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시

2020.11.29 20:54

정국희 조회 수:40

4월의 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T.S 엘리엇 황무지첫 부분)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심어준 이 말은 엘리엇이 만들어낸 말이다. 시인의 말이 이토록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시다. 이처럼 작가 자신의 생각이 마치 사실처럼 인식되어버린 4월은 사실 절대로 잔인한 달일 수가 없다. 4월은 가장 순하면서도 가장 강한 달이다. 왜냐하면 라일락을 키워내고 봄비를 깨우는 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4월은 본질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하나의 생명의 모태가 되는 달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생명을 틔우는 하나의 집을 짓는 것 같은, 혹은 포근한 고향을 건설하는, 그래서 황량한 대지 위에 정체성을 키워나가는 이 4월을 작가는 왜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 그리고 왜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인정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옥타비오파스가 활과 리라의 제 1부 시편에서 밝혔듯이 말이 갖는 창조적 힘은 발화하는 사람에게 있기 때문일 것이며 다른 말로 시는 관계를 형성하며 일어서는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 가지, 언어는 스스로 내재해 있는 끌어당김의 힘에 의해 자발적으로 반복과 재창조가 이루어지기 때문인 것이다

 

황무지(The Waste Land)는 미국인이지만 영국을 고향으로 선택한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이 1922년에 출간한 434줄의 시다. 이 시는 난해함이 지배하는 시로, 20세기 시들 중 가장 중요한 시중의 하나라는 찬사를 받았다. 시인이자 극작가, 문학평론가인 엘리엇은 세인트루이스의 스미스 아카데미를 다닌 후 매사추세츠 주의 밀턴 아카데미를 다녔고, 그곳을 졸업한 뒤 1906년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했다. 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20세기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그는 4개의 4중주 Four Quartets로 당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영국의 문학가로 인정받아 1948년 메리트 훈장과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사실 엘리엇은 이 시를 스위스의 로잔 요양원에서 정신의학 치료 중에 썼다고 한다. 그곳에서 4월을 보내던 시인은 전쟁으로 인한 황패한 유물들을 자주 접하면서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이 소외의 불안감에서 오는 절망감을 4월의 탓으로 돌려놓았던 것이다. 이를 테면 현실 자각으로 오는 고통의 트라우마를 4월에 책임을 지워 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잔인한 달로 남아 있게 한 것이다. 실지로 엘리엇이 자신의 시에 대해 스스로 표현하기를 일종의 "리듬감 있게 늘어놓는 불평(rhythmical grumbling)"이라고 했듯이, 사실 이 시를 읽다보면 두서가 없고 혼란스러워서 불평을 늘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제 우리는 4월이 잔인하든 안하든 이런 것은 아무 상관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을 덮치는 이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4월은 다시 잔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잔인해도 땅을 뚫고 나오는 풀을 막을 수 없듯이 COVID-19 또한 만물의 영장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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