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나팔꽃 비가
2019.10.22 07:44
페이스북에 민소나님의 ‘나팔꽃’ 사진이 올라 왔다.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에 싸한 한기가 왔다.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나팔꽃.......
이름만 들어도 떠오르는 슬픈 영상.
그 흑백 필름 속엔 네살박이 아들 녀석이 있고 작은 입술 오물대며 부르던 동요 가락이 애잔하게 흐른다.
..... 아빠하고 나 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
지금은 가고 없는 녀석.
녀석은 가고 멜로디는 끊겼지만 환청처럼 들려오는 노래, 권길상님의 <꽃밭에서>다.
애기 때부터 나는 동요를 즐겨 불러 주었다.
낮에는 품에 안고 불러 주고 밤에는 등에 업고 불러 주었다.
녀석이 입을 떼고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 쯤에는 동요를 함께 불렀다.
뱃속에서 부터 동요를 들어서인지 녀석도 동요 부르기를 무척 즐겼다.
우리에겐 그 시간이 더 없이 즐겁고 행복했다.
얼마나 많이 불렀는지, 녀석이 서너 살 쯤 될 즈음에는 어지간한 동요는 거의 다 외우다시피 했다.
심심하면, 나는 녀석에게 독창을 시키기도 했다.
그날도 혼자 리사이틀을 하듯 여러 곡을 부르며 뽐냈다.
......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
<꽃밭에서>를 부르던 녀석이 ‘새끼줄 따라’까지 부르더니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노래를 멈추었다.
- 엄마! ‘새끼’는 욕이잖아?
아주 몹쓸 노래를 제 입으로 불렀다는 무안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표정이 너무 천진난만하고 귀여웠다.
나쁜 말로 노래 부르면 안된다는 그 마음도 기특했다.
- 하하! 노래에 나오는 ‘새끼’는 욕이 아니야. 그건 말야...
나는 ‘새끼줄’이 뭔지 한참을 설명해 줬다.
- 아~ 그렇구~나!
그제서야, 안심한 듯 표정을 풀며 환하게 웃었다.
동네 형들과 어울려 놀더니 ‘새끼’라는 욕을 알게 된 모양이다.
나쁜 말 한 번 쓰지 않고 언제나 턱 밑에 앉아 “엄마! 뭐 사 주까?”하고 묻던 아이.
녀석은 때묻지 않는 동심 그대로 하늘나라로 갔다.
해마다 나팔꽃은 ‘새끼줄 따라’ 어울리며 피는데......
동네 형들 속에 끼어 놀며 담뿍 사랑을 받던 그 녀석은 ‘어울리며’ 피지 못하고 홀로 먼 길 떠났다.
‘새끼’가 욕이 아니냐며 놀란 토끼눈으로 물은 지 6개월만의 일이었다.
함께 부르던 노래, 홀로 가만가만 불러 본다.
...... 애들하고 재밌게 뛰어 놀다가
아빠 생각 나서 꽃을 봅니다
아빠는 꽃보며 살자 그랬죠
날 보고 꽃같이 살자 그랬죠 ......
그래, 우린 너랑 꽃 보며 살고 싶었지.
오래 오래 너랑 꽃같이 살고 싶었지.
그런데 넌 뭐가 바빠 그렇게도 빨리 가 버렸니.
55미리 신발조차 벗어 두고 넌 홀홀히 떠났구나.
네 살 반에 멈추어 꿈 속에서도 크지 않는 아이.
사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 아직도 흑백 필름 속엔 나팔꽃 비가가 빗물처럼 흐른다.
(P.S : 어릴 때 부르던 노래를 미국에 와서 제 동생이 부르고 있는 걸 그 애도 천국에서 봤을까. 그것도 노래를 만든 권길상 선생님이 이끄시는 ‘가주소년소녀합창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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