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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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최선호의 시세계: 촌평 · 시작노트 

 

 

 

  최선호의 시는 냉수, 바람, 나무 등 평범한 시적 대상에 대해 끈질긴 집념으로 투시하고 있다. 그리고 얼핏 나이브해 보이면서도 매우 숙성한 사고력이 작품 속에 자리하고 있다. 신앙인답게 삶의 현실을 보는 눈이 포근하다. 그는 관념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을 토대로 하여 삶의 현장을 직시하고 있다(혜산).

                                                                                                                        - 朴斗鎭「문학과 意識」 1993. 가을호          

 

 

〈나의 엘로힘이여〉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 노래나 불러도 되는 것이 아니다

무한의 죽음 이만치서 맞이한
우리 생애의 저녁 때
마지막 남는 것은 무엇이냐

 

나는 지금                                           
그대 곁으로 가는 꿈을 꾸며                        
시름거리는 오늘을 눈물로 씻는다                         
별을 딛고 하늘을 건너서 오시는                                      
나의 엘로힘 그 피 흐름이여

 

  주님의 신실하신 종으로 또 고운 말로 詩를 쓰시는 예술가로 열심히 생활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희 두 사람 존경하고 있습니다.… 창 밖의 찬란한 달빛과 푸른 신록 속에 가지가지 피어 있는 꽃들을 바라보면 주시는 은총이 너무너무 충만하여 모든 일은 잊고 감사만 넘칠 뿐입니다. 좋은 시를 쓰신 목사님 가정 행복을 기원합니다.

                                                                                                   - 조옥동(시인, 수필가) 2001년 6월 27일에 보내온 엽서 일부

 


   나 떠난 후
   사망했다는 말
   말아 주오

 

   타계했다거나
   별세했다는 말도
   하지 말아 주오

 

   서거했다는 말은
   격에도 맞지 않을 터이니
   잠시 외출했다고만
   조용하고 부드럽게
   속삭여 주오    

                                                                                                      - '사랑하는 이여' 제1∼3연   

   

  이 시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산물이 아닙니다. 죽음에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너무 집착하지 않으려는 종교적 인식이 담겨있는 시라고 할까요.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니라/육체를 벗으면 보이는 것이 있다기에/육신을 땅에 묻어두고/홀가분히/바깥바람 쐬러 갑니다"라는 제4연은 죽음에 대한 깊은 명상을 잘 표현한 연입니다. 마치 불가의 고승이 자신의 죽을 일시를 예고하고 나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문득 숨을 거두는 것처럼, 참으로 담담하게 죽음의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도 최선호 시인처럼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의 마음을 갖도록 애를 써야 하겠습니다.

                                                                                                      - 이승하(시인, 문학평론가)「미주문학」2003. 여름호


   최선호 시인의 '가을풀잎'입니다.

      

   연한 잎으로 돋아나서 건초로 눕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을
   허리 구부리고 나부끼었느냐  

 

   하늘 향해
   적막한 우주를 우는
   빛의 막대기
   빛의 지팡이
   가슴을 밝히는 촛불 같은 거

 

   이제 남겨야 할 말은
   무엇이며
   흔들고 싶은 마지막 깃발은
   어디 있느냐

 

   가을볕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 너의 넋은
   몇 만 가슴을 다시 흐느껴야
   이 땅에 가득할
   새싹으로 돋아나느냐

 

   빈들에서
   떼죽음 당하는 목숨들아!

                                                                           - '가을풀잎' 전문

 

  이 시 역시 자연을 통한 인생과 신앙에 대한 관조의 세계를 자연과의 상호 교감에 의한 대중적이고 사회적인 회한과 함께 참된 인간 사회와 가치 있는 생명에 대한 열망이 잘 나타나 있는 신앙적인 주제가 담긴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 고 원 시인의 시의 내용이 개인적이고 명상적인데 비해, 최선호 시인의 시는 대중적이고 교화적(敎化的)이고 호소력 있는 동적 리듬으로 구성된 시라고 할 수 있겠고, 두 분의 시가 역시 비슷한 철학적 관념의 세계를 별이나 풀잎 등, 자연이라는 같은 매체를 통해서 가벼운 서정으로 순화시킨 그 기법이나, 우리의 생명과 삶에 대한 가치를 자연과 종교를 통해 관조하며, 반성을 통한 참된 생명의 길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비슷한 주제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는 이 두 분의 시처럼 인간의 바른 가치나 바른 생각 등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주제가 정서적으로 잘 표현된 시가 비교적 좋은 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하리라 믿습니다.             
                                                                                                              - 박영호(시인, 문학평론가),「문학세계」2003.

 

 

  최선호의 '가을풀잎'은 생명체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입니다. 건초 더미를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한때 수많은 연한 잎이었습니다. 살아 있었기에 "빛의 막대기/빛의 지팡이/가슴을 밝히는 촛불 같은 거"였습니다. 그러나 가을볕바람이 불면 돌이킬 수 없는 세계로 갑니다. 그 곳의 죽음의 세계, 사람으로 따지면 저승이나 명부입니다.
  마지막 연은 절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가을 풀잎만을 가리켜 쓴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포격으로 죽은 아이들, 에이즈로 죽은 아이들, 굶주려 죽은 아이들을 빗댄 표현인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연한 잎들은 '죽음'이라는 운명을 돌이킬 수 없었기에 건초가 되었습니다. 죽음이 모든 생명의 자연스런 귀결임을 인간 각자가 잘 알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이 이렇게 살벌하지는 않겠지요.
  시인은 가을풀잎이 몇 만 가슴을 다시 흐느껴야 이 땅에 가득할 새싹으로 돋아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우리의 산다는 것은 아픔을 견디는 것이며, 그 아픔마저도 유한한 것임을 말해주고 싶었던 게지요.

