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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산문 빛이 어둠을 이기는 순간처럼

2016.12.15 04:41

최선호 조회 수:148

 

 

빛이 어둠을 이기는 순간처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우리를 감싸고 있는 두려움, 공포, 불안이 말끔히 가셔진다. 우리들의 모든 죄까지 깨끗이 속량 받는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이다. 빛이 어둠을 이기는 순간처럼. 마치 완전한 연합이 분리와 혼돈을 몰아내는 이치와 같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이야말로  더할 수 없이 강하다. 삶을 변화시키는 절대의 권능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을 깨달아 알고 경험하게 될 때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 자유는 영원한 자유이다.  이토록 지극히 축복된 삶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오는 놀라운 은혜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입증하시는 것이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로써 사랑이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귀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의 인생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에 근거함이 마땅하다. 우주만상 가운데 이보다 더 거룩한 위대함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함에서 오는 신실한 결실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들에게 나타난다. 자연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에서 그 사랑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한의 자연은 모든 생명들을 감싸며 보존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4:11). 이런 증거를, 지천으로 땅 위에 널려 있는 한 포기의 풀이나 한 그루의 나무에서도 볼 수 있지 않은가? 풀을 보자. 나무를 보자. 말 없이 베이고, 꺾이고, 찢기고, 그 이파리마저 땅에 떨어져 결국 썩어서  옆의 풀이나 나무들의 거름이 되어주지 않는가. 산이나 들에 사는 짐승이나 하늘을 나는 새들, 물 속의 고기들까지 예외 없이 나 아닌 남을 위해 죽음을 맞이한다. 바닷 속 미생물일지라도 허드레로 없어지지 않는다. 플랑크톤으로 고기들의 먹이가 되어준다. 이들은 인간처럼 만물의 영장은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에 딸린 사랑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님과 인간, 그리고 피조된 만물들에 이르기까지 지극한 사랑의 줄로 이어 있다. 이는 생명이 약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은 목숨이다. 목숨에는 순수함이 있다. 순수함은  언제나 사랑을 동반한다. 그러나 지극한 사랑을 표현한 시나 소설에 나타난 작중인물과의 사랑이 아무리 순수하달지라도, 꽃으로 치자면 생명이 없는 조화(造花)에 불과하다. 작중인물이 나누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작중인물에는 목숨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물이 아니다. 사람이 지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순수한 사랑을 지어내지 못한다. 순수한 사랑의 성분은 오로지 하나님만의 영역이다. 사람이 지어내는 사랑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모방이다. 모방은 실재(實在)가 아닌 가상(假象)이다.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실재가 아닌 있을 수 있는 가상일 뿐이다. 가상의 세계에서 창작된 사랑의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한들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과의 비견에 대볼 수나 있으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워낙 그 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하나님과 인간은 다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마음과 정성과 힘과 몸을 다하여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그런 가운데 가상 아닌 진실이 아름답게 구현된다. 이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주고 받는 지극한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크리스천의 삶에서 완전에 이르는 길이다. 이런 완전은 간구할 때에라야만 주어지는 것으로서, 크리스천은 교회생활을 충실하게 하면서 그것이 주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가만히만 있으면 절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요한 웨슬리는 <크리스천의 완전> 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으로서 사랑이 넘치는 철저한 인간적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에 넘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 그의 행동 전부를 지배하게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완전이다. 크리스천의 완전은 영원한 시간에 걸쳐 성장하는 것”이라 했다. 구약시대 인물들의 완전이 저급했던 것은 그들의 시대가 그리스도 이전의 율법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 시대에 속하는 우리 크리스천은 성령에 의해 흠 없는 완전을 차지할 수 있다. 성령에 의하면 그의 생활이 사랑으로 지배받게 되었을 때 어떤 방식의 생활을 해야 할 것인지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제 지난 날 율법에 복종하던 생활은 버려진 것이며, 사랑에 넘치는 생활 속에서 성장되어 가는 것이다. 빛이 어둠을 이기는 순간처럼. (8. 27.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