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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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벗는 계절 / 수필

2021.07.08 16:59

민유자 조회 수:8

벗는 계절

 

 볼일을 보고 집에 오는 길에 너서리에 들렀다. 계절 따라 피는 갖가지 꽃들을 두루 즐기다가, 좁은 마당에 둘 곳도 없는데 욕심나는 화분을 들었다 놓았다, 살까말까 망설이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불볕이 무척 따가웠다. 세워두었던 차에 타니 오븐 속 같은 열기로 금방 얼굴이 빨개졌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훌훌 벗어던졌다.

 

 낮 기온이 화씨 105도까지 올라갔으니 본격적인 여름 날씨 중 에도 특히 더운 날씨다. 내가 사는 동네 발렌시아는 엘에이 북쪽 35마일 밖으로 엘에이 다운타운에 비해 대략 평균 10도는 더 또 더 다. 그동안 덥지 않다가 갑자기 더워져서 더욱 못 견디게 더웠다.

 

 덥다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더우면 수시로 냉장고에서 시원한 과일을 꺼내 먹고, 서늘한 음료수를 입맛 당기는 대로 마시면서 더위를 달래고 식힌다. 에어컨을 켜놓고 오히려 춥다고 옷을 덧 입을 때도 있다. 집안에 부채가 어디 있기는 있지만 얼른 찾아내지 못할 정도로 무용지물이다. 땀이 나면 하루에 열 번이라도 워를 하면 되고 옷을 몇 번이라도 갈아입을 수 있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빨아서 삶고, 풀 먹여 다듬고, 다시 바느질로 지어야 하는 옷을 입는 어른들이 집 안에 계셨다. 그 더운 여름에도 다림질이 필요하면 긴 손잡이가 달린 대접 모양의 다리미에 불을 담아서 옷을 다렸다. 두 사람이 더워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양쪽에서 마주 잡고 평평하게 당기며 다렸다.

 

 불 조정을 잘해야 했다. 까딱하다가는 눌어서 소중한 옷을 버리기 십상이다. 너무 뜨거우면 젖은 물수건을 준비해 두고 다리 미를 식혀야 했다. 숯이 사위면 다시 숯을 피워 얹어 달구고 입으로 물을 머금어 훅 뿜어가며 다렸다. 그러니 그 시절엔 옷을 쉽게 갈아입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양반 에서는 오뉴월에도 버선조차 벗지 않는 범절을 지켰으니 생각하면 숨 막힐 일이다. 지금 나더러 옛날처럼 속 옷을 겹겹이 입고 버선을 신고 여름을 견디라면 형벌도 그런 형벌이 없겠다. 목과 가슴, 팔을 다 드러내고 반바지 차림으로 여름을 난다. 그때는 피륙도 귀한 터에 왜 그렇게 싸매고 살았을까?

 

 여성들이 속옷을 겹겹이 덧입고 싸매던 풍습은 한국에만 있지 않았다. 서양 여자들도 거추장스러운 의복을 여러 절차를 따라 덧입었다. 덧입기로 말하면 겨우 시야만을 조금 뚫어놓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다니는 중동의 의상 풍습이 제일일 테 다. 그것도 더운 지방에서 현대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니 신기하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집단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옛날의 그 겹겹이 싸매던 여성들의 옷 입는 풍습을 우리는 지금 다 벗어던졌다. 허나 집단의식의 범주를 다 벗어났다고는 볼 수 없다. 역시 지금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적절히 남의 눈을 의식해야 한다. 또 유행을 앞장서 따라가지 않는다 해도 거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다.

 

 이 집단의식이란 의식 밖에 있는 사람이 볼 때는 참 어이없게 합리적이지 못하고 불필요한 껍데기일 때가 많다. 마치 우리 어머니 세대에서 오뉴월에 버선까지 신고 견디는 일과 같다. 중동에서 차도르나 부르카를 덮어쓰고 눈만 내놓는 풍습도 지금 이곳에서 자유롭게 사는 우리 눈에는 하루빨리 벗어버려야 할 집단의식의 껍데기로 보이는 것과 같다.

 

이 껍데기를 벗는 데는 얽매이지 않은 열린 생각과 종합적인 확고한 가치관이 요구된다. 집단의식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광범위하고 다양한 연유가 있게 마련이다. 종교의 영향도 많다. 거기에 오랜 세월 문화와 예술의 무늬를 덧입게 되면서 미화되고, 새로운 가치를 얹어가면서 상당히 확고하게 이루어진다.

 

여름은 벗는 계절이다. 옷만 벗을 것이 아니라 우리 의식 속에 남아 있는 껍데기들도 벗어버려야 한다. 그런데 잘 생각하여 적 당히 벗어야 한다. 더위에 옷 벗듯 생각 없이 벗었다가는 망신살 뻗치고 미친 취급을 받거나 몰매의 덤터기까지 덮어쓸 수 있다.

 

 https://youtu.be/XtY42DySS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