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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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평론>

강언덕, 김신웅, 김탁제, 문금숙, 윤희윤 시를 읽고

                                                                                                                                               

최근의 시집, 강언덕의 <길에서 길을 묻네>, 김신웅의 <사랑을 위한 평균율>, 김탁제의 <문득 생각이 나시거든>, 문금숙의 <머릿살 다이어트>, 윤희윤의 <뿌리와 날개> 5권에서 각 2편의 시를 가려 보았다.

시인은 무엇보다도 감수성이 예민해야 한다. 현실을 구체적으로 인식함에 맞닥뜨린 귀중한 모멘트의 하나인 감각은 인식의 가장 처음이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인식은 감각에만 의존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논리적인 인식이 필요하게 되고, 그것들의 융화로 객관적 인식이 완전에 보다 가깝게 이르게 된다.

詩作을 든든히 받쳐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인의 경험이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그 경험을 시로 옮기는 일은 금물이다. 그 경험을 시인의 심령 속에서 앙금이 괼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 속에서 우러나는 시의 진실이 있게 마련이다. 옹달샘에 고인 물의 가장 맑은 부분을 조롱박으로 살짝 떠올리듯이 그렇게 앙금진 시의 진실을 떠내야 좋은 詩心이 자리를 잡게 된다.   

“시는 감동을 모태로 태어난다.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기 이전에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동으로부터의 발산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펜끝과 같은 감성은 현실로 부터 받아들이는 감각의 인식이며, 현실적인 모순과 진실을 직감하고 피력해 내는 의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나치게 감성에 치우치다 보면 세기말의 탐미주의나 관능주의 노예로 전락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는 거의가 ‘생각하는 시’로서의 구실에 충실하다. 생각하는 시란 ‘노래하는 시’와 대립되는 말인데, 이것은 시인의 바탕에 사상과 비평정신을 지니는 것을 의미한다. 정서라든가 주정적인 것이 그 시인의 사상과 분리되는 일 없이 일체가 될 때에라야만 뛰어난 시가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인데, 이는 엘리어트가 내세운 말이다.    

 

비옥한 땅에 떨어진

작은 씨앗이어라

 

광풍에 찢기어

마디마디 쓰린 마음

밤새워 앓고 난 후

창 넘어 찾아든

새 하늘이어라

 

다시 열린 너와 나의

조촐한 새 길이어라

 

가난한 내 가슴에

가장 값진 것 하나

찾으실 제

마음으로 씻고 손으로 닦아

후회 없이 드릴

마지막 선물이어라

                                                           강언덕의 <용서> 전문

이 시에서의 핵심은 ‘용서’이다. 용서는 용서하는 자와 용서 받는 자가 한몸이 되듯, 쌍방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 참된 용서의 경지이다. 용서 이후에는 양자 사이의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맑게 개인 하늘이다. 그러므로 구름 낀 하늘이 아니라 새 하늘이다. 가장 좋은 것이므로 “후회 없이 드릴/마지막 선물”이다. 강 시인은 용서란 씻고 닦을 수 있는 관념을 물체로 비유한다. 새 하늘, 새 길, 선물이 시인의 시심을 여는 용서의 비결이다. 강 시인은 구도자의 마음으로 이 귀중한 것들을 시행에 올려 놓았다. 이런 사물이 시정의 승화를 이루는 强度에 대한 느낌의 차이는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다.

 

새벽마다 좌선시간

내 머리 속 청소를  한다

털고 닦고 치워 보지만

돌아서면 생각의 먼지들

잘도 숨어 있다 얼굴 내민다

 

내 머리 속의 먼지들

너희는 약자가 아니다

차라리 내 삶의 그림자다

너희를 꼭 치워야 될

적으로 알았을 땐

세상 일 답답하고 힘들더니

나 또한 우주의 먼지로 남아

너와 함께 할 친구라 생각하니

이제는 날아다닐 빈 하늘 뵈는구나

                                                  강언덕의 <청소> 전문

 

