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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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이성호 단편소설집 〈하얀 꽃 피는 엄마의 나라〉

 


 

  세상에 태어나서 지지리도 못난 운명을 곱씹으며 좌절과 눈물로 헤매온 인생. 삶의 비탈길에서 걸레 같은 천덕구니로 버려진 듯했던 아쉬운 세월. 방향을 잃은 채 울며 울며 밤하늘을 날고 있는 까마귀같이 고독하게 살아온 인생. 이들은 정상적으로 성장하여 남부럽지 않게 교육을 받고 지성인으로 떳떳이 살다가 미주로 이민 와서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살아가지만 캄캄한 벽에 갇힌 듯 답답한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여인들이다.

 

  국제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검은 피부의 남편을 맞았다는 이유로, 내 자식이 혼혈이라는 이유로 너무도 억울한 인생을 살고 있는 한국태생의 여인들과 또 그 자녀들이 사랑에 목마른 채 손에 손을 잡고, 볼에 볼을 맞대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수놓는 공통분모의 꽃밭이 여기 있다.

 

  누구나 동등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는 세상이지만 이들에게 닿는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인간이 가장 귀하게 누려야 하는 존엄성 마저 상실 당한 채 푸대접과 무시 속에서 오히려 눈길을 피해야 한단다.

 

  "깜둥이 마누라가 어찌 나 하나뿐이냐? 겉이 검다고 속까지 검은 줄 아느냐? 왜 당신들의 자식들에게 내 자식과는 같이 놀지도 못하게 하느냐? 언제쯤 당신들은 세계에 마음이 튼(world minded) 내 이웃이 되어 주겠느냐?

 

  이렇게 소리 없이 절규하는 이들은 타인이 아닌, 바로 우리의 핏줄을 탄 배달의 여인들이다. 이들의 가슴속에 서러운 앙금을 씻어주는 명약이 있다면 "나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는 동정의 응어리가 이따금 스트레스 해소작용을 해줄 뿐이다.              

 

  그러나 하루 밤을 자고 나도 이틀 밤을 자고 나도 변함없이 차별의 눈초리는 사위여질 줄을 모르고 이들을 외롭고 서글픈 구석으로 몰아세우는 현실일 뿐이다.

 

  "한국남자도 싫다고 미국까지 이민 온 년이 그래 깜둥이와 놀아나? 부모가 달아 준 성한 눈깔로 넌 깜둥이도 흰둥이도 못 알아봐? 아니, 남자 보는 눈은 어디에 떼어놓았어? 남자 고를 때마다 어미 속을 뒤집어놓아야 하겠어?"

 

  이와 같이 혹독한 가시방석에서도 흑인의 아내가 된 그들에게는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들의 착한 마음, 선한 눈동자, 남을 위해 자신을 내주려는 희생적 자세에 푸근함을 느꼈을 것이다. 아니면 그들을 돕는 천사의 손길이 되어 보겠다고 선뜻 나섰을 것이다. 그런데 왜 눈총을 받고 살아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왜 한국인들에게 더욱 그런 아픔을 당해야 하나? 내 새끼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차가운 얼음판 같은 세상을 살아야 하나? 두고 보자. 앞으로 우리 나라 성씨의 본이 파리 김씨, 암스테르담 이씨, 스톡홀름 박씨, 프랑크푸르트 정씨 등이 나오게 되리라. 아니 더 많은 세월이 흐른다면 이 세상 사람 모두가 혼혈이 되어 단풍 든 가을 산처럼 천자만홍이 될 것이다. 그때에는 너도나도 부끄럼 없이 웃으며 살아가리라."

 

  우리도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으면서 우리가 받는 차별보다 더 많은 인종차별을 하지는 않는지. 그리고 특별히 우리민족의 피가 섞인 혼혈아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어쩌면 우리가 가장 날카로운 눈으로 혼혈아들을 냉대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인생의 삶의 가시밭길을 맨발로 걷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특히 혼혈아들은 벗은 채로 가시밭을 뒹굴며 살아가는 거겠지.

