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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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하모니카-한국일보 제24회 문예공모전 당선작〈시 부문〉- 최선호 


구자애(具滋愛 1964- )

여류시인 충남 면천 출생, 경기대학교 대학원 수료 계간〈문학산책〉시부문 신인상 수상 의왕여성문학회 회원 미주시문학회 회원 현재 Los Angeles에 거주.



산등성이거나

고즈녁한 저녁이거나

바다 한 귀퉁이거나

가만히 귀를 대어보면

애잔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파도소리이거니

아니면 갈매기 소리거니 했지만

심해에 드리워져 있는

어망에서 나는 소리인 것이다.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가냘프고

슬픈 소리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아렸을 적 조기잡이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울었다거나

가족 위해 망망대해

고기잡이 나갔던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거나

운이 좋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낙지 못한 어망이

잡히지 않는 희망, 허기진 한숨소리, 아련한 갈증들을

제 구멍구멍 사이에

고기대신 기득 채워 넣었던 것이다.


가끔씩은 어느 구멍에선가

청아한 소리가 나긴 했지만

아주 드문 일이기에

금방 해일 속에 묻히고 만다

내 목소리가 무겁다거나, 가녀리다거나, 음울한 것은

쉴 새 없이 뒤채이는

파도 속에서 쓸리고 깎여

기다림의 상처와 잔해들이

아물어 기는 소리인 것이다.

                              -구자애의「하모니카」전문

     

심사평(발췌)

당선작〈하모니카〉의 구자애 씨는 함께 보낸 다른 작품들이 고른 수준을 보이고 있어서 딴 분보다 안심하고 당선작으로 밀 수 있었다. 결점이 있다면 구성이나 표현이 자꾸 산문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심사위원 마종기


결국 구자애의〈하모니카〉에게 당선의 자리를 내주었다. 유년시절의 아픔과 슬쓸함을 몸으로 직접 울어내는 소리가 일품이었기 때문이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 개연성도 좋았고, 무엇보다 함께 투고해준  작품들이 일정한 수준을 갖추고 있어 선자들의 믿음을 샀다.- 심시위원 한혜영 


해설

당선작을 놓고 심사평을 곁들여 비교해보면서 작품 감상을 하는 일도 꽤 재미있는 일로 여겨진다. 지난 시간에 우리 구자애 시인에게 축하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구 시인의〈널뛰기〉를 감상했다.

구시인은 산문체의 자유 서정시로 우리를 울리고 있다. 특히〈하모니카〉는 더욱 그렇다. 바로 구자애라는 여성이 하모니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자애 시인의 낭만을 만나게 된다. 즉 어망에서 나는 애잔한 소리, 슬픈 소리를 어망의 구멍구멍 사이에 고기 대신 가득 채워 넣은 소리- 이 소리는 바로 구자에 시인 자신의 울음소리인 동시에 우리들의 울음이다. 삶의 고난을 달래는 소리(기다림의 상처와 잔해들이 아물어 가는 소리)가 구 시인에게 감정이입(感情移入) 되어 더욱 가슴을 뜨겁게 데우고 있다. 시의 스케일이 넓고 삶과의 밀착감(密着感)을 갖게 한다. 우리들 모두는 인생의 설움과 기쁨을 생계가 걸린 어망 같은 우리 하모니카로 계속 불어내고 있는 것이다.- 최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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