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1
어제:
6
전체:
1,292,131

이달의 작가
수필
2018.09.26 11:26

존 웨인을 찾아서

조회 수 14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레돈도비치 바닷가를 걷고 난 후 근처에서 아침을 먹을 때가 있다. 음식 맛, 분위기, 주차공간을 고려하면 마음에 드는 곳 찾기가 쉽지 않다. 스마트폰으로 레스토랑을 찾던 친구가 '섹스 온 더 비치'라는 곳이 있네, 란다. '설마?' 하며 눈을 크게 떴더니 머쓱한 표정으로 내 발음이 그렇네. 배낭 메는 'Sacks' 란다. 비슷한 발음으로 관심을 끌려는 의도가 느껴졌지만, 영어에 미숙한 우리나 헷갈리는 거겠지 내 탓으로 돌리고 만다.

아무튼 아침에 여는 식당이 많지 않아 평소에 알아두어야 손님이 왔을 때 바로 모실 수가 있다. 그때 그 식당 이름이나 음식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면 기억에 남는 추억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멀리서 온 손님이 그 왜, 존 웨인 친구가 시작했다는 그 레스토랑에서 먹은 음식이 뭐랬죠? 질문과 함께 대화가 맛있게 풀려나간 적이 있다.

그 식당은 어느 요일에 가도 손님이 북적거려 주차공간이 부족하다. 일반 테이블이 몇 개 있는 안쪽 자리는 꿈도 못 꾸고 달아낸 듯한 바깥 룸에 자리를 잡는다. 낯선 손님과 합석해야 하는 기다란 테이블에 등받이 없는 기다란 의자, 오붓한 느낌도 없고 허리도 편치 않다. 우리가 흔히 좋은 분위기라고 할 때의 느낌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근처 몇 군데 가 보고는 이만한 곳도 드물다는 생각에 자주 가게 된다.

서핑하러 온 젊은이부터 신문 길게 펼치는 나이 지긋하신 분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사람들이 즐겨 먹는 메뉴를 오며가며 훑어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존 웨인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우린 가능하면 긴 의자 맨 구석 자리를 찾아 들어가 커피와 음식을 주문한다. 매콤한 살사를 곁들인 존 웨인도 좋고, 담백한 맛과 건강을 생각하며 헬시 케사디아도 즐긴다. 


음식은 신선하고 서비스는 빠르고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무엇보다 입구 안쪽에 세워져 있는 존 웨인 모형 인형이 식당 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것 같다. 존 웨인이 즐겨 찾던 음식에 그의 이름을 붙여 존 웨인이라는 메뉴가 생겼다는 사연을 들은 후, 식당 이름과 나란히 적혀 있는 '존 웨인의 오리지널 홈'이라는 식당 간판 문구가 친구의 우정 같아 정겹다.

쌍권총으로 '다다다다' 악당을 물리치던 강한 남자의 표징인 존 웨인.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뿐 아니라 가까운 오렌지카운티의 공항 이름으로도 살아있는 불멸의 배우. 그의 실제 삶이 궁금해 검색하다가 그의 죽음에 관한 내용에 한참 머문다. 그에 관한 몇 개의 기록을 번갈아 읽다가 흥미로운 문구를 발견한다.

존 웨인이 칭기즈칸으로 출연한 '정복자' 촬영지가 1954년 당시 핵 실험 장소에서 멀지 않은 유타주 네바다 사막이라는 것. 15년 가까이 암 투병하다가 1979년 72세에 숨진 존 웨인 외에도 여주인공 수잔 헤이워드와 제작진 절반 이상이 암, 뇌종양, 백혈병으로 고통받다가 죽어갔고, 엑스트라로 출연한 인디언 원주민은 대부분 암으로 사망해 부족이 전멸했다는 사실이다. 북핵에 생각이 이르고,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을 비롯해 존 웨인을 추모하는 마음이 깊어진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8/08/27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7 수필 "결혼 생활, 그거 쉽지 않지" 오연희 2015.07.06 291
176 수필 "내가 뭐랬냐?" 오연희 2003.06.29 906
175 수필 "정말 충분했어" 오연희 2003.07.12 832
174 수필 '드롭 박스'에 버려지는 아기들 오연희 2015.07.06 174
173 수필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용기 오연희 2018.09.26 177
172 수필 '우두커니'를 거부하는 사람들 4 오연희 2017.11.30 182
171 수필 '우리'의 정서 오연희 2007.08.07 1694
170 수필 '조심조심, 미리미리' 오연희 2017.08.02 142
169 수필 '카톡 뒷북녀'의 카톡 유감 4 오연희 2017.03.14 231
168 수필 94세 시어머니 1 오연희 2006.05.09 1308
167 수필 [나를 일으켜 세운 한마디]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9/22/14 오연희 2014.10.07 327
166 수필 [열린 광장] 엄마 곁에서 보낸 짧은 나날들 11/22 오연희 2013.12.08 377
165 수필 [이 아침에] "거라지 세일, 장난이 아니네요" 4/22/14 오연희 2014.04.28 320
164 수필 [이 아침에] "엄마, 두부고명 어떻게 만들어요?" 10/22/14 오연희 2014.10.24 554
163 수필 [이 아침에] '길치 인생'을 위한 우회로(2/19/14) 오연희 2014.03.07 456
162 수필 [이 아침에] '백년칼라사진관'아직 있으려나 오연희 2013.05.31 826
161 수필 [이 아침에] 값이 싼 티켓은 이유가 있다. 5/20/14 1 오연희 2014.05.22 523
160 수필 [이 아침에] 공공 수영장의 '무법자' 11/26/2014 오연희 2014.11.26 248
159 수필 [이 아침에] 기다림의 낭만이 사라진 시대 오연희 2013.07.08 498
158 수필 [이 아침에] 기찻길 따라 흐르는 마음 여행 오연희 2013.07.08 75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