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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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한흑기독연맹' 창립에 붙여

 


 

  인종 사이에 야기되는 불평등이나 억압을 정당화하려는 반 과학적인 이데올로기는 인류역사에 끊임없이 명멸해 왔다.
  남북전쟁 후의 재건 시대에 미합중국 남부 여러 주의 백인은 흑인의 정치적 사회적 권리의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흑인법(Black Code)을 제정하였다.

 

  백인과 흑인의 결혼 금지, 재판에서 흑인은 흑인이 관계된 사건에만 증언할 수 있고, 허가 없는 무기 휴대의 금지 등을 규정한 법이다. 흑인과 백인의 평등한 정치적 권리가 부여된 후에도 남부 여러 주에는 이 법이 잔존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법의 예만이 아니라 흑인사회의 갈피마다 아픈 못이 박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종적 울분이 축적된 역사의 수레를 타고 있다.
  이들에게 우리는 화합의 뜨거운 가슴을 풀었으니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백인이 하늘을 날고 바다를 달린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모든 백인이 먼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감복시킬 수는 없다. 흑인은 어떤 직관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백인이 도덕적으로 높은 인격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흑인들에게는 문제가 된다. 흑인이 그걸 느끼면 백인의 권위가 서지만 느끼지 못할 때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백인에 대한 존경심은 생기지 않는다. 흑인은 교육에 의하여 이지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척도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도덕의 척도로 인간을 잰다'

  이것은 앨버트 시바이쩌가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한 말이다.

 

  흑인은 일반적으로 단순하다. 순수한 편이다. 눈치를 보거나 우악스럽거나 약삭빠르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유로운 미국 땅에서도 풍만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 왔는지도 모른다.

 

   자유란 눈치나 피부색으로 획득되는 것은 아니지만 흑인은 백인에 비하면 2배 또는 3배, 그 이상이 실직하고 있으며 교육도 불충분하다. 대도회로 이동하여도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편이며 특히 젊은이들은 직업을 잃는 이가 많을 뿐 아니라 희망조차 갖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흑인은 색깔이 검어 흑인이요 우리는 황색을 띈 아시안이다. 색깔로 치면 '황'은 '백'보다 '흑'에 가깝다.


  흑인에게 '영가'가 있고 우리에겐 '아리랑'이 있다. 흑인은 두터운 입술, 우리는 엷은 입술, 흑인은 높은 코, 우리는 납작코, 그러나 흑인의 피도 붉고 우리의 피도 붉다. 흑인의 가슴에 흐르는 사랑과 우리네 가슴에 흐르는 사랑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쨌든 우리는 흑인과 서로 도우며 살기로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웃을 내 몸처럼 "서로 사랑"하는 일뿐이다. 5천 년 동안 불씨를 꺼뜨리지 않은 우리 조상의 슬기가 오늘의 이민사회에도 지펴지기를 바란다.(1991. 10. 25. 크리스천헤럴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