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72 추천 수 6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400원의 힘

동아줄 김태수

절박함이 용기를 불러왔다.

“여러분께 양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꼭 이 차로 가야만 하는 급한 사정이 있습니다. 어느 분이 저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시면 안 될까요? 다음 차는 30분 후인 2시 30분에 있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양보해주시는 분의 차비는 제가 내드리겠습니다.”

2시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타야만 했다.
내가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출발 8분 전이었는데, 이미 차표는 매진되었다. 앞이 컴컴해졌다. “ ##고속버스로 2시 전주 출발, 서울 남부 터미널에 5시 10분경 도착 예정.”이라고 내가 동창 카페에 올린 글을 보고, 기다리다 힘없이 발길을 돌릴 친구 모습이 그려졌다.

K형과 오랜만에 만났다. 점심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우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8월 초 불볕더위가 40년 만에 찾아와 밖은 한창 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터미널까지 2분 거리 밖에 안되니까 미리 나가서 고생하지 말고 시간 맞춰나가라며 K형은 친절하게 고속버스 시간까지 알려준다. 약속시각이 6시 30분, 영등포 구청 옆이면 전주에서 2시에 출발하면 된다고 했다.

미국에서 가지고 온 스마트 폰은 무용지물이었다. 작동되지 않아 가방 속에 처박아 놓았다. 친구들의 정보는 인터넷 동창 카페뿐이었다. 스마트 폰에 의지한 내가 바보가 되었다. 인터넷 동창 카페를 찾아, 겨우 서울 도착 예정 시간을 올려놓고 터미널로 향했던 것이다,  

오랜만에 한국에 나오는데, 동창들이 얼굴 한번 보면 좋겠다고 해서 급조된 모임이었다. 피서철이었음에도 나를 위해 만든 모임이었다. 40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도 있었다.

고속버스가 출발할 시간인데 양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더위에 짜증 난 얼굴을 하고 빨리 버스가 출발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힘없이 버스에서 내려왔다. 버스 기사가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양보해주는 사람 없지요? 요즘 그렇다니까요. 이렇게 더운 날씨에 누가 기다렸다 가려 하겠어요?”

막 버스가 출발하려는데 한 사람이 내려와, 차표를 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14번 B가 제 좌석이니까 거기 앉아서 가세요.” 60세쯤의 나이에 그은 얼굴이었다.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와 바닥에 내려놓은 걸로 봐서, 농사짓다가 자식이나 친척을 만나러 가는 모양이었다. 준비해둔 차비 12,000원을 건네주니까 11,600원이라며 동전 400원을 거슬러 주려고 주머니를 뒤진다. 버스 출발 시각이 지나자 기사님은 서서히 차를 움직인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400원은 안 주셔도 돼요.” 하며 급히 차에 올라탄다. 버스가 출발하고 땀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자리에 앉아서, 그래도 세상 인심은 각박하지만은 않다고, 안도의 숨을 쉬고 나서야 생각이 났다. 그래 야박하게 자리 양보한 대가가 고작 400원이었단 말인가. 경황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12,000원을 더 건네줬어야만 했다. 각박한 건 나 자신이었다. 그 고마운 마음은 미안한 마음으로 자리 잡아, 다른 사람 사정이 급할 땐 양보해 줘야 한다는 무언의 명령이 되고 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소설 김태수 약력 동아줄 김태수 2016.11.11 609
69 행시 탁발 동아줄 김태수 2014.01.03 235
68 수필 친구[2013 미주 문학세계 22호, 2014 맑은누리문학 신년호) 동아줄 김태수 2013.12.30 554
67 시조 행시 아침놀[제2회 맑은우리문학상 공모전 장려상] 동아줄 김태수 2013.12.05 266
66 행시 제일회 재미수필 에세이 데이[퓨전수필 13년 겨울호] 동아줄 김태수 2013.12.01 407
65 가사 지구의 감기 몸살 [제14회 전국 가사. 시조 창작 공모전, 가사 장려상] 동아줄 김태수 2013.11.01 457
64 수필 해외 봉사활동이 꿈[제2회 8만시간디자인공모전 최우수상] 동아줄 김태수 2013.10.25 442
63 행시 뿌리문학상 동아줄 김태수 2013.10.15 291
62 행시 국정 1 개혁 동아줄 김태수 2013.10.04 255
» 수필 400원의 힘[좋은수필 13년 11월호][2013 재미수필] 동아줄 김태수 2013.09.15 372
60 시조 행시 육이오[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공모전 특별상] 동아줄 김태수 2013.09.07 353
59 행시 동행 동아줄 2013.08.15 303
58 시조 당면 동아줄 2013.07.11 292
57 시조 행시 봄비 동아줄 2013.05.24 368
56 행시 봄꽃 만발[맑은누리문학 14년 신년호] 동아줄 김태수 2013.05.07 341
55 수필 볼링 경기[현대수필 13년 여름호] 동아줄 2013.04.02 671
54 행시 이상기온[퓨전수필 13년 봄호] 동아줄 2013.03.25 384
53 시조 행시 나이테 동아줄 2013.02.25 400
52 행시 중심고을/고운 누리 동아줄 2013.01.22 615
51 시조 시심[샘터 13년 1월호] 동아줄 2012.12.27 372
50 시조 행시 폭풍은 지나가고[퓨전수필 12년 겨울호] 동아줄 2012.12.17 41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5
어제:
49
전체:
1,167,734