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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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산문 해방의 그날은

2016.12.13 17:16

최선호 조회 수:49

 

 

해방의 그날은

 

 


 1945년 8월 15일!

 눈물과 한숨으로, 들키면 큰일나는 숨들을 쉬며 살아온 아픈 세월이 일본 제국주의의 수뇌이던 덴노헤이까의 '무조건 항복'과 함께 말끔히 씻겨 갔다. 36년간을 우리 땅에 들어와 날뛰던 일제의 쇠사슬이 풀리는 을유 해방은 너무도 감격 어린 눈물을 파도처럼 몰아왔다. 정치적 탄압, 경제적 착취, 사회적 노예화, 교육문화의 말살, 민족의 얼인 우리의 말과 글까지 없애버렸는가 하면 창씨 개명의 강요, 재산과 자원의 몰수, 심지어 제기(祭器)까지 빼앗고, 청 · 장년과 나이 어린 처녀들까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탄광으로 비행장 수리공으로 군수공장 노동꾼으로, 심지어 위안부로 몰아갔는가 하면 신문, 잡지의 폐간 등....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짓밟던 일제! 일제는 민주주의 연합군 앞에 꼼짝없이 백기를 들고 우리 땅을 물러났으니 당시 우리 민족의 감격은 어떠했으랴!

 그 지긋지긋하던 일장기와 일제간판, 일제의 유물들을 불사르느라 여기 저기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그 연기가 솟아오르는 상공에는 미국 B29 비행기가 뜨고 항구엔 미국 군함이 정박을 하고 신사(神社)자리마다 참배의 욕된 과거를 씻기라도 하는 듯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는 옷 한 벌 제대로 해 입지 못하는 우리 동포, 저고리가 들려 허리가 허옇게 나오는 부녀자들의 가련한 모습, 남자들이라야 계획하는 일마다, 학문 없고 기술 없어 모두 일인들에게 빼앗기고 흙일과 잡일들, 그것도 일인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그날 그날을 때우다가 아차! 실수하면 흙더미와 함께 매몰되어가던 그 현실. 가뭄에 콩 나듯이 '마른 북어도 영양이 많다'고 갖은 입방아들을 찧으면서 어쩌다가 머리 자른 북어 겨우 한 두 마리씩 배급을 주면서도 생색을 내던 그들. 그들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고구마 줄거리를 얻어 말려서 기름에 튀긴 반찬을 만들었고, 고구마를 채로 썰어 설탕과 기름에 볶아 '오야쯔'라는 어린이들의 간식으로, 그것도 어려운 집에서는 생각도 못했으니 풀뿌리, 칡뿌리 캐 먹기, 소나무 어린 순 잘라 겉껍질은 벗겨내고 속껍질을 벗겨 먹으며, 미루나무 열매 등으로 주린 배를 달래며 살던 사람들.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民以食爲天)'고 했으니 고픈 배를 싸안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으랴!

 그런 현실에 추상같은 명령이 내렸다.

신사참배를 하라.
쇠붙이 공출 목표량을 초과 달성하라.
방공호를 파라.
학교는 운동장을 개간하여 농작물을 심어라.
교과내용을 조사 보고하라.
정신대원을 뽑아 들여라.

등, 누가 내린 명령이건 간에 당국의 명령이고 보면, 우리 국민 모두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으라면 지어야 했고, 헐라면 헐어야 하는, 일인(日人)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위치에서 괴로움을 체념해야 했다.

 정신대원을 뽑는 일만도 그렇다. 일본에 가서 노동을 하도록 되어 있고 위안부 노릇도 해야 되는데, 한번 가기만 하면 가는 족족 노동에 매어 고생하다가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거의 지쳐 죽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일에 누가 갈 것이며 누가 누구를 가라고 하겠는가. 뿐만 아니라 쇠붙이 공출량을 초과달성 하라 하여 견디다 못해 인천 답동 성당의 보물인 성종(聖鍾)을 3 개나 떼어놓기까지 한 일도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었다.

 당시의 일인들은 사사건건 미국을 비난했고 심지어 당시 '루즈벨트(Roosevelt) 미국 대통령이 미친 짓을 하고 있다'며 '벨트(belt)가 루즈(loose)해서 그렇다'고도 했다. 이토록 괴롭히는 일제를 향해 우리는 "자유 그것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 1945년 8월 15일은 우리 민족의 외침 그대로 해방을 맞은 날이다. 우리를 괴롭히던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난 날이다. 우리 나라는 어엿한 독립국가이며 우리 국민은 모두 자유인이 되었다. 이제 우리를 아프게 할 자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50 년이 흐른 지금,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아프게 하고 있음이 진실로 가슴 아프다. 오늘의 불신과 공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진정한 그 날은 과연 언제쯤 올 것인가.(198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