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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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수필쓰기


수필이란 무엇인가

 

 수필은 문학의 한 장르이다. 문학은 7대 예술의 한 분야인 단일예술로써 시, 소설, 희곡, 평론, 수필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문학의 3대 장르로는 시, 소설, 희곡이 이에 속하고, 4대 장르에 평론, 5대 장르에 수필이 낀다. 4대 장르인 시, 소설, 희곡, 평론은 전문적인 문학에 속하지만, 수필을 전문적인이라 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문학이란 문학에서 요구하는 체계적인 격식을 갖추고 있는 장르를 말한다. 수필은 그런 격식을 요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전문적인 문학에 속한다.

 

 가령, 시에는 기, 승, 전, 결이 있고, 소설과 희곡에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대단원(결말)이 있고, 평론에는 서론, 본론, 결론이 조리를 이루어야 하지만, 수필에는 일정한 격식이 없다. 그래서 수필은 사뭇 자유로운 글이라 할 수 있기에 비전문적인 문학으로 흔히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 한다.

 

 일단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된다. 모든 글이 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문학은 자기의 진실한 고백이다. 직접적인 고백이 있는가 하면 간접적인 고백도 있다. 쓰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특히 수필은 직접적인 고백에 가까운 글이다. 거의가 1인칭 시점으로 쓰이고 있지 않는가?

 

 수필에는 에세이(essay)와 미셀러니(miscellany)의 두 형태가 있다. 에세이는 수필 속에 속하는 작은 논문으로 이해하면 큰 무리가 없을 성 싶다. 수필의 형식을 빌려 자기의 주의주장을 피력하는 글들이 이에 속한다.

 

 미셀러니는 같은 수필이라도 에세이와는 성질이 다르다, 자기의 신변잡기라 할 수 있다. 삶의 이야기, 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 등을 기록한 글이다. 그러므로 일기, 기행문, 제축문, 편지 등이 이에 속한다.

 

 어디까지나 자유롭게 견문, 체험, 감상, 소론(小論) 등을 적어 모은 것이다. 따라서 내용도 일기적, 기행적, 감상적(感想的), 사색적, 고증적(考證的) 등, 제한 없이 여러 방면에 걸쳐 있지만 이것들에게 공통된 성격으로서, 작자의 개성이 단적, 직접적으로 표백되고, 또 비판적, 내성적 경향을 띠어오고 있는 글이다.

 

 근대로부터 제반 문물의 흥륭에 따라 수필이 더욱 여러 방면에 걸쳐서 시인이나 소설가뿐만 아니라 국문학자, 한학자, 화가를 비롯하여 법제(法制), 유직(有職), 고고(考古), 사전(史傳), 의학 등, 그 방향의 전문가들에 의해 유찬설화(類纂說話)의 집성(集成) 등, 광범한 내용이 가지가지 형식으로 나타났다. 현대에 있어서도 수필은 여러 가지 많은 형태와 내용을 가지고 무섭게 나오고 있으며, 문단의 혹성적(惑星的) 존재이면서도 또한 보다 솔직한 인간성의 표백으로서 가볍게 볼 수 없는 존재이유를 가지고 있다.


수필은 누가 쓰는가

 

 모든 문학에는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제한이 없다. 글 쓰는 사람에 대한 제한이 있을 수도 없고 또 있어서도 안 된다. 누구나 어떤 글이든지 쓸 수 있다. 시인, 소설가, 극작가, 평론가, 수필가 등의 칭호는 그런 방면에 문학계의 인정을 받았달 뿐이지,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만이 글을 쓴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든지 어떤 장르의 글이든지 쓸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수필가만이 수필을 써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글이 독자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느냐에 글의 생명이 달려 있는 것이다. 수필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썼을지라도 독자에게 별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그 글은 이미 죽은 글이다. 누가 썼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 글이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통하여 독자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감동을 통하여 청중이나 독자들을 감동시켜서 그들을 정화(淨化)시켜야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써야 수필이 되는가


 수필에 쓰이는 글의 소재나 주제에는 제한이 없다. 무엇이나 글로 쓸 수 있다. 다만 글로 썼을 때 얼마나 큰 아름다움의 감동을 불러낼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아무리 근사해 보이는 소재나 주제라도 감동을 줄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일단 접어두는 편이 현명하다. 억지를 부려가며 글을 쓰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한다.

