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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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산문 꿈 이야기

2016.12.15 04:55

최선호 조회 수:43

 

 

꿈 이야기

 

 

 

  흙 냄새를 맡으며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매일같이 하늘과 더욱 친해지려고 애를 쓴다. 하루를 돌아와 잠들 시간이면 으례 창문 커튼을 열어 젖히고 잠자리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곤 한다. 푸른 하늘이건 검은 하늘이건 상관이 없다. 나의 시선은 어느새 하늘에 올라가 있다. 이 별, 저 별, 별들과의 대화도 가져본다. 그리고 하늘로 오르내리는 사다리를 놓는다. 별이 없는 밤이라도 나의 마음은 사다리를 타고 무한정 위로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이 시간만은 세상 것 모두 잊고 우주의 한 지점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새 잠이 들곤 한다. 새벽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늘을 우러르며 팔 벌려 기지개를 켠다. 이것이 새 날을 맞는 나의 몸짓이다.

 

  밤에는 꿈을 꾼다. 밤이면 밤마다 꾸는 꿈이지만, 새벽만 되면 까맣게 잊어버린 채 눈을 뜨게 된다. 그런데 간혹 1년, 5년, 10년, 아니, 그 이상의 세월이 흘렀어도 잊혀지지 않는 꿈이 있다. 오랜 세월동안 간직하고 있었으면서도 그 꿈이 길몽인지 악몽인지조차 가리지 못하면서 기억에서 떨쳐버리지 못하는 꿈들이 있다. 바싹 다가오지도 않으면서 아예 사라져버리지도 않는 꿈. 무슨 이유로 오랜 세월을 두고 이따금씩 이런 꿈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소학교 5학년 때 꾼 꿈인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달밤에 혼자 산길을 향해 가는데 공동묘지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썰렁하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다보니 어떤 여인이 머리를 산발하고 얼굴도 없는 몸짓으로 나를 따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겁을 했다. 꼭 죽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었다. 3일 동안 밤마다 같은 꿈을 꾸었다. 낮에는 잘 놀다가도 저녁만 되면 풀기가 없어진다. 이불 속에서 덜덜덜 떨고 있다가 잠이 들면, 영락없이 또 그 여인이 나를 따라온다. 그 여인은 내 친구의 누나이다. 내가 잘 아는 누나인데 왜 그런 꿈이 꾸어졌는지 지금까지도 모를 일이다. 그 후로 그 누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 적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다.

 

  개꿈을 꾸고도 50여 년이 가깝도록 그 누나 얼굴을 쳐다보지 않은 궁금증이 지금도 풀리지 않는다. 차라리 야곱처럼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가던 길에 돌 베개 베고 자다가 하나님을 만난 꿈을 꾼 것처럼 나도 그런 꿈이나 꾸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야곱이 꾼 꿈이 몇 천년을 두고 내려오면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