강언덕 시인은 佛者로서의 시인이다. 그러므로 佛心으로 이해의 경지인 먼지를 敵으로 알다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 心中에 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세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심령에는 “날아다닐 빈 하늘이 뵈는구나”의 노래가 거침없이 나온다. 그는 이미 먼지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지가 되긴 되었지만 다시 인격체로 환생하는 길이 시인에겐 있다. 먼지를 적으로 알기보다는 친구로 생각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강 시인에게는 이토록 자연스러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이는 詩心으로만 이해되는 경지가 아닐까? 그렇다, 강 시인의 가슴에는 詩心과 佛心이 공존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헌책방 앞을 지나다

무심코 들러 서가를 둘러보았지

헌책이라 이르니 책이 헐은 것도 아니고

내용이 낡은 것도 아닌 책들이

헌책방에 있어 헌책이 되어 있을 뿐인데

때로 갈피의 주인이던 사람의 이름이나

누가 누구에게 준다는 헌정기록도 함께

다시 새 주인을 기다리는

어떤 글줄에 검거나 붉은 방점이 찍힌 채

환한 등불인양 밝히고 있기도 하네

선채로 읽어가는 몇 줄의 글들이

가슴에 길을 내고 들어 와 몸을 비벼대

문 걸어 잠궈 신기의 몰골 거부하다

결국 동의하고야 말게 되었지

아마 사람들의 의견은 그럴 것일 거라고

말다툼하다 화끈하게 한 잔 나누고

돌아 서던 기억으로

잠자던 책장 속 방점 찍힌 몇 줄의 글

겨울 지낸 언덕에 피어오르는

분홍빛 철쭉되어 기어 와

나도 함께 달아 오른 채 책방문턱을 넘었네    

                                          - 김신웅의 <방점傍點찍힌 문장에서> 전문

 

낯선 길 위에서 먼 산을 보네

 

고요에 가린 산 너머

떠오르다 가라앉은 꿈 아른거리네

무게도 없는 저것은 어디서 발원하여

뜨다 가라앉다 우리를 애 태우는가

걸어 온 세월, 발가락의 티눈 되어

모래를 털던 신발에서 날아간

풀씨 하나 꽃 피웠을까

다시 돌아보는 먼 산

너머는 꽃밭이 되어 있을까

널부러져 누워 있는 마른 풀들

어느 누구 꿈의 잔해인가

 

넘어오던 푸른 산 눈 덮여

지나온 산마저 낯설어지네

모래 뿌리던 바람

살 에이던 추위 뚫고 온

아직 눈 쌓인 숨차던 고갯길

숲 속의 새들 어디에 둥지를 틀까

그 때 갈무리한 씨앗 하나 품고

아직 심지도 못한 채

 

낯선 길 위에서 다시 먼 산을 보네

                       - 김신웅의 <날아간 풀씨> 전문

 

이 시에 무슨 評說이 필요하겠는가! 지극한 서정(Lyric)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시 중에

꼽히는 갈래에 해당하는 시이다. 원래 그리이스에서 일곱 줄 악기인 리라에 맞추어 노래하는 노래를

가리켜 하던 말이었으나, 후일 시인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정서나 경험을 노래하는 시를 이르는 말이

抒情詩로 되었다. 서정시의 고전으로는 헤브라이즘의 소산으로 나타난 히브리문학 속의 다윗과 솔로몬의

작품들, 그리스에서는 사포나 아나크레온의 작품들, 로마에서는 카툴루스와 오비디우스의 작품들,

이탈리아에서는 단테와 페트라르카의 작품들, 프랑스에서는 라마르틴과 위고의 비비와 뮈세의 작품들,

독일에서는 궤테와 하이네의 작품들, 영국에서는 워즈워드와 셀리의 작품들 등이 서정시로 유명하다.

한국 시문학으로는 1930 년대 이후의 순수시정신에서  그 맥을 뚜렷이 짚어 볼 수 있다.

김 시인의 두 편 중 서정성이 짙은 작품은 역시 ‘날아간 풀씨’에서 볼 수 있다. 브레몽은 ‘시를 시적으로

읽는 데는 의미를 포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또한 그것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의미와

관계 없는 상태에 있는 막연한 매력이 존재한다. 시는 어떤 종류의 음악이다. 그것은 가장 내부적인

정신의 본성을 전달하는 흐름의 지도자로서의 작용을 한다’고 했다. 이 시를 읽으며 풀씨를 따라가노라면

나도 모르게 절로 노래가 마음 속에 흘러 내린다.

