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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산문 진앙지에서

2016.12.11 14:21

최선호 조회 수:6

 

 

 진앙지에서
 


  순식간에 땅이 갈라지고 담이 무너지고 벽과 기둥이 기울고 금이 가고 가스관 수도관이 터지고 길이 끊어지고, 그릇이며 전자 제품 등 가재도구들이 깡그리 나동그라져 풍비박산되고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천지가 개벽하는 듯, 땅이 돌아앉는 듯, 이 엄청난 공포의 강진이 굉음과 함께 우리들의 새벽잠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1994년 1월 17일 새벽 4시 30분 56초. 나의 생애에 또 하나의 금이 분명하게 그어졌다. 지구의 중심부로부터 켜켜로 쌓인 지층을 뚫고 올라와 내 심장을 관통해서 수 만리 하늘 끝까지 뻗쳐오르는 수직선을 본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 마지막임을 직감하는 순간에 느끼는 심령의 직선임이 분명했다. 나는 그 수직선에 매달려 절규하듯 울부짖었다. 30초 동안 계속되는 진동 속에서 땅속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내 심령의 세계를 단숨에 오르내리며 "하나님"을 불렀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어리석은 생애를 돌아보시는 것 같지 않았다. 땅이 진동하듯 나도 떨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육신이 부서진다는 두려움보다 마지막을 의식하는 그 순간에 영생의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진동이 멎자,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조국을 떠나 이 곳에 와서 이토록 엄청난 공포에 시달리게 한 내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고 싶었다. 그리고 조국 대한민국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 곳엔 이런 공포는 없지 않은가!

 

 

  2년 전 4.29폭동 때, 그 모진 아픔과 서글픔 속에서 인종과 인종 사이에 흐르는 핏금진 수평의 물살은 발견했던 나는 아직도 그 흐름이 가시지 않은 채, 이 새벽에 그와는 전혀 다른 수직선을 본 것이다. 수직과 수평의 교차점에 갇혀있는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가를 실감했다. 한 오리의 바람, 한 평 아니, 반 평의 땅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나. 더구나 구원의 층계를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단 한 계단도 오를 수 없는 무능을 실감하는 순간, 깨끗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온몸에 촉촉이 배어들었다.

 

 

  비상식량을 비롯, 비상을 대비한 준비가 하나도 없었던 터라 날이 밝기를 기다려 마�에 가보니 문이 열려 있지 않았다.

 6.8도의 진앙지에서 초진과 수 차례의 여진에 시달리면서 "Big One"이 올지도 모른다는 소문까지 나도는 판이라 앞이 캄캄했다. 앞으로 닥칠 삶에 대한 고통과 불편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계속되는 여진으로 가끔씩 집이 흔들린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어짜피 하늘에 매인 우리네 목숨, 다만 하나님께 맡길 따름이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마는 죽은 사람이든 산 사람이든 하나님 품안에 안겨 있다고 믿으니 차라리 마음 편하다.  (1994.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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