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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중앙신인문학상-시 당선작

 


생활의 틈

 

                             장효영(1971- )


 

소망 베이커리와 코끼리부동산을 연결하고 있는
좁은 길 구석에 달걀을 피라미드처럼 쌓아놓고 파는
여자가 있다 거의 매일
누런 재생용기의 달걀 판이 안정감 있게 달걀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덤으로
졸고 있는 여자의 고단한 삶도 버텨주고 있다.
그 정면으로 이어지는 횡단보도에 햇살이 멈추어서고
여자의 그늘진 자리가 더욱 분명해지는 오후

 

내가 길을 건넜다가 돌아오는 사이에
웬일인지 달걀이 반쯤 줄어져 있다 여자는
움푹 팬 볼을 실룩거리며 깨진 달걀을 치우고 있다.
자신의 상처인 듯이 아프게 달걀을 닦아내고 있다.
붉은 신호등 아래선 사람들은 잠시, 무너진
하루의 피라미드를 엿보며 지나가고

 

여자는 아마도 그 순간 아슬아슬한
보화의 꿈을 꾸었나보다.

 

 

 〈생활의 틈〉에 삶의 고달픔이 절절히 배어있다.〈소망 베이커리와 코끼리부동산을 연결하고 있는 좁은 길〉, 〈누런 재생용기의 달걀 판〉, 〈졸고 있는 여자〉, 〈여자의 그늘진 자리〉 등에 고달픈 삶이 서려있다. 더구나 〈여자의 고단한 삶〉을 그나마 덤으로 버텨주는  것은 〈누런 재생용기의 달걀 판〉뿐이다.

 

  둘째 연으로 접어들면서 사태가 변화된다. 〈내가 길을 건넜다가 돌아오는 사이〉로 변화의 합리성을 제시한다. 아마도 졸고 있던 여자의 실수였을까? 달걀이 반쯤 줄었다. 팔린 것이 아니라 깨졌다. 꿈과 현실이 맞지 않는다. 설상가상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길 구석에서 달걀을 파는 여자의 고단한 삶이 전지적 시점으로 그려져 있다. 직접묘사이다. 이런 수법에서 살아있는 감동을 얻게 된다. 이와 비슷한 소재로는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중에 계란장수이야기가 있다. 계란을 잔뜩 짊어지고 장으로 가던 길에 계란지게를 받혀놓고 좀 쉬다가 깜박 잠이 든 사이, 꿈속에서 계란 팔아 돼지를 사고, 돼지 팔아 소를 사고, 소를 팔아 밭을 사서 참외를 심고, 원두막에서 지키다가 참외를 따는 녀석을 작대기로 후려치는 꿈을 꾸다가 그만 지게작대기를 치는 바람에 지게가 쓰러지면서 계란이 몽땅 깨졌다는 이야기-이런 소재가 연상된다. 어쨌거나 표현이 다양하고 섬세한 산문율의 자유 서정시이다. 마지막 연 두 행은 설명조를 띤 묘사로 보인다.

 

  이런 시를 통해 우리의 마음에 깔리는 정경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특히 이민의 삶은 이보다 더 고달픈 삶인지도 모른다. 별로 길지 않은 시를 통하여 인생의 단면을 심도 있게 그려내는 시인의 예리한 현실감이 돋보인다. (시 발췌 2004. 2. 2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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