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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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성탄제(聖誕祭)

 

 

                                                                 김종길(金宗吉 1926- )

 

A. 어두운 방안에
    바알간 숯불이 피고,
B.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C.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D.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E.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F.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G. 어느 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H.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I.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J.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22행의 전 연으로 짜여진 내재율의 자유 서정시이다. 우리들이 살던 한국의 토속적인 정경이 과거와 현실에 맞물려 한 폭의 단막 영화처럼 어려있다. 어찌 보면 수필이나 소설의 일부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착각이다. 수필이나 소설이 주는 분위기를 지나서 시정의 승화(詩情의 昇華)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겪는 일상에서 소재를 택하였고, 시어도 일상용어로 쓰였으며, 구성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추보식 구성을 하고 있으면서 회상을 곁들이고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우리의 가슴에 들어와 감동의 불을 지펴주고 있다.

 

  차분하게 순수한 사랑에의 그리움이 담겨있다. 이것이 시인이 노래하고자 하는 포인트이다. 비유적 심상보다 묘사적 심상에 의한 서술적 표현을 주로 하고 있다.

 

  F 연을 통하여 과거에서 현재(시각적)로 추억과  눈앞의 풍경(공간적)으로 이어지는데 대한 교차점을 이루고 있다.

  성탄은 누구의 가슴에나 흰눈과 함께 성스러운 정경으로, 성스러운 사랑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특히 이 시에서〈성탄제〉에 내포된 의미는 '성스러운 사랑'이다.

 

  A 연의 '바알간 숯불'과
  D 연의 '그 붉은 산수유 열매-'는 '사랑'의 감각적 표현이다.

  B 연의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은
  E 연의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과 같은 표현이다.

  I 연의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서 아버지에 대한 생생한 기억과
  J 연의 '내 혈액'과 연결을 이루며, 차가운 눈과 함께 촉각적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매체는 '성탄제'와 '눈'이다.

  무의식중에 지나쳐 버리기 쉬운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 이토록 감동을 주는 정신적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소중한 영역이다. 이 점이  김종길 시인의 시풍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귀한 초점이 된다. (詩文學 補充敎材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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