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 시계꽃
2019.04.25 23:59
참 요상한 꽃이다.
신비주의는 도대체 남의 이야긴가 보다.
목젖까지 보이며 함박웃음 웃다가, 내장까지 까집어 속을 다 내 보인다.
손해를 보든 말든 상관 없는 모양이다.
천성이 그러니 할 수 없단다.
어째, 나와 비슷한 것같기도 하다.
이 틈새에, 어디서 날아 왔는지 벌 한 마리 침을 박는다.
꽃과 벌.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란다.
상생의 미학?
그래도 왠지 꽃이 손해보는 기분이다.
얌체 같은 벌.
넉살도 좋다.
“그러게, 내가 그냥 꿀만 뺏어 먹는 놈 아니라니까? 열매 맺게 해 주면 되지?”
꽃은 그저 웃기만 한다.
“씨든 열매든 주기만 하사이다~”
그런 표정이다.
아니, ‘알아서 하쇼-‘하는 모습이다.
에구, 속 없는 꽃아.
아니, 속 다 내 보인 요것아.
이젠 마음 좋은 사람을 보면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 하지 말고 ‘꽃같은 사람’이라 부를까.
새벽 둑방길을 달리다, 잠시 요상한 꽃에 홀린 사이에 나랑 같이 뛰던 친구들이 벌써 일 마일은 앞서 가 버렸다.
좀 천천히 가면 어떠랴.
저승길 먼저 가고 뒤에 가는 건 신의 재량이지만, 이 둑방길을 빨리 뛰고 늦게 뛰는 건 온전히 내 자유다.
자유는 만끽하라고 있는 것.
이 꽃, 저 꽃 구경하며 펀 런했다.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내 속도대로 뛰었다.
오늘은 거의 12마일 뛰었어도, 얼굴을 스치는 봄바람이 몹시도 기분 좋았다.
<시작 메모>
요상한 꽃이름은 꽃사진을 열심히 찍는 사진작가 친구에게 물어서 알아냈다. 시계꽃은 예수님 십자가 박힌 자리에 무수히 피어났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으며, 꽃말은 ‘성스러운 사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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