앞엣 시 김 시인의 <방점傍點찍힌 문장에서>는 서정성보다는 叡智 또는 奇智를 일으키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런 작품들이 독자의 지혜와 흥미를 확산시켜 흥미롭게 이끌어 주기도 한다.

 

문득 생각이 나시거든             

미리 기별도 없이 오시구려

 

포실한 토방으로

 

아침 깨우는 산새 되어

낮 햇살 막아 그늘 되고

저문 나룻길 샛별 되어

 

회향의 수심 풀어 주리다

 

아직도 풀 먹은 유년의

연줄 놓지 않고 그대와

짐짓 흔들어 본 하늘 길

 

문득 생각이 나시거든

기별도 없이 오시구려

 

애내성 옛스러운

바다 뱃고동소리 들으며

붉힌 얼굴 마주 부비다

 

정녕 속마음 주려거든

동백나무 한 그루

네모 돌녘*에 심어 주면

 

노상 시들지 않는

그대 백년 꽃으로

소조히 갯바람 속에 피리다

* 네모 돌녘: 비석의 네모난 둘레를 의미함

                           - 김탁제의 <문득 생각이 나시거든> 전문

“문득 생각이 나시거든”은 무한한 상황을 배출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놓은 제목으로서의  詩情이 물씬 풍기는 표현이다. “생각이 나시거든”은 이미 생각이 났음을 전제한다. 생각이 안 났다면 이런 제목으로는 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물과 대상을 인식함에 즈음하여 직접 우리 의식에 주어지는 모든효과를 印象이라 하는데 예술에 관하여 우리가 얻는 인상을 美的 인상이라고 하는 이것은 다분히 주관적, 감정적 그낌으로 우리를 휩싸기도 한다. 이런 시를 읽는 독자들은 무한히 서정의 숲으로 이끌림을 당한다. 그것은 독자가 갖는 정서와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홀로 꿋꿋이 북풍한설을

견디는 깃발을 보았는가

누구를 위해 꽂혔기에 저토록

혹독한 체벌을 받아야 하는가

 

때로 이방의 하늘에서 불타고

때로 전선의 총알받이로 나부끼며

때로 폭력 앞에 짓밟히는 수모

누가 이 깃발 대신 희생하였던가

 

깃발은 조용히 자기를 말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내어주고

나를 지켜주는 사람에게

영화를 누리게 하는

그런 깃발로 오늘도 홀로 서 있다

                                              - 김탁제의 <깃발이란 무엇이냐>의 전문

 

‘깃발이란 무엇이냐’의 시는 읽는 그대로 우리의 가슴에 날아와 앉는 나비와 같이 사뿐한 시이다. 시인이 느낀 대로의 깃발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대상으로 14행을 잇기도 쉽지는 않지만, 김 시인은 깃발이란 물체를 의인화 하여 상징하고 있기에, 여기 서 있는 깃발이야말로 싱싱하게 서 있는 젊은 병사로 擬人化 되어 보이고 있음이다. 그러므로 깃발은 고난을 견디며 조국을 지키는 우리의 어엿한  자녀가 아니랴!

   

시국강연 몇 번 다녀오면 세상이 빤하고

전문직 강연장 자주 드나들면 상식이 빠삭해지고

건강법 매번 청강하면 웬만한 병은 병도 아니고

부흥회 출석 횟수 따라 머릿속은 켜켜이 테이프들로 가득차고

문화인 양 이곳저곳 문화행사 기웃거리는 통에

어울리지도 않는 겉모습 치장만 늘어나고

 

날이 갈수록 머릿속은 살이 붙고 기름덩이로 두꺼워지고

잘하는 척해봤자 절제 개념은 늘 생각에 그치고

아무리 생활실천 계획하고 시간을 쪼개도 도무지 쉴 틈 없어

머리는 점점 살이 올라 띵하고 무거워진다

 

