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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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생기 충만한 초여름 저녁 / 수필

2021.07.08 18:51

민유자 조회 수:7

생기 충만한 초여름 저녁에

 

 어스름 저물녘, 저녁식사 후 남편과 함께 강가로 나가 노을의 홍조가 게 남아있는 하늘을 보며 걸었다. 올봄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마른 강처럼 보이더니 물이 제법 소리를 내며 흐른다. 그새 한 길이 넘게 자란 갈대숲에서 개구리들이 목청껏 부르는 생기 충만한 합창이 살스럽다.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살짝 스치며 들꽃의 향기를 전한다.

 

 편안한 자세로 콧노래를 부르며 하늘만 보고 걷던 나는 무심코 땅을 보다가 남편의 팔을 확 잡아당기고 두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 다섯 걸음쯤 앞이다. 몸체만 한 뼘은 실히 됨직한 거대한 도마뱀이 풀섶 앞 포장도로 가장자리에 나와 있었다. “어머! 이렇게 큰 도마뱀은 처음 보네!” 옆으로 저만치 비껴가려는데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엎드려 있는 모양이 이상했다. 내가 그렇게 화들짝 놀랐으니 야생물인 그도 위기감을 느꼈을 텐데 요지부동 한 자세로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 그냥 지나쳐 갔으면 좋았을 것을....

 

 이 나이 먹고도 아직도 어린애 같은 짓궂음이 남아 있어서 남편은 콩알만 한 돌을 몇 개 주워서 도마뱀 근처에 던졌고, 나는 생각 없이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꽤 가까운 곳에 떨어졌는데도 꼼짝하지 않는다. “죽었나 봐!” 나는 시선을 돌려 스러진 노을이 회색으로 변해 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붉은 기가 남아 있는 하늘에 먼 산 검은 능선의 아름다움을 바라 보며 그냥 가자고 말했다. 하늘은 아직 환한데 갈대숲의 그림자로 길바닥은 좀 어두웠다.

 

 남편이 시선을 모아 쏘아보며 “아냐 분명히 살았어. 조금 움직 였다구.”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무심히 가까이에 떨어져 있는 작은 돌을 도마뱀을 향하여 발로 툭 차 던졌다.

 

 꼼짝 않던 도마뱀이 갑자기 한 자나 뛰어올라 풀섶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런데 저건 뭐지?!” 뛰어오른 도마뱀에게서 무엇이 분리되어 사선으로 튀어나가며 통통 튀기 시작했다. 새 연필의 기와 길이 정도다. 양 끝이 휘어져 아래로 동글, 위로 동글 원을 만드는데, 음표에 꼬리가 두 개 달린 십육 분음표, 아니 세 개 달린 삼십이분음표? 빠르기로 춤추는 묘기를 보였다.

 

 이 끔찍한 실물 묘기가 쉬지 않고 연속음을 한참 이어가는 걸 엉겁결에 눈도 깜빡 않고 봐버렸다. 잠시 후 그 장단이 불규칙하게 변하면서 그제야 등골에 소름을 느끼고 제정신이 들었다. 서둘러 고개를 돌리고 현장을 뒤로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망막을 뚫고 들어와 심장에 꽂힌 불침의 아픔과 충격적인 영상은 계속 나를 따라와서 진저리를 쳐야 했다.

 

 점잖은 왕도마뱀께서 실뱀을 저녁으로 드시던 중이었다. 미성숙한 인간의 치기어린 동물적 호기심에 그 무엄함을 나무라며 위엄을 지키려던 왕도마뱀께서 위급함을 느끼자 드디어 식욕을 잃었다. 먹다가 팽개친 머리 없는 실뱀의 망가진 육체가, 충만해 있던 생명을 담을 수 없게 되자, 대기에다 생기를 흩어 뿌리는 장면이었다.

 

 불과 십여 초가 되었을까? 짧은 시간의 작은 영상이지만 어찌나 생생하게 찌릿한 스릴이 전해 오는지! 어떤 잔인한 영화를 본 것보다 더 몸서리가 쳐진다. 이토록 작은 육체 안에 그리도 치열한 생명이 들어있었던가?

 

잠시 후 작은 생명체의 극렬한 고통은 스러지는 노을과 함께 흔적 없이 사라지고, 짝을 찾는 개구리의 노래가 점점 더 극성스럽게 강변에 가득 다. 까마귀 한 쌍이 무성한 참나무 거목 위에서 날개를 접는다.

 

초저녁 아기별의 눈빛이 점점 더 영롱해진다.

 

https://youtu.be/09Rvc7Hg0I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