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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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신학교육의 활성화를 바란다

 

 


  수나 양의 성장도 중요하겠지만 보다도 진정한 기독교 신학사상과 목회정신을 더욱 심화 확산해 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권면한다.
  미주에만도 한인들이 세운 신학교와 미국대학 속의 신학교(한인부)등, 그 수효가 날로 증가하는 가운데 교육내용과 교육과정 이수 및 그 효과가 미치는 영향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교단과 신학교가 병존해야 한다는 생각과 넓은 교회당 안에 교육관 시설이 있으니 신학교나 운영하겠다는 생각으로 신학교육기관을 세운다면 우후죽순 격으로 솟는 신학교 난립에 적지 않은 문제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것도 주중에 2-3일 정도의 야간을 이용, 몇 명이 원탁에 둘러앉아 배우는 정도의 시설미비 및 옹색한 환경에서 훌륭한 신학자나 목회자가 나오기를 바란다는 생각보다는 보다 발전적인 입장에서 후진양성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신학교의 시작은 1545-1563년 사이에 모였던 트렌트공의회(Council of Trent)에서 교직자들의 교육을 위한 특별한 기관을 설립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신학교(Seminary)라는 글자는 카톨릭 교회의 주요한 감독관구(監督管區)로 하 여금 청년들로 교회 봉사를 위한 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들을 설립하도록 기도하는 법규로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대학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배양하는 씨밭이 되었다. 그 후, 17세기 포울(Paul, Vincent De)이 프랑스의 교육학자들을 위하여 조직된 퇴수회(退修會:Retreats)를 제공한 것과 1885년에 퓨지(Pusey)가 옥스포드대학의 그리스도 교회에서 기도와 토론을 위한 퇴수회를 개최한 것이 신학교의 토대가 되었다. 트렌트 신학교는 처음부터 고등신학교육이 목적이 아니었고(그것은 카톨릭대학 교수회가 담당) 다만 신학생들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과 경건생활을 훈련시키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미국의 개괄적인 신학교육의 양상은 고등학교로부터 주니어 신학교로 3-4년 정도로 전 신학과정을 이수한 후에 주요한 신학교로 들어가는 제도이었다. 미국의 신교에서의 신학교는 19세기 초에 시작, 신학교육의 표준은 점차로 높아져서 대학과정으로서는 부족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대학 4년과정을 마친 후 Post-Graduate Study로 신학교에 들어가 3년간의 D.B.(Bachelor of Divinity)학위를 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한국인 신학교의 경우는 아직 대학 정도의 신학교(고등학교 졸업 후에 들어가는)가 대다수이고(대학 졸업자를 받는 학교도 약간 있지만) 큰 종합대학에 부속한 신학교도 있고 단독으로 경영하는 신학교가 많이 산재한 실정이다. 대개의 신학교에서는 해당 교파 나름의 목사나 기관 사역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화초는 1년을 가꾸어 보람을 얻고, 나무는 10년, 사람은 1백년이 지나야 보람을 찾게 된다'는 말이 있다. 즉 '敎育百年之大計'란 말이다.

  신학교육을 통해 훌륭한 사역자를 키우려면 투철한 사명과 확고한 기독정신 정립을 통한 교육관의 형성이 심화되어야 하며 그 교육관을 실현해 낼 수 있는 건전한 재단과 능력을 보유하고 교육여건을 마련해야 함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교육자나 피교육자가 혼연일체가 되어 경건생활에 앞서야 한다. 흔히 말하는 날렵한 정치일선에 나서는 일보다는 악에 뛰어들어 싸우고 이단퇴치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선교 교육 봉사에 본이 되는 능력 있는 인물을 키우는 전당이 되어야 한다.

 

  이에 미칠 능력이 없다면 차라리 피교육자들을 보다 좋은 학교로 편입시켜 주고 일찍 문을 닫는 일이 떳떳하지 않겠는가? (1992.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