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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산문 친구가 뭐길래

2016.12.11 14:42

PAULCHOI 조회 수:5

 

 

친구가 뭐길래

 

 

                                                                  
  살아있는 동안 진실한 친구 한 명이면 족하고, 친구 세 사람이 있으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고, 나를 도와주는 친구 200 명만 있으면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글을 어렸을 때 읽었다.

 

 

  친구와 친구를 잇는 끈은 우정이다. 우정은 끊임없이 손질하면서 지켜야 한다는데 그 일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어렸을 적 흙바닥에 뒹굴던 불알친구들, 배움을 같이한 학우들, 직장 친구와 군에서 사귄 군우들…. 그 수가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이지만, 지금 만나고 있는 친구는 거의 없다.

 
  내가 미국이민을 결정한 빼놓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친구 때문이었다. 그렇게 절친했던 친구를 미국으로 떠나보낸 나에게 삼천리 금수강산은 빈 하늘뿐이었다. 20 년이 넘도록 그 외로움을 편지에 담아 친구에게 띄우던 내가 친구 곁으로 이민을 간다는 것은 꿈같은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나를 만난 1년 후 한국으로 영주귀국하고 말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난 그 친구가 몹시 그립다.

 

 

  두어 달 전, 갑자기 하와이에서 LA까지 전화가 걸려왔다. 나를 찾는 전화였다. 알고 보니 30여 년 전에 헤어진 군우였다. 그 친구, 나를 확인하자마자 목울음으로 "반갑다"는 말을 수도 없이 되뇌이는 게 아닌가! 나와 헤어진 후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왔다는 것이다. 우연히, 모 월간지에 글과 함께 실려있는 내 이름 석 자를 보자마자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찾게 되었단다. 그 친구가 나를 반가와 하는 그 이상으로 나도 그가 반가왔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끌어안고 "야! 이 똥강아지 같은 자식아(군대에서 다정한 사이에 쓰던 말), 어디 숨었다가 이제 나타나느냐?"며 따귀라도 한 대 갈겨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1960년 8월, 서울 용산 역에서 논산훈련소로 가던 날이었다. 서울특별시에서 준 태극무늬 수건을 이마에 동여매고, 기차에 실린 채 빛나는 눈동자들을 맞춰가며 우리들의 사귐은 시작되었다. 모르는 사이긴 했지만 고생길로 들어서는 우리들은 의형제라도 맺는 양, 줄도 나란히 서고 군번도 나란히 받았다. 8계단의 군번 끝자리수 00000001번이 준이, 00000002번이 정이, 00000003번이 나, 그리고 000000004번이 영. 죽으나 사나 행동통일을 다짐한 사이다. 그 넷 중에 2번을 내가 제일 좋아했다. 그의 심성이 남달리  착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제대한 후, 나는 복학을 했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제 일에 바빠서 만날 기회가 없었다. 1년쯤 지나서 2번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다짜고짜로 "야 이 새끼야, 애 새끼들이 왜 그 모양들이냐?"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그 동안 4번에게 꿔준 돈이 30만원이 넘는데 갚을 생각은커녕 숨어 다니고 있으며, 1번은 제 여동생을 임신케 하여 그 동생이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4번은 돈을 갚으면 그만이겠지만 제 동생을 죽게 한 1번은 용서를 할 수가 없다며 2번은 연신 나를 붙들고 하소연을 했다. "이 죽일 놈들, 다시는 만나지도 않겠다"고 땅을 굴러 댔다. "그 새끼들 인간취급도 하지 않겠다"고 소리소리 질렀다.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30여 년이 흘렀다.

 

 

  하와이에서 전화를 건 2번은 20 년 전에 이민 와서 고생한 덕분으로 살만큼 자리를 잡았단다. 그런데 폐암에 걸려 얼마 못살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마음 같아선 1번, 2번, 3번, 4번이 자리를 같이 하고 싶다는 것이다. 꿔준 돈을 받을 것도 아니고, 동생을 죽게 한 1번을 욕하자는 것도 아닌, 순수하게 만나 회포나 풀자는 것이다. 2번과 나는 오늘 연락이 되었지만, 1번과 4번은 지금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죽기 살기로 행동통일 하자던 때는 언제고. 이런 현실을 가로질러보기라도 할 듯, 2번은 죽음이 다가오는 그 순간까지라도 그들을 찾아보겠단다. 그러면서 소리내어 엉엉 울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친구가 뭐길래. (1995.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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