조용히 사색하며 성숙하리라 구호처럼 외쳐왔는데

머릿속 비겟덩이들

살살 제거하는 다이어트 방법 어디 있을까

숨을 코로 깊숙히 들이마시고 입으로 뱉어내야 몸속 환경 청결하게 청소된다는 일설 믿고

머릿속에 가득 들어온 뻥튀기들

힘껏 힘을 준 후 팍 풀어내서 텅텅,

뇌 속 가볍게 비워내고

맑은 청솔바람 주문해서 휘파람 내불며

석양 붉은 가슴 느긋이 바라보는 인생 운전하며 달려 가노라면

하늘이 하늘 웃음소리로 온통 환해지는 듯 환해지는 듯

그렇게 될 수 있으려나

                                  - 문금숙의 <머릿살 다이어트> 전문

 

긴 치맛자락을 살짝 걷어 올리고 살금살금 바닷가 물살에 다리를 적시며 점점 안으로 걸어 들어가듯, 조심스러운 태도로 시행을 잇고 있다. 1, 2연에 나타난 대로의 생활환경 그대로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주변들이다. 3연으로 접어 든 문 시인의 ‘머리는 점점 살이 올라 띵하고 무거워진다’. 이런 환경 속에서의 문 시인은 ‘조용히 사색하며 성숙하리라 구호처럼 외쳐왔는데’ 처럼  사색하며 성숙하고 싶은 시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와는 정 반대의 모습에 빠져 있으면서 자신의 참 모습을 찾는 데 진력하고 있다. ‘숨을 코로 깊숙히 들이마시고 입으로 뱉어내야 몸속 환경 청결하게 청소된다는 일설 믿고’ 다이어트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뇌 속 가볍게 비워내고/맑은 청솔바람 주문해서 휘파람 내불며/석양 붉은 가슴 느긋이 바라보는 인생 운전하며 달려 가노라면/하늘이 하늘 웃음소리로 온통 환해지는 듯 환해지는 듯/그렇게 될 수 있으려나’하는 소망에 불타고 있는 시인은 ‘석양 붉은 가슴’의 저녁 때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문 시인은 ‘하늘 웃음소리로 온통 환해지는’ 야무진 꿈에 부풀어 있다.  

 

단단히 여물고 꼿꼿한 당신이었는데

어느 부지하세월의 눈물이 스미었기에

저미듯 마음 녹아 거대한 가슴 열었는가

보송보송 솔잎 밀어올린 여린 소나무 가지들

작은 새 품에 안고 있을 때

나 몰라라 꿈쩍하지 않고

완강하게 버티던 深深한 큰 바위

가슴힘살 한복판에

푹신한 무늬 새기고

페허의 쓸쓸함 결국 토해내는구나

하마하마 집착하던 이 마음에

오늘에야 가슴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 꽃소식

젖은 가슴녘에 닿는 듯

사랑아, 목마르게 갈라지는 안개 자욱한 바다를

네가 알아 진정 틈을 내주었느냐

                                      - 문금숙의 <> 전문       

여기서 문 시인의 엄청난 상상력을 마주 대한다. 우회적 비유로 진실을 토하고 있다. 시의 제재는 시인의 혈육과 같을 정도로까지 소화될 때 진실보다 더한 진실을 노래하게 된다. 문 시인은 어디에선가 틈을 보았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거기서 ‘저미듯 마음 녹아 거대한 가슴 열었는가’ 하고 틈의 내력에 물음을 던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거기서 ‘페허의 쓸쓸함 결국 토해내는’ 모습까지를 똑똑히 발견하고, 또 거기서 ‘목마르게 갈라지는 안개 자욱한 바다를’ 사랑에 호소하고 있다. 이토록 틈을 내 준 주체는 사랑이아니랴!     완강하게 버티던 深深한 큰 바위/가슴힘살 한복판에/푹신한 무늬 새기고/페허의 쓸쓸함 결국 토해내는구나’는 틈을 연상시키는 여인의 젖가슴을 바탕으로 야기되는 인상을 보이는 듯하다.