 

 개성 있는 소재, 개성 있는 주제를 선택하는 편이 상책이다. 개성이 없는 글은 감동을 주기 어렵다. 우리에게 과거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앞으로의 소망도 있다. 또 지금 이 시간과 장소에서 경험하는 일들도 있다. 어떻든 개성 있는 소재와 주제를 찾아야 한다. 개성이 있다는 말 속에는 나만이 쓰는 글이라는 의미가 있다. 나만이 쓴다는 말을 바꾸어 말하면 남이 안 쓴 글을 내가 쓴다는 의미이다. 남이 쓴 내용과 비슷한 내용으로 내가 글을 썼다면 이미 개성을 상실한 글이다. 그러므로 개성 있는 글이란 나만이 쓴 글을 말한다. 그런 글일수록 참신하다. 독자의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수필을 어떻게 쓰는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그것이 바로 수필이다. 그러나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재주를 부리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진실하게 써야 한다. 현학적인 태도는 아예 금물이다. 필요이상으로 아는 척해서도 안 된다. 자기가 본 대로, 느낀 대로, 생각한 대로 감동 있게 쓴 글이면 좋은 수필이 될 수 있다. 문장의 행간마다 진실해야 하고, 정확해야 하고 감동이 흐르면 되는 것이다. 시나 소설이나 희곡, 평론처럼 어떤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손색없는 글을 이루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문장을 지루하게 끌어서도 안 된다. 간단명료하게 독자를 글 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면서 독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 도덕성이나 문학성이 다분히 그 밑창에 깔려 있는 글을 쓰는 것은 필자의 인생관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문장에는 대체로 6가지의 종류가 있다. 간결체, 강건체, 건조체, 만연체, 우유체, 화려체가 그것이다. 어떤 형태의 문장으로 쓰느냐 하는 것은 소재와 주제에 맞는 문장형태를 필자가 정해야 한다. 그러나 대개는 자기 나름의 스타일이 형성되어 있으므로 자기 스타일을 탈피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신앙간증문에 대하여


 신앙간증은 신앙정서 함양에 도움을 주는 글이라는 판단은 무리가 아니다. 이런 형태의 글도 수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일반 수필처럼 작자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안 되는 글이 간증문이다.  일반 수필은 작자의 고백이며 작자가 주도하는 글이지만 간증은 작자가 주도해서는 안 되는 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간증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대로 기록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 자칫하면 신앙의 본질을 잃기 쉽고, 자기만이 받은 복처럼 미화, 과장하기 쉬운 면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렇게 쓰인 간증문은 신빙성이 희박하여 독자의 빈축을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구나 문학적으로 정서화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좋은 수필일수록 정서화가 잘 된 글이다.

 

 그렇다고 신앙간증문을 쓰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신앙간증문을 쓰려면 성경기록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성경기자들의 기록태도를 본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해서 글을 쓰는 일은 절대로 삼가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을 때 비로소 붓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글은 작자가 쓰지만 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

 

 글을 쓴 사람은 떠나가도 그가 쓴 글은 세상에 남아서 제 구실을 하는 것이 문학의 매력이다. 특히 기독문학인의 신앙적인 작품을 통해 복음전파에 도구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반드시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신앙문학이라는 초보적 인식에서 벗어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골수에 새기는 기독신앙의 성숙과 높은 인격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          

 

 

수필쓰기를 마치면서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을 읽고 있습니다. 아, 수필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몸으로 느끼며 보약처럼 하루에 2-3 편정도 읽어요. 시는 은유라는 시적 장치를 의지하여 쓸 수 있지만 수필은 아무것도 없이 마치 공중목욕탕에 들어서는 것 같지 않을까요. (자신의 삶에) 자신 있거나 용기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어느 시인이 나에게 보내온 글이다. 짤막하지만, 나에게 보내고 싶은 생각을 알뜰하게 걸러 보냈다. 이 시인의 말대로 시와 수필은 각각 그런 것이다. 시는 수필이 아니고 수필 또한 시가 아니다. 시는 은유라는 시적 장치를 의지하여 쓸 수 있지만, 수필은 아무것도 없이 마치 공중목욕탕에 들어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시와 수필의 특성을 잘 가려낸 말이다. 공중목욕탕에 들어가는 사람은 가진 것 없이 몸만 들어가서 목욕을 마칠 수 있다. 수필도 그런 것이라고 동감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감동을 느끼도록 쓰고 싶은 대로 쓰면 그것이 바로 좋은 수필이다. 그러면 그 속에 인간의 냄새와 인생의 향기가 감돌게 마련이다. 그러나 시는 그렇지 않다. 시를 쓰려면 주제설정이 명징해야 하고 은유(상징)가 될 소재선택에 눈이 밝아야 한다. 따라서 시의 흐름에 기승전결의 가락이 형성되고 콧날이 씽하는 감동을 수반해야 한다. 수필도 이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주제와 구성, 언어선택 등 다양한 노력이 수반됨은 마찬가지이다. 

  모든 글이 다 그렇지만 특히 수필에는 다른 글보다 더욱 진한 향기로움이 감돌아야 멋있는 수필이 된다.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글이 수필'이라는 말 속에는 많은 향기를 모아들여야 한다는 뜻이 있다. 마음대로 앉고 싶은 꽃에 앉아 꽃가루를 묻혀다가 꿀을 만드는 꿀벌과 같은 사람이 수필을 쓰는 사람이다. 꿀벌은 꽃가루가 많은 꽃잎을 잘 분별할 줄 안다. 그러므로 수필을 쓰는 사람은 풍부한 글감을 모아서 반드시 진한 향을 풍기는 글이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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