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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산문 만남

2016.12.11 15:05

최선호 조회 수:8

 

 

만남

 

 


  인간은 '만남' 속에서 자신의 실체를 다 드러낼 때까지 끊임없이 조각되어 진다. '만남'은 일종의 도박과도 같이 승부를 겨루는 투쟁일 수도 있어서 쌍방이 함께 멸(滅)하기도 하고, 반대로 서로 합력하여 선(善)을 이루기도 한다.

 

 

  매직 존슨이라는 농구선수가 AIDS 감염 여인과의 만남이 없었던들, 그렇게 어두운 그늘 속으로 빠져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베드로와 안드레는 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그들의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다.

 

 

  나도 기독교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지금쯤 어느 적막한 산사나 암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목탁을 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인생에 있어 '만남'처럼 소중한 것은 다시없는 성싶다. 만남은 자신을 창조하는 출발점이다.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동시에 자신을 또 다른 세계로 부지런히 이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를 만났던 소련, 청교도 신앙을 만났던 미국의 역사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손짓하고 있는가. 6.25, 4.19, 5.16 그리고 지난 해 4.29와의 만남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이런 사실들은 우리의 생애,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을 단위로 볼 때 아니, 인류사 위에 놓고 보더라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만남이다.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만난 건 사실이다. '만남' 자체도 중요하지만, 만남 이후가 더 중요하다. 기쁜 만남이건 처절한 만남이건 그 만남으로 행복을 향한 새 길을 닦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에는 뽕잎을 먹는다. 입으로는 뽕잎을 먹지만 누에가 배설하는 것은 명주실이다. 명주실은 뽕잎과는 너무도 다른 비단이다.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맛이 참 달다'고 입맛을 다시는 우리 민족, 뜨거운 숭늉을 후후 불어 마시면서도 '속이 시원하다'는 우리 민족. 매운 것도 달게, 뜨거운 것도 시원하게 느끼는 우리 민족의 특이한 감각은 괴로움을 이기는 지혜가 아닌가 싶다.

 

 

  지금,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우리 동포들의 가냘픈 울음을 듣는다. 그리고 내 마음 한 구석에 '고진감래(苦盡甘來)'란 말을 떠 올려 본다. 뜻하지 않게 4.29를 만났던 지난 해를 돌이켜 보면서,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밤이 자나면 새벽이 오는 천륜을 생각한다.

 

 

  이민의 땅에서 있는 힘을 다해 부지해 온 우리의 피와 살이 순식간에 아스라지는 비극과의 만남. 집을 잃고, 가계를 잃고, 재산을 빼앗기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참상은 아직도 그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가려 정의의 길로 안내하는 불빛은 퇴색된 지 오래고, 인기의 영합이나 눈앞의 안일만을 위한 극심한 이기적 개인주의 풍조에서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폭동을 만난다는 아픔으로 이 깊은 밤에 갈릴리의 해변을 생각한다. 자기 소유의 모든 것을 버려 둔 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정든 해변을 떠나는 베드로와 안드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들 '만남'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 본다.   (199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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