 

당신은 무정란의 뿌리로

무릎 꿇고 두 손 들어 기도하며

온 몸으로 내장까지 쏟아내십니까

또 자기의 살과 뼈를 갈아

꺾어지고 부서지며 피를 뿌리고

그러면서도 다시 몸을 일으켜

딱딱한 바닥에다 두개골을 패대기 치는 일은

누구를 위한 생이십니까

또한 당신의 의지로

극기를 아름다움으로 창조해 내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몇 굽이나 바뀌는 삶과는 달리

바뀌어질 까닭이 없습니다

만약 제 몸뚱이를 당신께 바친다면

저의 죄업이 갈리어

투명한 물로 녹아 내리겠습니까

                                                            - 윤휘윤 <분수> 전문

윤 시인은 분수의 생태(?)를 바로 보고, 외적 사물에서 오는 감동을 자기의 삶에 이입시켜 투명한 물과 같은 영혼의 삶으로 분수처럼 아름다움을 창조해 내고자 하는 구도자적 모습을 표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외적 사물을 같은 시각에서 텃취한 작품은 여러 편이지만  <달팽이>, <내가 걸려 뱅글뱅글 돌아간다>, <계약서> 등을 우선 지목해 볼 수 있다.

윤 시인은 뿜어 오르는 분수를 응시하고 있고, 만해 한용운은 천지에 일어나고 있는 자연의 변화에서 나타나는 정경을 바라보고 있다. 외적 사물과 그 변화를 자기 심령으로 끌어들인 수법과 밖으로 내비친 반복적 표현에서 엇비슷한 면이 발견되기도 한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 전문

 

 

그러나 윤휘윤의 <분수>와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는 그 나타내고자 하는 이미지에서,  <분수>는 분수처럼 투명함을 뿜어내는 맑은 삶을 추구하는 열망이 솟아나고, <알 수 없어요>는 현실에 처한 자아의 존재를 발견코자 함에 시심이 집중되어 있음을 본다. 또 다른 면으로는 두 작품이 갖는 공통점도 있다. 그것은 자기 구원을 열망하는 구도자적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두 작품 공히 공상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시들이 여지없이 현실에 매어 끌려다니거나  또는 심리적인 면만을 더듬는 경우가 되기  일쑤이다. 시가 펼치는 세계를 보다 깊고 넓게 확산되게 하기 위해서는 공상력의 발상이 절대 필요하다.
공상을 잘 나타내려면 사물을 잘 살펴보는 일부터 우선해야 한다. 우리의 관념은 공상하고 상상하여 글을 쓸 수 있는데, 그 기초가 되는 것은 현실적인 경험이다. 그것을 두뇌로 해체 분석하여 그 본질을 포착하고 그에 따른 추상작업을 한다.  구상-추상-재구성을 거쳐 나타난 것은 최초의 것과는 질이 다른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경우가 거의이다. 윤희윤과 한용운은 이런 표현을 통한 맥락이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두 시인의 詩的 개성은 서로 다른 특징으로 장점을 간직하고 있음을 본다.

   

세코야 숲 속에 엉켜있는

늙은 두 나무

저 나무들도 백지 한 장에 계약서를

주고 받았을까

 

등 부비며 함께 살자고

빽빽하게 작성된 계약서 한 장 내밀 때

홀라당 넘아간 젊음이 아롱거린다

 

계약서 한 장에 매달려 살아왔고 살아졌는데

돌아 눕는 구부정한 등을 바라보며

외롭고 서러워지는 이 까닭은 무엇일까

그래도 천만 다행인 것은

각방 쓰자고 선언했다는 친구도 있다는데

계약서가 살아 있다

 

저 나무들도 죽는 날까지 함께 하자고

무언의 약속을 했으리라

 

 

 

 

 

                                                                      - 윤휘윤의 <계약서> 전문

사람과 나무, 비유에서 나무와 인생을 본다. 계약한 대로 살지 못한 인생에서 받는 서러움을 나무에 이입하고, 결국 살아 있는 계약서는 각방 쓰자고 선언했다는 친구를 계약대로 돌아오게 하리라 기대하고 있음에랴. 부부 인생을 나무들에 비유한 텃취가 흥미롭다. 이런 각도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묘미가 윤 시인에게는 있다. 이토록 사물을 텃취하기도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윤 시인은 능숙한 솜씨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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