                                                                                                  - 이승하(시인, 문학평론가), 「미주문학」2003. 가을호        

 


   그대 고독의 끝 날은
   내 생애를 가르는
   억 겹 목마름

 

    아- 나는
    바람 스치는 맨살로
    그대를 품은 허수아비

 

   심령을 쪼는 새떼들의 바람 속에
   떨면서 자지러지면서
   땅에 엎드려 울고 싶었던

 

   외로운 가슴에 안긴
   더 외로운 이여

 

   겨울이 오면
   그대 목마름 위에
   하얀 눈으로 내려 쌓여 녹아 주마

                                                                                             -'더 외로운 이여' 전문

 

  이 세상에 참으로 외로운 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입니다. 나는 "바람 스치는 맨살로/그대를 품은 허수아비"이니까요. 시의 제3, 4연은 외로움의 극한을 보여줍니다. 내가 느끼는 고독감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 내 품안에 안긴 그대의 고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심령을 쪼는 새떼들의 바람 속에/떨면서 자지러지면서/땅에 엎드려 울고 싶었던//외로운 가슴"을 가진 허수아비인 나보다 그대는 더더욱 외로운 존재이기에 내 품에 안겨있지 않습니까. 허수아비인 내가 그대에게 말합니다. 겨울이 오면 그대 목마름 위에 하얀 눈으로 내려 쌓여 녹아 주겠다고. 나보다 더 외로운 이를 향한 비통한 위로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 희생이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을 최선호 시인은 말해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 이승하(시인, 문학평론가),「미주문학」2004. 겨울호 

 


   노을이여
   흔들리는 목숨 어지러이 흩어진
   하루의 끝자리 눈물 젖은
   노을이여

 

   가야할 마지막 하늘을
   울음으로 노래로 기도로 적시며
   잠재워야 할 내 영원
   고운 노을이여
                                                                                   -'저녁노을' 제1∼2연

 

  최선호는 노을지는 하늘을 향해 내면의 감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낸다. "울음으로 노래로 기도로" 영혼의 궁극적인 목표인 신에의 길, 영원의 길을 노을에 두고 기원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울부짖고 감격하고 조용히 명상하는 모습이 동시에 떠오르기도 한다.

                                                

                                                                                                                   - 박이도(시인)「미주문학」2006. 겨울호   

 

   철철 우는
   저 불바다를 어쩌랴

 

   와서 살다 가는 빛

 

   가지마다
   은하 저편 수 억 년을 건너 온
   별빛들의 열림, 그 아우성

 

   누가 펼치는가
   이 뜨거운 통곡을

                                                                                           -'단풍' 전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중에 단풍보다 이름다운 것이 또 무엇인가! 단풍은 삶의 완숙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듬뿍 안고 있다. 인간은 단풍 한 잎도 만들지 못한다.
  이토록 찬란한 감격은 하나님만이 펼치시는 우주의 큰 잔치이다. 이처럼 단풍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향해 펼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손이다.

                                                                                           - 시작노트에서  


  나는 시를 쓰는 일에 많은 갈등을 느끼고 있다. 시가 나의 우상이 되지 말기를 바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성직의 길을 가는 나에게 내가 믿는 하나님 외엔 그 어떤 것도 내 안의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시를 짓기가 더욱 어렵다. 시보다 믿음을 앞세우고 살기로 작정을 했으니 더 이상 미련은 갖지 않는다. 다만 내가 만나는 영감을 통해서 기록으로 남길 뿐이다.
                    

                                                                                                          - 세계한민족시인선 「2000년의 시의 축제」에서 


  그의 시 경향은 자연을 통한 인생과 신앙에 대한 관조의 시 세계를 가지고 있다. 회한과 함께 참된 인간사회와 가치 있는 생명에 대한 열망이 잘 나타나 있는 주제가 담긴 시를 쓰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는 어디까지나 한국적인 전통적 서정을 바탕으로 싸여져 있다.

 

                                                                            - 「한국시대사전」THE ENCYCLOPEDIA OF KOREAN POETRY 2004.  

 

 시는 글로 나타난 노래이다.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 인간심령의 자연이다. 고요하게 다가오는 영혼의 울림이다. 여기에 진실한 삶이 있고, 진리가 있고, 계시의 놀라운 근원을 만나는 아름다운 경지가 있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어우러져 피어있다. 이런 꽃밭 한가운데서 태양보다 밝은 빛을 향하여 날아오르는 한 가닥 목숨이고 싶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쉬움으로 뉘우쳐지는 것뿐…, 다만 그의 은혜로 용서와 사랑 속에 다시 태어나는 나를 찾는다. 

                                                                                                                           - 시작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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