 

  이런 아픔을 자신의 아름으로 삭이며 사재를 들여 이들에게 뜨거운 손길을 펴 〈사랑의 모임〉을 여러 해 동안 마련해 온 여인이 있다. 그녀가 바로 미세스 나이톤이다. 그러나 미세스 나이톤의 경제적 어려움이 불황에 휩쓸리게 되자, 이 〈사랑의 모임〉을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 운동을 더 이상 이어가기가 매우 어려워진 것이다. 그래도 〈사랑의 모임〉을 이어오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소망을 품고 사는 성도들이 늘어난 것은 적지 않은 보람이었다.

 

  소설가 이성호 씨가 이 소식을 접하자, 이들을 돕겠다는 충정으로 단편소설집 「하얀 꽃 피는 엄마의 나라」를 펴낸 것이다. 이성호 씨에게도 이들을 도와야겠다는 따뜻한 마음이 솟아난 것이다. 이 책이 팔리는 대로 이들을 돕겠다는 갸륵한 마음이 이성호 씨의 가슴속에 방망이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정성으로 쓴 작품이다. 그러기에 목사의 딸로 곱게만 자란 이 씨가 이토록 험악한 인생현장 위에 여인들의 알몸을 굴려가며 묘사했으리라. 이 작품을 읽으면서 부분부분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 작품이야말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아픔과 인종차별에 대한 중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다인종 문화 속에 걸어가야 할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분명히 이성호 씨의 남편은 한국인이다. 그러므로 그의 자녀들도 순수한 한국인이다. 미세스 나이톤의 자녀들도 한국인이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속에는 혼혈아들을 돕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사랑의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미세스 나이톤은 4 년 동안이나 희생적으로, 국제 결혼한 여인들과 그 자녀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에 앞장 서 준데 대해 감사하면서 이 운동이 멈춤이 없이 발전하리라는 꿈을 안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이웃인 이들에게 소외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모임〉을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희망 있는 앞날을 열 수 있도록 용기를 갖게 해야 합니다. 흑인들을 차별 없이 고용도 하고 커뮤니티 차원에서 도움의 손길을 펼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미세스 나이톤의 하소연이다.

 

  문학사상 제23회 신인당선 시인으로 문학세계에 단편소설이 입선되면서 창작에 몰두해 온 이성호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혼혈을 장려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혼혈에 대한 차가운 차별대우, 특히 흑인 혼혈아들이나 흑인의 한국인 아내들에 대해 이해와 사랑의 눈길이 있어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그들의 기구한 운명은 슬픈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우리들이 상상하는 비극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처음 신문지상에 발표한 작품이 「흑인인형」이란 작품이었고 또 처음 쓴 장편소설이 「아흔 아홉 계단」이란 성공한 흑인의 아내 이야기였습니다. 이 작품집 때문에 나는 많은 흑인의 한국인 아내들과 착하고 점잖은 흑인들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종차별은 어떤 학적인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직도 비린 글 솜씨지만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써야하는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여섯 번째 책을 내면서 처음 출판 때의 추억이 새롭습니다. 대구 신명여고, 대구대학(현 영남대학교), LA 시립대학, 줄줄이 엮어가며 내가 속해 있던 단체 명이랑 칼럼 난까지 나열해 문단약력을 억지로 늘어놓던 일이 새삼스럽습니다. 백의민족을 자랑하고 싶어 "하얀 꽃"으로 엄마의 나라를 상징해 보았습니다. 단군의 자손을 강조하면 곰의 후예가 될 것이고 다윈의 진화론을 믿으면 우리는 원숭이 자손입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단군 설화를 이야기했더니 곰이나 원숭이 자손이 되기 싫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진정한 세계화를 이루어 그 축복을 누렸으면 합니다"라고.(「광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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