 이 점층은 그대로 인생을 사는 나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주와 객이 일체를 이루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 내 모습이 나타난다. 이런 수법을 취한 시의 예를 든다면 박두진의 “하늘”에서도 점층된 주객일체를 볼 수 있다. ‘하늘’에서도 내가 주요, 하늘은 객이다. “하늘이 내게로 온다/ 머얼리서 온다/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에서 하늘과 내가 일체감을 이루기까지 점층과 반복이 계속된다. 그래서 끝부분에 이르면 주와 객이 일체가 되는 신비의 열매가 맺힌다. 이창윤 시인도 그런 신비를 안고 인생을 살고 있음을 본다. 인생의 끝에 이르러는, 결국 ‘내가 한 평생이란 말을/이 땅에 남겨두고 갈 것이’기 때문에 작별을 고하기는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등을 두드릴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생을 사는 자의 사유이며, 시인 앞에 열려 있는 정서의 길이 아닐까 싶다.

 

이창윤 시인의 시에서는 운문성 보다는 산문성이 돋보여지고 있음을 느낀다. 따라서 시적 호흡이 비교적 빠른 편이라기보다는 느린 편이 더 있고, 따라서 호흡도 일반적으로 차분차분하다. 급하게 흐른 물살 같은 표현은 드물게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시작부터 주제의 정점까지 직선으로 가기보다는 우회적 방법이 거의 지배적이다. 이런 등등의 판단은 어디까지나 필자 개인의 판단이며, 단점을 짚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돋보이는 특징을 지목해 본 것이다.

한 편 한 편의 시마다에 무게 있는 의미들이 담겨 있고,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묘수가 담겨있다. 더구나 문학의 길을 걸으며 오랜 동안 보람과 노력의 시력을 쌓아올린 시인의 시임을 단번에 알 수 있음도 마음을 편케 한다.

의사 시인으로서 시집에 조금도 의사 분위기를 피우지 않은 이창윤 시인은, 의사로 근무하던 병원에서 시인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음을 이에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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