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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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목사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무슨 일이든지 끝맺음이 중요하지만 시작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한 가지 일이건 반 가지 일이건, 일에 따른 계획이 필요하다. 계획이 수립되었으면 그 계획대로 과감한 실천이 따라 주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처음에 목표했던 대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일이란 생각이 앞서야 하지만 생각대로 모든 일이 착착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개인의 일이건 단체의 일이건, 특히 개 교회나 연합행사의 일도 이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런데 생각만 앞세워 놓고 실천이 따르지 못해 허세만 부리고 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무슨 일을 하겠다고 대중 앞에 공언을 했으면 공언한 대로, 일을 해 낼 수 없었으면 그에 대한 해명을 대중 앞에 해 주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렇지 못하면 얄팍한 생각으로 대중을 우롱하는 처사일 뿐이며, 크건 작건 우리 문화의 발자취에 먹칠을 하는 경우로밖에 볼 수가 없다.

다음의 기사를 읽어보자

 

"남가주 내 4 명의 한인 목회자가 남가주 기독교계의 숙원인 기독교회관 건립기금으로 각 1만 달러씩 희사할 것을 약속, LA 지역 기독교회관 건립이 다시 한번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86년도 당시 남가주 교회협의회 회장직에 오른 000 목사가 동 협의회 최대의 사업으로 기독교회관 건립 안을 내 놓은 후, 지금껏 4 년이 지나는 동안 기독교회관 건립문제는 수 차례 이사회가 결성되고  정관이 채택되는 등, 외형적으로 소극적인 움직임만 있었을 뿐, 현재까지 이렇다 할 실적이 없이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하에서 기독교회관 건립을 위한 실무위원회 위원장인 000 목사를 비롯, 000 목사, 000 목사, 000 목사 등, 4 명의 한인 목회자들은 최근, 자신들이 먼저 기독교회관 건립을 위해 5 개년 계획으로 각 1만 달러씩 희사할 뜻을 비추고 본격적인 모금운동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현재 기독교회관 건립실무위원회는 1천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1층 강당을 포함, 휴게실, 남녀전도회 및 청년회 본부, 기독교 방송, 기독교 도서관 등이 들어설 3층 건물의 기독교회관을 구상 중에 있는데 이에 필요한 목표액으로는 3백만 달러 정도, 한편 000 목사는 '우선 모금에 직접 참여하는 순으로 기독교회관 이사진을 구성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앞으로 5년 동안 분할 납부토록 할 계획"(이하 생략).


 

이상은 1990년 8월 13일(화요일)자 모 일간지 미주판 제 2면에 실린 톱기사다. "남가주 기독회관 건립 본격화"라는  큰 제목에 "000 목사 등 4명 각 1만 달러씩 회사 약속", "5개년 계획 세우고 모금운동 펼치기로" 등의 부제가 붙어있는 5단 기사다.(본 기사 중 실명을 기재치 않았음을 양해 바람.)

 

당시, 남가주 "기독교회관" 건립에 대한 기사는 비단 여기에 소개한 모 일간지에 뿐만 아니라 여타 일간지, 기독언론지, 심지어 방송으로도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이렇게 북새를 떤 지 자그마치 6년 반이 흘렀고, 동 건립 안이 채택된 지는 11년째 접어들고 있다.


 

이 기간의 세월이면, 요즘 같은 세상에 회관을 지어도 몇 채를 지어냈을 만한 세월인데 그 동안 남가주 기독교회관은 어디에다 세워 놓았는가? 남가주 내에 이 분들이 모금하여, 또는 약속했던 자비를 보태서 세워 놓은 기독교회관은 어디 있는지.... . 그 동안 모금도 못했고 회관도 짓지 못했단 말인가? 짓지 못했다면 4분이 약정하였던 4만 불은 어디 있으며 과연 회관 건립을 위한 노력은 얼마나 해 보았단 말인가? 건물을 짓기는커녕 교계의 신용만 허물어버린 결과가 되지는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렇다는 경위설명이라도 있어야 했겠는데 그조차 찾을 길이 없다. 재론해 볼 여지마저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래서야 되겠는가?

 

물론, 그 어려운 일을 해 보겠다는 충정 어린 마음에는 감사를 드려야 겠지만은 이렇게 허세를 부려도 되는 것인가.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 싶은 것이다. 가망 없는 일을 하겠다고 큰 소리는 독판 쳐 놓고 자라목처럼 움츠러들었단 말인가? 1만 달러씩 희사하겠다고 약속한 4명의 목사들은 지금도 건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깜짝쇼(?)의 주인공들은 지금쯤 이런 사실에 대하여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기독교회관 건립문제만이 아니라 이런 류의 무책임한 일들이 종종 용두사미를 그려내고 있어, 믿는 자들의 본이 되어주지 못하면 누가 교계를 믿겠으며 교계는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이에 대한 경위를 분명히 밝히고 새로이 옷깃을 여미는 것이, 교계나 사회에 대한 바른 몸가짐인 줄 안다. 회관 짓는 일도 급선무이겠지만, 우선 믿는 자들의 화합을 짓는 일이 더 없이 급한 일이 아니겠는가!  (1997.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